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1일 월요일

Kamijo Kenjiro - 제 4장, 고압 펌프 선행연구 - 연구비 마련

1. 연구의 시작

H-I 로켓의 LE-5 엔진 및 터보펌프의 개발이 목표이던 때 실장으로서 "이후 연구 테마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생각하였다. 문득 떠오른 "극저온 펌프의 고압화" 는 아주 좋은 연구 테마라고 생각하였다.
LE-5 엔진은 H-I 로켓의 제 2단에 장착되는 엔진이기 때문에 고공에서 작동된다. 따라서, 낮은 연소압에서도 가스의 분출속도를 높게 할 수 있는 고팽창 노즐이 사용되어 고성능을 달성한다. 실제 LE-5 엔진의 연소압은 3.5 MPa 로, 액체산소 펌프의 토출압력은 5MPa 정도이다. 
고압 펌프 연구의 정당성은 다음으로 설명 가능하다. 우리나라가 장래에 제 1단에 적용하기 위한 로켓엔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연소압 10 MPa 이상의 고성능 로켓엔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 1단의 개발, 정확히는 이걸 쓰는 대형 로켓의 개발에는 방대한 규모의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2. 터보펌프 개발에 있어서의 어려움

딱 이 시기에 LE-5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축 씰의 내구성능을 알아보는 시험 리그의 제작에 약 3천만 엔이 책정되었다. 일회용인 로켓엔진은 길어봤자 10분 정도 작동되면 좋으나, 이것을 보장하기 위해 엔진 부품은 30분 정도의 수명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고회전 축에서는 액체산소와 수소 과농 고온 터빈 구동가스를 확실히 분리하지 않으면 안 되고, 로켓의 터보기계는 일선 산업용의 유사한 기계들보다 훨씬 가혹한 환경에서 작동된다. 이 30분 정도의 내구성능이 문제가 된다.

LE-5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혼합방지 씰. 세그먼트 씰 형식이다.

위의 혼합방지 씰과 맞닿는 터보펌프 축의 시험 후 사진. 마찰흔이 보인다.

LE-5의 것은 아니나 LE-7 엔진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용 추진제 혼합방지 씰 시험 리그 단면도.
터보펌프와 유사한 구조임을 알 수 있다.

3. 연구를 시작하기 위하여

고압 펌프 연구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하여 씰 시험 리그의 제작을 NASDA 에 맞기는 것을 고려하였다. NASDA 는 이것을 납득하였다. 다음은, NAL 의 승낙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오오츠카 사다키치(吉) 가쿠다 지소장에게 설명하였다. 그러자, "그건 안 된다. 사용 목적이 확실한 연구비를 다른 목적으로 써선 안 돼!" 라는 강한 어조의 답변만이 돌아왔다. 확실히 들어보니 가장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여길 뭔가 더 크게 보고싶습니다." 라고 끈덕지게 들러붙었다. 1시간 이상의 옥신각신 끝에 지소장은, 야마우치 씨(男, 야마우치 마사오. NAL 소장을 거쳐 당시 우주개발위원)로부터 "NAL은 로켓 엔진에 대해 슬슬 새로운 연구를 시작해 보라." 라는 말이 있었다고 혼잣말하듯이 말하였다. 나는 "고맙게도!" 라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예산에 반영되지도 않은 연구를 억지로 진행해 나갔으나 장래의 발전에 대해선 확고한 자신은없었다. 하지만 우주개발위원인 선생님(야마우치 마사오)이 그렇게 말해 주어서, 연구를 진행해도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하였다. 지소장도 결국 나의 막무가내에 압도되어 승낙해버렸다.



한 마디

고압 펌프 선행 연구에 앞서 예산을 확보하는 노력이 드러난 부분이었다. 연구자는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자신이 하고싶은 연구를 먼저 하고싶겠지만 언제나 예산 등의 '높으신 분들' 이 정하는 문제를 맞딱뜨리면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사례에서는 저자가 운이 매우 좋았던 듯 하다. 마침 저자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고위 인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막무가내식 임기응변도 가능해보였다. 물론 상층부가 저자에게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말도 되겠지만.
한편 저자는 고압 펌프 개발에 앞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 임펠러 등의 제작이 아닌 추진제 혼합방지 씰을 꼽았다. 이것은 내가 한국의 터보펌프 연구자들을 인터뷰 했을 때도 들었던 반응이었다. 그땐 씰이 조건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면 고압 터보펌프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저자가 한 말과 완전히 같은 의미였다.

실제로 추진제 혼합방지 씰 계통으로 인하여 터보펌프 구성품 배치 등에 제약이 생긴다거나 아예 새로운 구성품을 새로 개발해서 적용해야만 하는 경우도 생긴다. 예를 들자면 스페이스X의 멀린 엔진과 같은 펌프 임펠러 배치의 경우 축 추력이 서로 상쇄되는 장점이 있으나 자연스럽게 두 펌프 사이에 위치한 추진제 혼합방지 씰이 감당해야만 하는 압력이 높아져 이에 따라 씰의 기밀 성능이 다른 배치 방식에 비해 더 높아져야 한다. 
또, 펌프-터빈-펌프 구성이나 LE-5, 7의 액체산소 터보펌프 등과 같이 추진제 혼합방지 씰이 터빈 쪽의 고열의 영향을 받는 경우 축의 열 변형으로 인해 씰이 기능을 상실할 수가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실제로 SSME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경우 추진제 혼합방지 씰이 고온에서 기능을 상실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라믹 등으로 씰 구성품을 제작하여 적용하였으며, LE-7의 경우에는 터빈과 씰 사이에 저온 수소가스를 집어넣어서 씰로의 열 전달을 막는 방식을 택했다.
최근 필수가 된 엔진의 재점화에 있어서도 추진제 혼합방지 씰이 걸림돌이 될 수가 있다. 1단 분리 후 재점화 전까지 엔진의 원활한 재점화를 위해 펌프 내부에 추진제가 채워져 있어야만 하는데, 축이 회전하지 않는 때도 추진제 혼합방지 씰은 기능을 수행하여야 한다. 따라서 플로팅 링 씰과 같이 유체에 회전 방향 선속을 부여하여 누설을 저감하는 방식의 씰로는 이러한 때에 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수가 있다. 따라서 재점화를 수행하는 엔진들의 경우 추진제 혼합방지 씰 계통에 메카니컬 씰, 특히 축 회전 시 유체력으로 부상하는 메카니컬 씰을 적용한다거나, 축 정지 시에는 메이팅 링과 밀착해 있다 축 회전 시 아예 외부 압력으로 축 회전 시에 부상하여 축과 마찰하지 않는 리프트 업 씰 등이 적용된다. 전자의 경우 여기서 많이 언급하였던 LE-5, 7에 적용되었던 방식이고 후자는 한국에서 개발될 KSLV-III 의 1단용 엔진에 적용될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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