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페이스X 를 위시한 뉴 스페이스(New-Space) 기업들의 우주발사체 개발이 활발한 가운데, 액체로켓엔진 시스템의 성능 향상을 위한 방법들 중 추진제의 과냉각(스페이스X 관련 글들에서는 'Subcool' 이라 언급됨)이 떠오르고 있다.
과냉각된 추진제는 온도가 낮은 만큼 밀도가 늘어나 같은 부피의 추진제탱크에 더 많은 질량의 추진제를 담을 수 있으며, 터보펌프의 작동 측면에서도 캐비테이션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어 바람직하다고 알려져왔다.
통념적으로 극저온 유체를 포함한 유체들은 낮은 온도에서 평상시보다 낮은 증기압 특성을 지녀 기화하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터보펌프의 작동 변수들 중 중요한 '캐비테이션 수'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터보펌프는 캐비테이션 수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캐비테이션 현상이 심화되다가 결국에는 양정상승이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들어가므로, 캐비테이션 수를 높여주는 것이 캐비테이션 현상 저감에 도움이 된다는 통념이 타당해보인다.
![]() |
위키피디아에서의 캐비테이션 수 설명. 펌프에서는 분모에 펌프 블레이드 팁 속도, 분자에 증기압이 들어간다. |
![]() |
터보펌프 인듀서의 캐비테이션 수 - 양정상승 관계. 캐비테이션 수가 줄어들다 특정 구간에 다다르면 양정상승량이 급격하게 낮아진다. |
오늘 쓸 글은 과연 이러한 통념이 맞는지에 대해서이다. 과연 간단히 추진제의 온도를 낮추는 것만으로 캐비테이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1. 이론적 배경 -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
이 글을 쓰기에 앞서 내가 읽은 문헌이 있다.
바로 내 은인인, 일본의 터보펌프 1세대 연구자 카미죠 켄지로(上條謙二郎)와 동시기에 활동하였던 Christopher E. Brennen 의 'Hydrodynamics of Pumps' 이다. 브레넨은 이전 카미죠 켄지로와 관련된 연재글에서 잠시 언급된 바 있으며, 안면도 있었는지 카미죠 켄지로의 논문을 대리발표하기도 하였다.
![]() |
Christopher E. Brennen. 카미죠 켄지로의 저서에서 Caltech의 준교수(한국식으로는 조교수)로 언급된 인물. |
브레넨의 해당 저서에서는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에 대해 이론적인 설명을 언급하고 있다. 여담으로,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 역시 카미죠 켄지로가 저서에서 언급한 바 있으며, 당연히 나도 그 내용을 연재글에 싣고있다.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로 인해 액체산소, 액체수소 등과 같은 극저온 추진제가 케로신과 같은 상온 추진제 대비 더 낮은 유량 계수 영역(분모인 팁 속도가 높아지는데, 해당 변수는 캐비테이션 수에서 분모에 위치하므로 낮은 캐비테이션 수 영역임을 의미한다)에서도 흡입 성능이 유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도 특정 영역까지만 유지되며 그 이후로는 양정은 급격하게 저하되므로 효과가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는것은 아니다.
![]() |
미국의 문헌에서 확인되는 인듀서의 유량 계수(팁 기준) - 흡입 비속도 관계. 그래프 기준 높은 영역까지 올라가는 항목들을 자세히 보면 극저온 추진제가 작동유체임을 알 수 있다. |
2.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
우선 나는 일반적인 석사 졸업생 나부랭이A에 불과하며, 캐비테이션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거나 특정 인듀서 설계 파라메터에 대해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에 대해 계산할 능력은 안 된다는 점을 겸허히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브레넨의 저서는 해당 현상을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
브레넨의 저서에서 캐비테이션은 하나의 구(球)형 공동(저서에서는 'Bubble' 이라 언급됨)만을 가지고 있으며, 해당 모델(Spherical Bubble Model)은 Rayleigh-Plesset 방정식에 기반한다. 해당 모델에서는 공동의 반지름 R(t)와, 공동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작동유체의 압력 p(t) 간의 관계를 정의하고 있다.
![]() |
공동 반지름과 작동유체 압력 간의 관계 |
위의 식에서 p(t) 외의 pB(t) 는 공동 내부의 압력이며, R은 구형 공동의 반지름, 𝞺L 은 작동유체의 밀도이다. 여기서 p(t) 는 계산에 필요한 입력 변수가 되며, 일련의 과정을 통해 pB(t)를 계산할 수 있다.
여기서 공동 내에 기체 뿐만 아니라 액상까지 존재한다면(학부 열역학 시간에 배우는 '건도'가 이럴때 쓰인다.)공동 내의 압력 pB(t) 는 아래와 같이 정의된다.
![]() |
공동 내 압력의 관계식 |
식의 우항을 잘 보면 공동 내의 증기압 pv(TB)가 pv(T∞) - 𝞺Lϴ 로 바뀌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전자는 공동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작동유체의 온도에서의 증기압을 의미하며, 후자가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를 나타내는 항이다. 여기서 𝞺Lϴ가 증가하면 공동 내의 증기압이 낮아지며, 감소하면 상승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의 원천인 ϴ 는 아래와 같이 정의된다.
![]() |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를 나타내는 관계식 |
위의 식을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식 6.1, 6.2와 연계해서 열전달 방정식을 세워서 풀어야 하지만 아래와 같이 일련의 근사식이 있다.
우선, 공동-액체 간 경계면에서의 온도구배는 아래와 같이 정의된다.
![]() |
공동-액체 간 경계면에서의 온도를 정의하는 관계식 |
여기서 kL 은 액체의 열전달 계수이다.
그리고 액체 구간에서의 열확산 방정식은 아래와 같이 단순화될 수 있다.
![]() |
단순화된 열확산 방정식 |
식 6.5에서 αL 은 액체의 열확산 계수로, 액체의 정압비열과 열전달계수, 밀도의 관계식인 αL = kL / 𝞺LCPL 로 정의된다.
상기 식 6.4와 6.5 를 6.3에 적용하면 아래와 같은 열역학적 효과의 관계식이 도출된다.
![]() |
문헌 상 식 6.6과 6.7로 설명된 식을 합친 것. |
언뜻 보기에 T∞ 로 언급되는 작동유체 온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열역학적 효과ϴ 도 커져서 공동 내의 압력도 낮아져 캐비테이션이 억제될 것처럼 보인다.
3. 실제 나타나는 현상은? - 통념과 반대된다.
우선 브레넨의 저서에 나와있는 캐비테이션 수 - 양정 간의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를 제시한다. 작동 유체는 물이며 온도를 달리하여 시험을 실시하였다.
![]() |
다양한 온도 영역에서의 원심 펌프 캐비테이션 실험 결과. |
그래프를 보면 증기압이 높아 캐비테이션이 더 잘 일어날 것처럼 보이는 고온으로 가면 갈수록 더 낮은 캐비테이션 수에서 양정이 저하됨을 알 수 있다. 이는 명백히 우리의 통념과는 반대된다.
하지만 아무리 물의 증기압을 높여서 극저온 유체와 유사하게 만들었다 하더라도 실제 극저온 유체에서는 안 그러지 않을까? 여기에 대해 브레넨은 J-2 엔진의 액체산소 펌프용 인듀서의 시험 결과를 제시한다.
![]() |
J-2 엔진의 액체산소 터보펌프 시험 결과. |
시험 결과를 보면 고온으로 가면 갈수록 양정을 상실하는 캐비테이션 수 영역이 낮아짐을 알 수 있다. 물론 고온에서는 액체산소 특성상 증기압이 급격히 상승하므로 그만큼 입구압을 높여서 시험했을 수도 있긴 하겠지만, 우주발사체에서 많이 사용하는 영역인 90K 와 95K 영역을 보면 믿을만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는 왜 나왔던 것일까?
여기에 브레넨은 작동유체 온도가 낮은 조건과 높은 조건에서, 초기 공동 크기가 동일한 상황을 가정하여 공동의 크기를 커지게 하는 내부 압력과 작아지게 하는 공동-작동유체 간 열전달에 대한 관계로 설명한다.
작동유체 온도가 낮은 조건에서는, 공동 내의 온도 자체가 낮으므로 포화증기의 밀도도 낮을 수밖에 없다. 겨울철과 여름철의 외부 습도에 대한 관계를 상기해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러면 당연히 공동 내로 기화하는 추진제의 양도 적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주변 액체로부터 빼앗아가는 열량도 낮을 수밖에 없다. 기화로 빼앗기는 열량이 낮은 만큼, 공동 내의 온도는 주변 대비 적게 내려가며, 이러면 공동 내의 증기압은 아주 약간 내려갈 것이다.
증기압이 적게 내려가니, 공동을 줄어들게 하는 힘은 줄어드므로 공동은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커지게 된다.
이를 위의 수식들로 설명해 보면(틀릴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자), 공동 내의 증기량인 mG 는 작을 것이고 포화증기 밀도 𝞺V 역시 작아져서 공동의 반지름 증가율인 dR/dt 에 큰 차이가 없다면 열역학적 효과 ϴ 도 작아지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공동 내의 압력을 낮추는 열역학적 효과가 작아졌으니 내부 압력인 pB(t)는 증가하여 공동을 커지게 한다.
작동유체 온도가 높은 조건에서는, 공동 내의 온도가 높아 포화증기 밀도가 높다. 이로 인해 공동 - 액체 영역 간 추진제 기화로 인한 열전달이 활발하게 일어나, 오히려 공동 내 온도는 크게 내려갈 것이다. 온도가 크게 내려갔으므로 내부 증기압이 크게 내려갈 것이다.
이것 역시 위의 수식들로 설명해 보면 포화증기 밀도 𝞺V 는 온도가 낮은 조건 대비 매우 커져서 열역학적 효과 항인 ϴ 가 크게 반영된다. 이러면서 공동 내부 압력 pB(t)는 내려가서 공동의 성장이 억제된다.
4. 추진제 과냉각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 |
과냉각된 추진제를 사용한다는 것으로 알려진 스페이스X의 Falcon9 |
이론적으로도 그렇고 실험 결과로도 과냉각된 추진제는 오히려 캐비테이션 특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만약 내가 인듀서 설계자라면 추진제 과냉각을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하고싶을 정도다.
하지만 '발사체 시스템' 차원에서의 추진제 과냉은 위에 언급했다시피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밖에 없다. 만약 발사체 시스템 측면에서 추진제 과냉각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터보펌프 설계자가 과냉각 배제를 설득할 수 없다면, 인듀서 설계자 입장에서는 당연하겠지만 과냉된 온도조건의 추진제 속에서 인듀서가 일으키는 캐비테이션의 특성을 파악하고 운전 가능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과냉되지 않은 일반적인 온도조건에서 캐비테이션 특성이 좋은 인듀서가 과냉 영역에서도 좋은 특성을 보일 것이겠지만, 이는 인듀서가 선택한 형상 특성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영향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
참고 문헌
[1] Hydrodynamics of Pumps, Christopher E. Brennen
[2] ロケット用小型高速高揚程液体酸素ポンプの試験的研究, TR-415, 上條謙二郎 외.
[3] Liquid Rocket Engine Centrifugal Flow Turbopumps, NASA SP-8109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