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30일 토요일

Kamijo Kenjiro - 제 6장, 선회 캐비테이션 연구 - 연구의 실타래

1. 캐비테이션이 선회 실속처럼 회전한다?

1975년 9월부터 1년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 기계공학과의 Acosta 교수(Allan Acosta, 2020년 타계)의 연구실에 방문연구원으로 재직하였다. 일본 출신인 필자의 연구가 궁금하다고 말하였기에 1975년까지 NAL에서 진행하였던 인듀서에서 발생하는 캐비테이션의 가시화 연구를 소개하였다. NAL에서 와타나베 미츠오(渡邉光男) 연구원이 촬영하였던 고속 필름을 가져가서, 1976년 1월에 Caltech의 암실에서 필름 한장 한장을 인화지에 현상하였다. 이것을 정리하여 그림 6.1을 작성하였다.

그림 6.1. 캐비테이션 가시화 실험에서 촬영된 캐비테이션 형상

그림 6.2. 위의 그림 6.1 을 알아보기 쉽게 그래프로 정리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시간에 따라 변동하는 캐비테이션의 길이를 구하기 위해 그림 6.2를 작성하였다. 이 그림은 캐비테이션의 변화가 불가사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니까, 캐비테이션의 선회속도가 인듀서 블레이드의 회전속도보다 빠르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림 6.2에서 인듀서는 3 -> 2 -> 1 순으로 회전하는 것으로 대응되고, 캐비테이션의 길이도 동일하게 3 -> 2 -> 1 순서로 회전한다. 결과적으로 보이기에는, 캐비테이션 쪽이 인듀서보다 더 빠르게 회전한다.


2. 연구실 지도 교수에게 소개하였으나, 거절당하다

이 그림을 Acosta 연구실에서 소개하며 “캐비테이션의 선회속도가 인듀서 블레이드의 회전속도보다 빠를 가능성이 있다.” 라고 설명하였는데, “그것까진 궁금하지 않다.” 라는 반응이 돌아와서 좀처럼 관심을 끌 수가 없었다. 관심을 끌 수 없었던 것에 더하여 액체를 대상으로 한 분야에서 인듀서가 발생시키는 캐비테이션이 인듀서보다 빠르게 회전한다는 것, 그러니까 ‘현상을 일으키는 쪽보다 현상 쪽이 먼저 가버린다는 이야기는 상식적으로 웃긴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라고 생각되었다.
압축기 분야에서는 ‘선회 실속’ 이라는 유사한 현상이 알려져 있었고, 제트엔진의 실용화에 맞추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압축기 입구에 몇 개의 실속 영역이 생기는데, 이 실속 영역을 ‘셀’ 이라고 부른다. 물론, 선회하는 속도는 압축기 블레이드 회전속도 이하이다.
따라서, 셀 수가 1개가 아니면 그림 6.2에서 선회 캐비테이션의 선회속도가 인듀서의 회전속도보다 빠르다고 말할 수 없다. 다음으로, 인듀서 입구압력의 높고 낮음과 입구압력의 변동 주파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그림 6.3. 초음파 순간유량계로 측정한 압력 변동이다

즉, 그림 6.3에 보이는 바와 같이 입구 압력의 저하에 따라 입구 근처의 압력변동 주파수가 낮아지고 있으므로 이 현상을 (셀 수를 1개로 하지 않으면)설명할 수가 없었다. 


3. 논문을 작성하여 제출하였으나 거부당하다

이를 미국 기계학회의 심포지엄에 제출할 논문을 작성하여 일단락시켰다. 다만, 이 시점에서는 한층 고찰을 더하여 셀 수가 1개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 논문은 귀국 후인 1977년, 출장 여비가 나오지 않아 Caltech의 브레넨(Christopher Earls Brennen)준교수(현재 명예교수)가 겨울 애틀란타의 미국 기계학회(ASME)에서 대리발표 하였다. 이 논문을 ASME의 저널에 투고하였으나 캐비테이션 길이 표시에 오차가 있다는 이유로 거부되고 말았다.
이 논문은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그라이처 준교수(Edward M. Greitzer)가 ASME Journal of Fluid Engineering의 ‘The 1980 Freeman Scholar Lecture’ 중 인용하여 ‘선회 캐비테이션은 선회실속 현상과 유사하나, 별개의 현상이다.’ 라고 소개하였다. 신경은 썼지만, ‘선회 캐비테이션을 발생시키는 인듀서는 좋지 않다.’ 라고 또다시 먼저 판단하고 연구를 재개하지 않았다.


한 마디

선회 캐비테이션은 최근의 로켓 터보펌프 연구자라면 최소 한 번쯤은 들어봤을 현상일 것이다. 블레이드 전면에서 회전하는 것 자체는 선회 실속과 유사하나, 선회 캐비테이션은 상 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에 별개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가 연구를 수행하던 시기에는 선회 실속은 냉전기 항공기의 발전에 따른 가스터빈의 연구 진전에 따라 익숙한 현상이었으나, 선회 캐비테이션은 아무래도 생소한 현상이었나보다. 나름 저자가 캐비테이션 영역이 회전하는듯 하게 자료를 잘 정리해서 지도교수에게 가져갔으나, 지도교수는 말도 안 되는 현상이라며 일축한 모습을 보면 말이다.
선회 실속이 축에 대해 비대칭한 압력구배로 인한 축 진동을 유발하는것처럼 선회 캐비테이션도 비슷하게 터보펌프의 축 진동을 일으킨다. 실제로 캐비테이션이 있다면 선회 캐비테이션은 정도가 심하건 심하지 않던 간에 반드시 나타나며, 이는 축 진동 혹은 압력 섭동 그래프 상에서 볼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75, 7톤급 엔진 터보펌프 개발 과정 중에서도 나타났던 현상이며, 이는 개발 기관인 KARI 에서 발표한 논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입구압 저하 시에 나타났던 7톤급 엔진 터보펌프의 선회 캐비테이션 양상

해당 논문에서 찾을 수 있는 Waterfall 차트를 보면, 화살표로 표시된 터보펌프 축계의 회전 주파수 외에도 비교적 큰 압력섭동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회전 주파수와 같은 주기에 존재하는 압력섭동 성분을 조화 선회 캐비테이션, 그보다 낮은 주기에 존재하는 성분을 아조화 선회 캐비테이션, 그리고 높은 주기에 존재하는 성분을 초 조화 선회 캐비테이션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저자가 관찰했던, 인듀서 블레이드보다 더 빠르게 회전하는 캐비테이션이 아마 저 그래프 상에서의 초 조화 캐비테이션이 아닐까 한다.
위의 결과는 실제 엔진의 작동 조건에서는 나오지 않았으며 인위적으로 터보펌프의 입구 압력을 낮추어 얻어낸 결과라고 한다. 즉, 일부러 캐비테이션이 잘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여 시험을 진행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해당 터보펌프의 선회 캐비테이션 특성과, 그로 인한 안정성을 시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해당 논문에서는 터보펌프와 주변 배관에 가속도계 등의 센서를 장착해서 압력섭동을 측정하였으나, 저렇게 나타난 압력섭동 성분이 축에 대해 비대칭한 압력구배를 형성하기 때문에 높은 확률로 축 진동에서도 설계점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 최악의 경우 터보펌프 축계의 베어링의 파손과 그로 인한 폭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2023년 9월 24일 일요일

Kamijo Kenjiro - 제 2장, 로켓 펌프 연구를 시작하던 무렵 - 1년간의 해외연구

1. 해외 연구의 계기


미국 로켓 개발의 상황을 좀처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과학기술청의 장기재외연구원 제도를 통해 로켓 펌프 연구 진행 목적으로, Caltech 기계공학과의 Acosta 교수(회고록 시점에서 명예교수, 현재 고인)의 연구실에 1년간 재직하게 되었다.

2. Caltech 에서의 연구

Caltech 에서의 연구는, "인듀서 캐비테이션이 왜 유체계를 불안정하게 하는지 알아보고 싶다." 라는 Acosta 교수의 요청으로부터 시작하였다. NAL 가쿠다 지소에서 수행했던 인듀서 가시화 실험에서 캐비테이션에 의한 불안정 현상을 수도 없이 관찰하였으나 현상이 아무래도 복잡하여, 좀처럼 연구의 갈피조차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Acosta 교수의 말은, 이 분야는 미국에 있어서도 아직까지 미해결인 분야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 연구를 진행할 때에 있어 크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3. 펌프에 자동제어 이론의 접목, 그리고 이전에 이미 유사 사례가 있었다!

도쿄공업대학 대학원에서의 박사과정 동안 이자와 케이스케(伊沢慶介) 교수(회고록 시점에서 이미 고인)의 자동제어 이론을 청강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인듀서의 성능을 4 개의 파라메터(K1, K2, K3, K4)로 표현하여, 유체 회로에 선형 해석을 수행해 보면 2개의 불안정 요소가 나온다. 하나는 K1 으로, 이것은 펌프 다이나믹 게인(펌프 입구압력과 승압 사이의 관계)로 이미 알려진 파라메터이고, 나머지 하나는 K4로, 캐비티 체적유량과 관련된 변화 비율이다. Acosta 교수는 내가 도출한 해결 결과에 매우 만족하여, 4개의 파라메터를 K-팩터(Kamijo Factor)라고 불렀다. 만족한 듯한 이유로는, Acosta 연구실에서 K4와 유사한 파라메터를 'Mass Flow Gain Factor'라고 이름붙여 정량화를 진행했다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의외로 이 불안정 요소는 3년 전, 'Flow Compliance' 라고 명명되어 Pratt & Whitney 의 영(W.L. Young) 씨가 NASA 위탁연구보고서(Contract Report)에 발표하였다. Caltech 에서는 이 논문의 존재를 간과하고 있던 것이었다. 영 씨가 왜 Caltech 에서 발표한 논문에 자신의 논문이 인용되지 않은 것을 왜 항의하지 않았는지, 약간 의문이 들었다. 이윽고 나는 1977년 후술할 선회 캐비테이션에 대해 발표한 논문(ASME Paper) 에 영 씨의 논문을 인용하였다. 그 후, 영 씨의 논문은 많이 인용되게 되었다.

4. 추후 연구 주제 발견 - 선회 캐비테이션

어떤 때, Acosta 교수가 나의 일본에서의 연구에 대해 알고 싶어하여 인듀서에서 발생하는 캐비테이션의 불안정한 거동을 보여주는 가시화실험을 소개하였다. 1973년 쯤에 촬영한 고속촬영 필름을 일본으로부터 가져와 Caltech 기계공학괴 암실에서 필름을 한 장 한 장 인화지에 인화하여 정리하였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불안정한 캐비테이션의 모양을 간단한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캐비테이션이 일으키는 새로운 현상인 '선회 캐비테이션'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림 6.1. 저자가 Acosta 교수에게 보여준 선회 캐비테이션 고속촬영 사진

5. Caltech 에서의 연구 - 동료의 대리발표

Caltech에 재직하던 때, Acosta 연구실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던 크리스토퍼 브레넨(Christopher Brennen) 부교수(이후 교수가 되어, 현재는 저명한 명예교수) 와는 연구와 관련된 교류는 좀처럼 없었다. 하지만, 전술한 ASME의 겨울 전국대회에 준비하였던 Paper의 첨삭에 힘을 써 주었다. 귀국 후인 1977년 11월, 이 Paper 는 브레넨 씨가 대리발표 하였다. 나의 서툰 영어실력으로 발표하였더라면, 듣는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임이 확실했다. 1981년, 이 Paper를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그레이저(E.M. Greizer) 부교수가 ASME의 Review Paper 에 인용하여, 선회 캐비테이션의 특이성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브레넨 씨의 발표가 크게 공헌하지 않았을까 하고, 상당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6. 미국 NASA 연구센터 및 제작 회사 방문 추억

로켓 엔진과 관계된 것들을 가진 NASA 연구센터의 연구원이나 제작 회사의 연구자들과 면식이 있게 된 것은 Caltech에 재직중일 때였다. 소속된 Acosta 연구실은 NASA 마셜 우주비행센터로부터의 위탁으로, 우주왕복선 주 엔진(SSME) 액체수소 펌프의 동적 특성을 알아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 연구에 참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나는 꽤 자유롭게 NASA 연구센터나 로켓 제작회사를 방문하는 것이 가능했다. NASA 와 Acosta 연구실의 회의에도 출석하였던 관계로, SSME의 개발 진행상황을 아는 것이 가능하여 개발 방법 등도 슬쩍 엿보는 것이 가능했다고 느끼고 있다.
마셜 우주비행 센터를 방문했던 시기, SSME 엔진 연소가스의 기체에의 영향을 알아보는 모델 시험이 수행되었다. 이 시험설비의 견학을 허락받았던 때였다. 소규모의 고압 액체산소와 액체수소의 연소시험이 이루어지는 설비가 눈에 들어왔다. 우연히 주머니 속에 카메라가 있어서, "사진 찍어도 좋습니까?" 라고 묻자, "좋습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설비의 전경을 담기 위해서 2장의 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으나, 당시 미국은 로켓 기술에 관련해서는 이렇게 관대하게 공개하고 있었다.

마셜 우주센터 사진. 엔진 연소시험 및 우주발사체 기체 자체의 시험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한 마디

저자는 능력도 좋지만 운도 따라주었던 것 같다. 만약 저자가 저 시기에 연구를 수행하지 않고, 좀 더 뒤에 연구를 했더라면 저러한 기회가 찾아오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주왕복선 주 엔진 연구같은 정도라면 미국에서도 나름 국방 과제와 비슷한 레벨로 관리할 듯 한데, 국방 과제가 미국 대학에서 어떠한 식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미국 대학의 항공우주공학과 관련된 같은 랩실에서도 국방 과제를 진행하는 인원들과 그렇지 않은 인원들이 있다. 국방 과제를 하지 않는 인원들의 경우에는 꼭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더라도 펀딩을 받고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국방 과제의 경우,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면 펀딩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당 과제들에는 미국 시민권자들만이 참여 가능하다. 한술 더 떠서 두 집단이 사용하는 방은 물론 건물까지도 같은 연구실임에도 불구하고 분리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어봤다. 
대학이 아니라 최근에 우후죽순 생겨났던 우주 관련 스타트업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안다. 지인들 중 로켓 연소실 관련 연구자가 있는데, 그 지인은 한국에서 로켓 연소실 및 노즐 제작 공정을 스페이스 X 보다 더 먼저 정립한 사람이었다. 이럴 정도로 능력이 좋은 연구자인데, 잠시 미국에 건너가서 일했던 우주로켓 스타트업에서는 핵심적인 연구에는 참여조차 불가능했다고 했다. 
본문에서 저자는 NASA 의 연구센터는 물론 제작 회사에까지 자유롭게 들어가서 관련된 인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고 했는데, 아마 내가 언급한 위의 두 사례와 비교해 보면 저자는 충분히 핵심적인 연구까지 수행했던 것이었다고 짐작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저렇게 미국이 비교적 관대했던 시기에 로켓 개발을 시작했던 일본이 운이 좋았던 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만약에 저자가 연구를 진행하던 시기 미국이 최근과 같은 태도를 보였더라면 저자가 선회 캐비테이션과 같은 현상에 대해 이론을 정립하는 등의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2023년 9월 17일 일요일

Kamijo Kenjiro - 제 2장, 로켓 펌프 연구를 시작하던 무렵 - 연구용 펌프 제작

1. 연구용 액체산소 펌프 제작 - 베어링 및 씰

다음 과제는 액체산소 펌프를 더 안전한 구조가 되도록 하는 설계법이었다. 액체산소 환경에서 임펠러와 케이싱이 접촉한다면, 마찰열로 인해 액체산소가 증발하여 임펠러가 폭발적으로 연소해버릴 가능성이 있다. 펌프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펌프 내부에서의 누설을 줄이는 임펠러와 케이싱 간의 씰(웨어링 링 씰이라 부른다) 구조가 중요하다.
당시 미국에서도 알루미늄 합금제 임펠러가 로켓의 액체산소 펌프에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산화성이 지극히 강한 액체산소이기 때문에 알루미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나는 임펠러와 케이싱 간의 접촉이나, 접촉 시의 발열 억제에 신경쓴다면 알루미늄 합금제 임펠러는 사용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웨어링 링 씰을 구성하는 임펠러의 일부에 두꺼운 산화방지 피막(알마이트 층. 알루미늄 산화 피막이다.)을 적용하고, 케이싱 측에는 극저온에서의 윤활 성능이 좋은 카본을 함유한 테플론을 링으로 적용하였다. 시험 후의 상태는 그림 2.2와 같았는데, 접촉하여도 부드럽게 미끄러져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알루미늄 합금제의 웨어링 씰 구조가 가능하다고 확신하였다.

웨어링 링 씰의 구조. 케이싱 측의 'ABRADABLE MATERIAL'에 임펠러 측(ROTOR) 이 파고들어가는 방식이다.
저기서 ROTOR 라 표기된 부분에 알루미늄 산화피막, ABRADABLE MATERIAL 로 카본 - 테플론 복합재를 적용했다.

그림 2.2. 왼쪽이 알루미늄 합금제 액체산소 펌프 임펠러, 오른쪽이 펌프 케이싱이다.
펌프 입구 슈라우드 부분에 알마이트(アルマイト)층을 형성했고, 그 위에 마찰흔이 보일 정도로 접촉했는데 발화하지 않았다.
펌프 케이싱 입구 쪽에는 카본-테플론 복합재 링(テフロン入りカーボンリング)이 웨어링 링으로 적용되었다.

제1장(영역된 버전이 돌아다님)에 서술하였듯이, 로켓의 액체산소(90 K) 나 액체수소(20 K) 펌프의 베어링은 펌프 작동유체로 냉각시키는 자가윤활 베어링을 쓴다.(그림 1.18 참조). 그리고 축 씰은 베어링과 함께 로켓 터보펌프에 있어 지극히 중요한 기술이다. 고맙게도, 미타카 시에 있는 NAL 본소의 윤활연구실 실장을 맡고 있던 미야가와 유키오(宮川行雄) 씨는 1970년 쯤 이 양 주제를 상대로 베어링에 대해서는 NTN 동양 베어링, 축 씰에 대해서는 이글 공업과 협력하여 실용화 단계까지 도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결과, 펌프 설계에 있어서는 베어링이나 축 씰의 냉각을 얼마나 효율 좋게 할 것인지를 고려하는 정도로 충분했다. 베어링과 축 씰의 연구는 후에, NAL 가쿠다 지소 로켓 유체기계 연구소의 노자카 마사타카(野坂正隆) 씨 등에 인계되었다.

그림 1.18. 자가윤활 베어링의 개략도.
베어링 케이지에 PTFE 등 테플론 계열 소재가 적용되어 자가윤활 작용을 수행한다.

2. 연구용 액체수소 펌프 제작 - 축 진동

매분 수만 회전을 넘길 정도로 고회전인 터보펌프 시험을 할 때에, 특히 주의 깊게 보는 것으로는 축 진동이 있다. 진동의 진폭이 10 ~ 20 마이크로미터 정도로 작은 터보펌프의 운전은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1975년 쯤부터 NASDA와 NAL 은 액체산소/액체수소 엔진의 기술자료를 취득할 목적으로 공동연구를 수행하였다. 1975년, 내가 기본 설계를 수행한 액체수소 펌프가 과도한 축 진동 때문에 설계회전수(45,000 RPM) 에서의 운전이 불가능했던 힘든 경험을 맛보았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액체수소 펌프의 임펠러에 사용할 수 있는 경량의 재료로 알루미늄 합금이 있었다. 소재의 강도 제한 때문에 임펠러 2 개를 직렬로 적용한 구성이었다.(알루미늄의 항복강도가 티타늄보다 낮아 임펠러 하나로 원하는 압력상승을 달성할 수가 없다) 임펠러 등 회전체를 지지하는 베어링의 위치는 여러 구조가 고려되었다.(그림 1.21 참고)

그림 1.21. 터보펌프 축계의 베어링 적용 방식들. (a)가 LE-5에 적용된 방식이며, LE-7 에는 (b) 방식이 적용된다.

펌프 측 베어링을 인듀서와 제 1단 임펠러 사이, 혹은 제 1단 임펠러와 제 2단 임펠러 사이에 위치시키면 축 진동 억제에 유리할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상상 가능했다. 하지만, 베어링을 지지하는 구조나 펌프 내부의 유로(2차 유로라고 한다.)가 매우 복잡해진다. 더욱이, 로켓 펌프에 관한 한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분야였다.
제일 간단한 방법은 인듀서, 제 1단 임펠러, 제 2단 임펠러 모두를 펌프 측 베어링으로부터 돌출된 구조, 즉, 오버행인 구조가 있다. 축 진동 해결 결과를 참고하여 오버행이 큰 구조를 적용하였다. 1975년 여름까지 수력 설계와 기본적인 구조설계를 수행하여 NASDA에 제공하였다. 나는 직후 1년간 미국 Caltech에 객원연구원으로 재직하였다.
귀국하였던 1976년 말, 효고 현의 이시카와지마 하리마(石川島播磨重工, IHI)의 아이오이(相生) 시험장에서 그림 2.3에 도시한 펌프의 액체수소를 사용한 실매질 시험이 행해졌다. 펌프의 큰 오버행 부분과 모터를 홈이 파인 축(스플라인)으로 결합하여 구동시키는 방식을 적용하였는데, 2차 위험속도(회전축계 고유진동수들 중 두 번째) 근처에서 진폭이 큰 축 진동이 발생하여 설계회전쉐서의 운전에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이때는 정말 죄송스런 일을 해 버리고 말아 크게 후회했다.

그림 2.3. 연구용 시제 액체수소 펌프의 임펠러 사진. 인듀서와 원심 임펠러 2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베어링은 2단 임펠러 후방에 위치한다.
인듀서, 펌프 임펠러 두 개 모두 오버행인 구조이다.

이때, 후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실기 개발에 큰 문제를 야기하는 중요한 사항, 즉, 액체수소의 낮은 점성으로 인한 감쇄부족(일반적으로는 펌프 작동유체의 점성에 의해 축 진동이 억제된다.)의 축 진동에의 영향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것에 소홀했다. 
이후의 우리나라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개발에 대해, 당시 IHI 기술연구소의 사이토 오시노부(忍) 씨가 중심이 되어 수많은 축 진동의 난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여기에 밝히고 싶다.


한 마디

이번 에피소드는 저자가 개발할 터보펌프들에 사용될 기본 구조에 대해 미리 연구를 수행해 본 내용이었다. 액체산소 펌프 내용은 직후에 개발될 LE-5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에 그대로 적용되었으며, 알루미늄 합금제 임펠러에 알루미늄 산화 피막을 적용하고 케이싱에 탄소-테플론 복합재 링을 적용한 웨어링 링 씰 구조는 지금까지도 LE-5B-3 에 사용되고 있다. 
액체수소 펌프 연구로는 저자가 좀 미련을 가지고 있는듯 하다. 상대적으로 짧게 서술되어 있는 액체산소 펌프와는 달리 액체수소 펌프는 저자가 회전체동역학적 불리함을 간과하고 설계한 나머지 그에 대한 문제가 속출했고, 이게 왜 나오게 됐는지까지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저자도 저런 오버행이 큰 구조가 불리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는 있었을듯 하지만 축계의 밸런싱 결과를 믿고 그대로 설계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 듯 하다. 밸런싱을 매우 정밀하게 한다면 언급된 펌프 작동유체의 점성과 매우 작은 편심 질량 덕분에 임계속도에서의 축 진동 진폭이 그렇게까지 크진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 한데...아마 저자 옆에 회전체동역학 전공자가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당연히 뜯어 말렸을 것이다. 그리고 언급했다시피 저자는 액체수소의 극히 낮은 점성에 대해 간과했었고. 하지만 액체수소 펌프 시험에서 실패한 경험이 직접적으로 담당하진 않은 LE-5 는 몰라도 이후의 LE-7에 까지 이어져서 결과적으로는 성공으로 이어지게 했던, 귀중한 경험이었던듯 하다. 
일본 터보펌프 연구 사례에서 발견되는 것이, 터보펌프의 실매질 시험을 NASDA 나 NAL 시설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펌프 제작 업체인 IHI 의 자체 시험시설에서 수행한다는 것이다. 물론 터보펌프 시스템 시험과 같이 펌프 작동유체와 터빈 작동유체 모두를 사용하는 시험은 NASDA 등에서 수행했지만. 한국의 경우는 이와 다르게 실매질 시험과 상사매질 시험, 그리고 터보펌프 시스템 시험 모두 주 연구 기관인 KARI의 시설에서 수행한다. 정확히는 상사매질 시험은 대전의 본원에서, 실매질 시험과 시스템 시험은 나로우주센터 내에 위치힌 시설에서 수행한다. 아무래도 가스터빈 업계에 몸담고 있다 보니 한국 내에서 개발된 터보펌프를 제작하는 제조기업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당분간은 저런 시험시설을 국내 제조기업들에서 구축하지는 않을것같다.

2023년 9월 16일 토요일

Kamijo Kenjiro - 제 2장, 로켓 펌프 연구를 시작하던 무렵 - 손으로 더듬는 연구

1. 연구를 위해 시골로의 이동

연구는 미야기 현 가쿠다 시의 NAL 가쿠다 지소에서 수행하기로 하였는데,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는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 다만, 내가 대학을 떠나던때 아무래도 벽촌인 도호쿠 지방에서 일한다는 것이 신경쓰여서인지 기계공학과의 아오키 히로시(青木弘, 회고록이 쓰여진 시점에선 이미 고인) 교수가 중심이 되어 타마 강 상류에서 성대한 송별 바베큐 파티를 열어주었다.
확실히 구 일본 제국해군 화약공장 철거지에 설치된 NAL 가쿠다 지소나 그 주변은 아직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다. NAL 가쿠다 지소는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는 관사로부터 약 1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도로는 포장되지 않아 비가 오는 날에는 진창길을 자동차로 달려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가쿠다 우주센터 항공사진. 바로 앞에 논이 보이는 시골에 위치해 있다.


2. N 로켓 계획의 등장과 연구 주제 변경

이러한 불편은 하나도 신경쓰이지 않았으나, NAL 가쿠다 지소에서 로켓 펌프 연구를 시작하던 시기에 우리 나라가 개발할 실용 로켓은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한 N 로켓으로 결정되었다. 나는 대학으로의 재취업도 진지하게 고려하였다. 똑같이, 많은 젊은 로켓 기술자들은 의기소침해 버렸다. "이번에는 액체산소와 액체수소를 추진제로 사용하는 선진 로켓을 연구해 보자." 라는 선배의 설득에 정신을 가다듬고 고속 로켓 펌프의 시제 제작과 이것에 필수적인 인듀서의 실험 연구로 대체하였다.
먼저, 1972년부터 1973년까지, 고속/고압 액체산소 펌프 시제를 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기술을 가능한 잘 이용하여 설계하였으나 로켓 펌프의 중요 부품인 인듀서의 자료는 불충분하였다. 인듀서의 중요한 설계 파라메터를 얻기 위하여 1972년, 3개의 인듀서를 제작하고 작동 유체를 물로 하여 시험을 진행하였다.

그림 2.1. NAL 가쿠다 지소의 시험실에서 청진기로 시험 장치의 상태를 확인하는 저자.
인듀서 연구 초기 시기의 모습이라고 한다.


역대 일본의 액체로켓들. 왼쪽의 N-I 부터 H-I 까지가 N 로켓 계획으로 개발된 발사체들이다.
미국의 토르-델타 기술을 도입하여 개발되었는데, 후기의 H-I 에 이르러서는 2단 엔진을 일본산 LE-5로 바꾸었다.

3. 인듀서 설계 파라메터 취득

이 시기에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Caltech이라 불린다) 기계공학과의 앨런 아코스타(Allen Acosta) 교수가 미국 최대의 로켓엔진 제작사의 기술자(L.B. Stripling)과 함께 미국 기계학회(ASME)의 논문지(Journal of Fluid Engineering)에 발표한 인듀서에 관한 논문을 알게 되었다. 인듀서 블레이드 표면에서 발생하는 캐비테이션 형상을 구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대학원에서 당시로는 최신식인 대형 컴퓨터를 사용해본 경험이 있어서 이 인듀서의 캐비테이션 형상을 구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었다.
상기 3개의 인듀서로 얻은 결과와 계산 결과를 비교하면서 인듀서의 중요한 설계 파라메터를 정량화할 수 있었다. 이 방법은 NASA 에서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1971년 출판된 일종의 로켓 펌프 교과서라 할 수 있는 NASA SP-8052(LIQUID ROCKET ENGINE TURBOPUMP INDUCERS)에, 계산해서 얻어낸 캐비테이션 형상에 대해, 어떠한 형상으로 결정할 것인지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었다.
Caltech에 1년 동안 객원연구원으로 재직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 사실과 관련있다. Caltech에 체류해 있던 시기, Acosta 교수가 이 이론의 중요성을 빠르게 알아차린 것을 높게 평가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한 마디

일본의 우주발사체 개발 초기 단계에서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내용인듯 하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로켓 연구시설은 특성상 외딴 곳에 위치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높은 확률로 대도시에 위치해 있을 고급 연구인력들이 그러한 지역으로 나가서 연구활동을 해야 하고, 이에 따른 고충과 기피도 있었을것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에서도 현재진행형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다. 
저자는 아무래도 시골 태생이었다보니 그러한 문제에서 자유로웠던 모양이다. 도쿄라는 대도시에서 학위과정을 거쳤으면 도시 생활에 적응해버렸을법도 한데 그렇지 않은 모습도 보여줬다. 이는 NAL 가쿠다 지소 창설 초기의 정리되지 않은 환경을 보고도 악담을 퍼붓는 것이 아니라 추억이었다고 회상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나 역시도 동일한데, 나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을 수도권에서 다녔긴 했지만 딱히 서울 근교에서의 생활이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리고 저자는 꽤 적극적인 인간인듯 하다. 일반적인 연구자라면 참고 문헌에서의 내용을 자기가 검증만 하고 굳이 그걸 논문 교신저자에게 인상깊었다고 연락을 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결국 저자에게 이득이 되어 돌아왔다. 저자는 그 참고 문헌의 저자인 아코스타 교수의 연구실에 방문연구원으로 재직하는 것이 허락되어 미국에서의 연구활동을 수행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해당 참고 문헌은 나도 읽어보고 간단히 리뷰할 계획이다.
그런데, 저자의 이러한 행동 역시 나와 유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현재 가스터빈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중인데 여러 논문을 읽고 리뷰하던 도중에 흥미로운 가스터빈 기관에 대해 대학 차원에서 연구한 사례가 있었다. 에어 터보 램제트(Air Turbo Ramjet) 연구 사례였는데, 마침 우리 연구실에서 생각하고 있던 가스터빈의 개조 형태와 유사했다. 따라서, 해당 저자의 논문 몇 편을 더 읽어보고 대략적인 연구의 방향성을 파악한 다음 메일을 보내 "우리 연구실에서의 연구 내용이 이러이러한데 논문들을 찾다보니 귀하의 연구 주제가 매우 흥미로웠다. 논문 내용 중에서 이러한 부분이 있는데 이건 내가 이렇게 이해하면 되냐?" 라고 메일을 보내본 적이 있다.

2023년 9월 9일 토요일

Kamijo Kenjiro - 제 2장, 로켓 펌프 연구를 시작하던 무렵 - 연구 주제가 결정된 면접시험

1. 대학원에서의 연구 주제

나는 1970년 9월 도쿄공업대학 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치고, 동년 10월에 과학기술청 항공우주기술연구소(航空宇宙技術研究所, NAL. 현재는 JAXA)에 취직하였다. 대학원에서는 펌프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던 쿠사마 히데토시(草間 秀俊) 교수 아래에서 연구를 시작하였으나, "펌프는 이제 낡았으니 유압에 관련된 연구를 하도록 하게." 라고 펌프와는 좀처럼 관계없는 연구를 권하였다. 결국, 유압이나 윤활에 관련된 "좁은 틈 사이를 흐르는 유동과 관련된 연구" 가 박사 논문이 되었다. 물론 연구실의 세미나 라던가, 교수의 원고 집필 조력작업 등을 통하여 펌프 기술에 대한 지식은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었다.


2. NAL에 취직한 경위

쿠사마 교수는 대학원 수료 후의 나에게 도쿄 소재 모 사립대학으로의 부임을 추천하였다. 하지만 그 대학의 캠퍼스는 좁고 인공적이어서, 자연과의 어우러짐의 정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데다가, 당시 도쿄의 자연, 특히 하천 등은 매우 오염되어 있었기 때문에 신슈(信州, 현 나가노 長野) 출생이었던 나로서는 도심에서의 연구에 자신이 없었다.
자연이 풍부한 취직 장소를 찾았다. 기계공학과 교수의 추천도 있어서 미타카(三鷹)에 본부가 위치한 NAL에 취직하게 되었다.

구 NAL 본소, 현 JAXA 쵸후 항공우주센터.
과거에 정문의 위치가 미타카 시 쪽에 있었으나 현재는 쵸후 시에 위치한 관계로 주소도 쵸후 시 이름으로 나온다.


3. 일생동안의 연구 주제 결정

NAL에서의 연구를 결심했던 것은 동 연구소의 야마우치 마사오(山内 正男, 회고록 시점인 2014년엔 이미 고인)과의 면접이 계기가 되었다. 야마우치 씨는 후에 NAL 소장, NASDA(우주개발사업단, 宇宙開発事業団) 이사장, 후에는 우주개발위원을 역임한 우리나라 로켓개발의 선구자였다.
야마우치 씨는, "쿠사마 교수의 제자니까 액체수소나 액체산소 로켓 펌프 연구를 해 주었으면 한다." 라고 기대하였다. 고속, 고압의 로켓 펌프 연구에는 꽤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답하여 여기서 일생 동안의 연구 주제가 정해졌다.



한 마디

뭐랄까, 저자가 로켓엔진 터보펌프 연구를 일생 동안의 연구 주제로 고르게 된 계기가 내가 터보펌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랑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도 권유를 받기 전 이미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한술 더 떠서 한국 내에서 터보펌프를 파는 학생으로 특정을 당할 정도로 현재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전공했던, 혹은 하고있는 분야가 펌프는 아니라는 점도 똑같다.
그리고 저자가 복잡한 도심에서의 생활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던것처럼, 나도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 놀고 볼 곳은 많지만 시끄러운 도심보다는 비교적 조용한 지방에서의 연구가 나에겐 더 맞는것같다.
저자의 지도교수가 펌프 기술은 낡은 기술이라 다른 연구분야를 저자에게 권했는데, 현재 펌프가 어디에 쓰이는지를 알고 나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진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야나, 펌프 충분히 잘 먹힌다. 연구하도록 하자!"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펌프 자체는 낡은 기술은 맞다. 하지만 현재는 액화 천연가스나 더 나아가서는 액체수소 등의 에너지원을 위하여 극저온 펌프가 사용되어야만 하는데, 이 극저온 펌프 기술은 최첨단 기술이라고 불린다. 한국에서도 이 극저온 펌프 기술을 국산화하여 국내의 극저온 플랜트에 사용되는 펌프를 국산화하는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라고 안다.
이처럼 언뜻 보면 예전부터 있었던 낡은 기술일지라도 기술 발달 및 환경 변화에 따라서 다시 발굴되어 최첨단 기술로 불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는것 같다.

2023년 9월 3일 일요일

Kamijo Kenjiro - 제 4장, 고압 펌프 선행연구 - 액체수소 펌프

1. 고압 액체수소 펌프 

이 시험(고압 액체산소 펌프) 후, 그림 4.4와 같은 액체수소용 2단 원심 펌프 시제 시험이 행해졌다. 펌프의 사양은 회전수 80,000 RPM, 차압 26 MPa, 유량 43.9 L/s 였다. 시제에 대해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펌프 측 베어링의 위치와 축 씰에 플로팅 링 씰을 적용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구조를 검토한 결과 발화할 가능성이 없는 액체수소에 의한 냉각작용이 기대되기 때문에 플로팅 링 씰을 적용하였다.

그림 4.4. 고압 액체수소 펌프 시제 단면도. 
베어링이 인듀서 - 전방 임펠러 사이에 위치한 것과, 구동축 측의 세 개의 플로팅 링 씰(フローテングリングシール)에 주목.

2. 고압 액체수소 펌프의 효율 측정

플로팅 링 씰을 적용하였기 때문에 베어링을 냉각하고 외부로 방출되는 펌프 작동유체의 양이 줄어들어 이전에 언급한 효율 측정법은 필요 없어졌다. 압축성을 무시할 수 있는 시험조건에서 구한 단열 효율과 펌프 효율의 비교를 그림 4.5에 나타내었다. 양자가 잘 일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간편한 효율측정법을 정립하는 것이 가능했다. 나아가, 제 1장의 식 (7)에서 제시한 참값에 가까운 효율(𝝶tr) 은 단열효율을 이용하여 용이하게 구할 수 있으므로 압축성이 큰 액체수소 펌프의 효율측정법도 정립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림 4.5. 고압 액체수소 펌프의 단열 효율과 펌프 효율의 비교.
둘이 거의 일치함을 알 수가 있다.


엔트로피 - 엔탈피 선도. 식 7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식 7.
위의 엔트로피 - 엔탈피 선도와 비교해 보면 ∑𝞭his,i 는 선도 상에서 대각선 점선으로 나타난 부분을 적분한 것이라는걸 알 수 있다.

첨언 - 참고 문헌으로부터

원문에서는 고압 액체수소 펌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여 참고 문헌에서 찾은 자료로 보충한다. 참고 문헌과, 참고 문헌에서의 설명은 아래와 같다.
펌프 임펠러는 티타늄으로 제작되었으며, 티타늄의 강도로 결정되는 접선 방향 속도로부터 임펠러 1개당 낼 수 있는 압력은 150 ~ 180 kgf/cm^2 정도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펌프 출구 압력이 275 kgf/cm^2 정도는 되어야 하므로  원심 임펠러 두 개로 구성하였다. 이 때문에 원심 임펠러는 베어링 사이에 위치하게 되어, 인듀서와 1단 임펠러 사이에 배치할 베어링을 위한 입구 정익을 설치하게 되었다.
고압 액체산소 펌프와 동일하게 밸런스 피스톤 매커니즘으로 축 추력을 조정하였으며, 축 씰로는 펌프의 압력이 높기 때문에 저널 베어링의 원리를 이용한 플로팅 링 씰 세 개를 적용하였다. 

고압 액체수소 펌프의 시험은 실매질인 액체수소가 아니라 액체질소로 수행하였다. 구동 전기모터의 제약(아마도 NASDA의 650 kW 짜리를 사용한 듯)으로 인하여 펌프 토출압력의 최대치는 17.5 MPa 로, 설계값인 27 MPa에 비하면 꽤 낮았다. 하지만 성능시험 결과로부터 액체수소 시험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성능추정 방법을 정립하였다.
그림 7로부터 펌프 출구 온도는 입구 온도 대비 약 12 K 정도 상승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액체질소의 압축과 펌프의 마찰손실 등으로 인한 온도상승이다. 극저온 유체의 이러한 성질을 이용하면 액체수소 펌프 내부에서의 압축 과정을 추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림 7. 실매질인 액체수소가 아닌 액체질소로 시험한 결과.
펌프의 압력 상승에 따라 펌프 출구 온도도 함께 상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액체질소 시험으로부터 펌프 효율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것을 압축기 등의 성능 측정에 사용하는 단열효율과 같다고 판정하고, 액체수소의 압축과정을 엔탈피 - 엔트로피 선도 위에 표시한 결과가 그림 8과 같다. 점선은 등엔트로피 변화이며, 실선은 예상되는 압축과정이다. 
0.3 MPa (3.01 kgf/cm^2) 의 액체수소가 2단 원심 펌프에 의해 30 MPa (306 kgf/cm^2)까지 압축된 결과를 등 엔트로피 변화로 판정하면 0.0838/0.0690 = 1.21 의 밀도 상승이 되나, 추정되는 실제 밀도 상승은 0.0750/0.0690 = 1.086 정도로 비교적 작다.  여기서, 펌프 출구에서의 액체수소 온도는 49K 정도로 입구(약 21 K)에 비하면 28 K 정도로 높아질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그림 8. 펌프 입구 조건과 출구 조건, 그리고 그 사이에서의 압축 과정을 엔탈피 - 엔트로피 선도에 나타낸 결과.
펌프 출구의 온도(49 K) 선도와 엔탈피 선도의 교점을 찾고, 그곳까지의 압축 과정을 추정하여 진 효율을 구하였다.


정리하자면 극저온 유체가 펌프를 통과할 시 여러 원인으로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이용, 펌프 출구 온도를 엔탈피 - 엔트로피 선도에 반영하여 실제 효율을 구해나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펌프 입구과 출구 양 지점 사이에서의 온도는 적절히 추정하여 선도에 반영, 효율 추정에 활용한다.


3. 대형 액체산소/액체수소 엔진 개발 선언

NASDA는 상기의 고압 펌프 연구의 진행상황에 주목하고 있었다. 소형 고압 액체산소 펌프 시험 후인 1982년 여름, 우주개발위원을 맡은 후 NASDA 이사장에 취임한 야마우치 마사오(山内正男) 씨가 NASDA의 가쿠다 로켓개발 센터를 방문하였다. NAL과 NASDA 직원 앞에서, "NASDA는 1단용 액체산소/액체수소 엔진을 개발한다." 라고 선언하였다. 깜짝 놀라 순간 내 귀를 의심하였으나 그 뒤의 간담으로부터 NASDA는 진심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예산이 요구된 원리 연구의 목적을 바꾸어 고압 펌프 연구를 시작해 버린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기 시작하던 때에 일어났던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로켓 개발에 도움이 되는 선행 연구가 되었던 것에 기쁘게 생각하고, 잊지 못했던 추억이 되었다.


한 마디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개인적으로 의외의 사실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이전 고압 액체산소 펌프 부분에서는 펌프 제작에서의 어려움도 나름 심도 있게 다루었는데 이번 고압 액체수소 펌프에서는 그러한 점이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자는 액체산소의 산화성과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추진제 혼합방지 씰에 대해서 깊은 궁리를 하였고, 그러한 내용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액체수소 펌프는 액체산소 펌프보다는 비교적 쉽게 개발했던 것이 아닐까 추정한다. 사실 이 고압 액체수소 펌프 이전에도 LE-5의 액체수소 펌프에 사용될 수 있는 시제 소형 액체수소 펌프를 제작하여 실제 시험도 수행한 경험이 있었다.

플로팅 링 씰의 경우 이전 LE-5의 액체산소 펌프에 적용하여 큰 실패를 맛보고 해당 씰을 플로팅 링 씰의 일종인 세그먼트 씰로 바꾸어 시험하였다는 사실을 이전에 언급한 적 있다. 세그먼트 씰은 플로팅 링 씰과 달리 씰 표면에 무늬가 파여있어 씰 자체의 성능은 플로팅 링 씰보다 우수할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여기서 언급된 내용으로는 액체산소 펌프 시험에서 사용한 효율 측정법을 적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누설이 적었다는 점에서 세그먼트 씰보다 성능이 우수했음을 알 수 있다. 막연하게 플로팅 링 씰은 축과 일정 부분 틈새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단순한 실린더 형상이라 자동 조심 효과를 제외한다면 씰 자체의 성능은 타 씰 대비 낮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것을 반성해야겠다고 느꼈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LE-5의 액체산소 펌프에 적용했던 플로팅 링 씰이 어땠길래 실패했다고 표현했는지 궁금해진다. 터보펌프 폭발은 LE-7 이전까진 없었다고 했는데...

또, 저기서 극저온인 액체수소의 냉각 작용을 기대하여 플로팅 링 씰을 적용하였다고 했는데,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KSLV-II 의 75, 7톤급 엔진 터보펌프 축계 설계를 수행한 연구자들로부터 들은 적 있다. KSLV-II의 터보펌프들은 추진제 혼합방지 씰에 플로팅 링 씰의 일종인 스플릿 카본 링 씰을 사용하는데, 얼핏 생각하기로는 가연성 물질인 카본으로 이루어진 씰 링이 축과 마찰이라도 한다면 즉시 액체산소와 반응, 발화할 수도 있을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카본은 다공성 물질로, 카본 링 내부에 액체산소가 침투하여 냉각작용을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어느정도 마찰하더라도 액체산소로 냉각되어 발화점 이상의 온도로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저 연구 이후 저자를 포함한 일본의 터보펌프 연구자들도 플로팅 링 씰과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부조화를 해결하여 LE-7 부터는 액체산소 터보펌프에 플로팅 링 씰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의 재사용을 위한 터보펌프 회전축 씰 개발 방향성 - 이글 인더스트리 연구자의 논문 리뷰

최근에 일본의 터보펌프와 관련하여 좋은 논문들을 담은 학회지를 입수했다. 일본  터보기계협회(ターボ機械協会, Turbomachinery Society of Japan) 의 협회지로, 터보기계와 관련된 일본의 논문들이 올라왔다. 물론 수록된 논문은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