1. 캐비테이션이 선회 실속처럼 회전한다?
1975년 9월부터 1년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 기계공학과의 Acosta 교수(Allan Acosta, 2020년 타계)의 연구실에 방문연구원으로 재직하였다. 일본 출신인 필자의 연구가 궁금하다고 말하였기에 1975년까지 NAL에서 진행하였던 인듀서에서 발생하는 캐비테이션의 가시화 연구를 소개하였다. NAL에서 와타나베 미츠오(渡邉光男) 연구원이 촬영하였던 고속 필름을 가져가서, 1976년 1월에 Caltech의 암실에서 필름 한장 한장을 인화지에 현상하였다. 이것을 정리하여 그림 6.1을 작성하였다.
그림 6.2. 위의 그림 6.1 을 알아보기 쉽게 그래프로 정리한 것이다. |
이 그림에서 시간에 따라 변동하는 캐비테이션의 길이를 구하기 위해 그림 6.2를 작성하였다. 이 그림은 캐비테이션의 변화가 불가사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니까, 캐비테이션의 선회속도가 인듀서 블레이드의 회전속도보다 빠르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림 6.2에서 인듀서는 3 -> 2 -> 1 순으로 회전하는 것으로 대응되고, 캐비테이션의 길이도 동일하게 3 -> 2 -> 1 순서로 회전한다. 결과적으로 보이기에는, 캐비테이션 쪽이 인듀서보다 더 빠르게 회전한다.
2. 연구실 지도 교수에게 소개하였으나, 거절당하다
이 그림을 Acosta 연구실에서 소개하며 “캐비테이션의 선회속도가 인듀서 블레이드의 회전속도보다 빠를 가능성이 있다.” 라고 설명하였는데, “그것까진 궁금하지 않다.” 라는 반응이 돌아와서 좀처럼 관심을 끌 수가 없었다. 관심을 끌 수 없었던 것에 더하여 액체를 대상으로 한 분야에서 인듀서가 발생시키는 캐비테이션이 인듀서보다 빠르게 회전한다는 것, 그러니까 ‘현상을 일으키는 쪽보다 현상 쪽이 먼저 가버린다는 이야기는 상식적으로 웃긴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라고 생각되었다.
압축기 분야에서는 ‘선회 실속’ 이라는 유사한 현상이 알려져 있었고, 제트엔진의 실용화에 맞추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압축기 입구에 몇 개의 실속 영역이 생기는데, 이 실속 영역을 ‘셀’ 이라고 부른다. 물론, 선회하는 속도는 압축기 블레이드 회전속도 이하이다.
따라서, 셀 수가 1개가 아니면 그림 6.2에서 선회 캐비테이션의 선회속도가 인듀서의 회전속도보다 빠르다고 말할 수 없다. 다음으로, 인듀서 입구압력의 높고 낮음과 입구압력의 변동 주파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그림 6.3. 초음파 순간유량계로 측정한 압력 변동이다 |
즉, 그림 6.3에 보이는 바와 같이 입구 압력의 저하에 따라 입구 근처의 압력변동 주파수가 낮아지고 있으므로 이 현상을 (셀 수를 1개로 하지 않으면)설명할 수가 없었다.
3. 논문을 작성하여 제출하였으나 거부당하다
이를 미국 기계학회의 심포지엄에 제출할 논문을 작성하여 일단락시켰다. 다만, 이 시점에서는 한층 고찰을 더하여 셀 수가 1개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 논문은 귀국 후인 1977년, 출장 여비가 나오지 않아 Caltech의 브레넨(Christopher Earls Brennen)준교수(현재 명예교수)가 겨울 애틀란타의 미국 기계학회(ASME)에서 대리발표 하였다. 이 논문을 ASME의 저널에 투고하였으나 캐비테이션 길이 표시에 오차가 있다는 이유로 거부되고 말았다.
이 논문은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그라이처 준교수(Edward M. Greitzer)가 ASME Journal of Fluid Engineering의 ‘The 1980 Freeman Scholar Lecture’ 중 인용하여 ‘선회 캐비테이션은 선회실속 현상과 유사하나, 별개의 현상이다.’ 라고 소개하였다. 신경은 썼지만, ‘선회 캐비테이션을 발생시키는 인듀서는 좋지 않다.’ 라고 또다시 먼저 판단하고 연구를 재개하지 않았다.
한 마디
선회 캐비테이션은 최근의 로켓 터보펌프 연구자라면 최소 한 번쯤은 들어봤을 현상일 것이다. 블레이드 전면에서 회전하는 것 자체는 선회 실속과 유사하나, 선회 캐비테이션은 상 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에 별개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가 연구를 수행하던 시기에는 선회 실속은 냉전기 항공기의 발전에 따른 가스터빈의 연구 진전에 따라 익숙한 현상이었으나, 선회 캐비테이션은 아무래도 생소한 현상이었나보다. 나름 저자가 캐비테이션 영역이 회전하는듯 하게 자료를 잘 정리해서 지도교수에게 가져갔으나, 지도교수는 말도 안 되는 현상이라며 일축한 모습을 보면 말이다.
선회 실속이 축에 대해 비대칭한 압력구배로 인한 축 진동을 유발하는것처럼 선회 캐비테이션도 비슷하게 터보펌프의 축 진동을 일으킨다. 실제로 캐비테이션이 있다면 선회 캐비테이션은 정도가 심하건 심하지 않던 간에 반드시 나타나며, 이는 축 진동 혹은 압력 섭동 그래프 상에서 볼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75, 7톤급 엔진 터보펌프 개발 과정 중에서도 나타났던 현상이며, 이는 개발 기관인 KARI 에서 발표한 논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입구압 저하 시에 나타났던 7톤급 엔진 터보펌프의 선회 캐비테이션 양상 |
해당 논문에서 찾을 수 있는 Waterfall 차트를 보면, 화살표로 표시된 터보펌프 축계의 회전 주파수 외에도 비교적 큰 압력섭동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회전 주파수와 같은 주기에 존재하는 압력섭동 성분을 조화 선회 캐비테이션, 그보다 낮은 주기에 존재하는 성분을 아조화 선회 캐비테이션, 그리고 높은 주기에 존재하는 성분을 초 조화 선회 캐비테이션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저자가 관찰했던, 인듀서 블레이드보다 더 빠르게 회전하는 캐비테이션이 아마 저 그래프 상에서의 초 조화 캐비테이션이 아닐까 한다.
위의 결과는 실제 엔진의 작동 조건에서는 나오지 않았으며 인위적으로 터보펌프의 입구 압력을 낮추어 얻어낸 결과라고 한다. 즉, 일부러 캐비테이션이 잘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여 시험을 진행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해당 터보펌프의 선회 캐비테이션 특성과, 그로 인한 안정성을 시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해당 논문에서는 터보펌프와 주변 배관에 가속도계 등의 센서를 장착해서 압력섭동을 측정하였으나, 저렇게 나타난 압력섭동 성분이 축에 대해 비대칭한 압력구배를 형성하기 때문에 높은 확률로 축 진동에서도 설계점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 최악의 경우 터보펌프 축계의 베어링의 파손과 그로 인한 폭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