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압 액체산소 펌프
시제 펌프의 제작비와 시험설비의 제약 등을 고려하여 소형/고압의 액체산소 펌프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1단 원심형으로, 사양은 회전수 47,500 RPM, 차압 25 MPa, 유량 16 L/s 정도이다.
설계에 대해서 특히 중점적으로 보았던 것은 펌프 임펠러의 재료, 밸런스 피스톤의 구조 그리고 축 씰 등이었다. LE-5 엔진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펌프 임펠러는 알루미늄 합금제이다. 고압 펌프는 1단 고속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임펠러와 케이싱 간의 마멸에 대해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약간의 접촉으로도 발화할 가능성이 낮지 않아 니켈 기반의 초 내열 합금을 적용하였다.
고압 액체산소 펌프 시제의 실제 임펠러 사진. 임펠러 후면 슈라우드 팁에 밸런스 피스톤 오리피스를 위한 구조가 보인다. |
직경이 86.3 mm 로 작은 임펠러이기 때문에, 고가의 기계 가공이 아닌 정밀 주조로 제작하였다. 우리 나라의 로켓 펌프로써는 첫 시도였으나 문제 없이 제작되어 우리 나라의 제작기술이 높음에 감격하였다.
고압 펌프는 축 추력 조절용 밸런스 피스톤이 필수이다. 그림 1.16과 같은 밸런스 피스톤 오리피스에서 임펠러와 케이싱의 마멸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을 들였다.
그림 1.16. 밸런스 피스톤 오리피스(バランスピストンオリフイス)에서 임펠러와 케이싱이 마찰할 여지가 있다. |
고압 액체산소 축 씰 시스템을 결정하기까지 여러 방법을 검토하였다. 그림 1.20에 제시한 플로팅 링 실을 사용할 수 있다면 씰 시스템은 단순해진다. 하지만, 이미 기술하였듯이 LE-5의 액체산소 터보펌프 개발 시, 헬륨 퍼지 씰에 적용하여 큰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에 플로팅 링 씰의 적용은 단념하였다. 메카니컬 씰을 사용하여 설계한 소형 고압 액체산소 펌프의 형상은 그림 4.1과 같다.
그림 1.20. 플로팅 링 씰의 형상. 카본으로 이루어진 씰 링(カーボンシールリング)이 축 사이의 유체력으로 부상, 축과 좁은 간극을 형성하여 유체의 누설을 줄이는 방식이다. 축의 진동에 따라서 씰 링이 움직이는 '자동 조심' 효과가 존재한다. |
그림 4.1. 소형 고압 액체산소 펌프의 단면도. 추진제 혼합방지 씰 전단에 메카니컬 씰이 보인다. |
밸런스 피스톤 오리피스를 통과한 액체산소의 일부는 임펠러 측 베어링을 냉각시킨 후, 슬링거(スリンガー)라 불리는 작은 회전체와 라비린스 씰로 감압되어 비로소 구동 측 베어링을 냉각하고 외부로 배출된다. 이 냉각량은 펌프 유체의 약 5 % 정도이다. 씰 시스템이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유량이었다.
2. NASDA와의 공동연구
1981년 12월부터 소형 고압 액체산소 펌프의 시험이 시작되었다. 시험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NAL의 전기모터(450 kW)로는 용량이 부족하여 정격 운전은 불가능하였다. 이 연구의 진행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NASDA가 고압 펌프의 공동연구를 제안하였다. NASDA의 가쿠다 로켓개발 센터에는 LE-5 엔진의 액체수소 펌프를 구동시키는 전기모터(650 kW)가 설치되어 있어 매우 고마운 제안이었다.
3. 고압 액체산소 펌프의 효율 측정
고압 펌프는 터빈으로 구동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결과, 효율 측정에 없어서는 안될 토크미터를 장치하는 구조는 매우 복잡해진다. 한편, 전기 동력계를 이용하는 경우도 소형 펌프 외에는 구동 마력이 과대해지기 때문에 대규모의 비싼 장비가 필요해진다. 따라서, 이번 시제 시험에서는 고압 펌프의 효율 측정방법 확립에도 힘을 쏟았다.
펌프의 효율을 평가하던 도중, 새로운 과제가 생겨났다. 소형 고압 액체산소 펌프에서 취득하였던 단열 효율과 펌프 효율의 비교를 그림 4.2에 제시하였다. 단열 효율이 펌프 효율을 5 ~ 6 % 정도 상회하고 있었다. 이 시험에서는 펌프 유체의 압축으로 인한 효율 변화는 높아 봐야 1 % 이하이기 때문에 이 원인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림 4.2. 펌프 효율과 단열 효율의 비교. 𝜂a로 표기된 단열 효율이 𝜂b로 표기된 펌프 효율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림 4.3. 펌프 내부의 유로. 펌프 작동유체와 펌프 후면 슈라우드 사이의 마찰로 인하여 추가된 엔탈피 q가 𝛥m2만큼 외부로 빠져나감을 알 수 있다. |
약 5 %의 효율 차이와 약 5 %의 베어링 냉각 유량 사이에 상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여 검토하였다. 펌프 내부의 유로는 그림 4.3과 같다. h1, h2는 펌프 입구와 출구의 엔탈피이고 m, 𝛥m1, 𝛥m2, 는 각각 펌프에서 토출되는 질량유량, 밸런스 피스톤을 통과하여 순환하는 질량유량과 베어링을 냉각시키고 외부로 유출되는 질량유량이다. q 는 임펠러 후면 슈라우드와 유체의 마찰 등으로 인하여 단위질량당 추가되는 엔탈피이다.
식 5. 펌프 효율. Q로 표기되는 토출되는 유량(체적유량)과 H로 표기되는 양정으로 구해진다. |
식 6. 단열 효율. 𝛥hact는 실제 펌프 출구에서의 엔탈피(h2)이고, 𝛥his는 이론적인 펌프 출구에서의 엔탈피이다. 마찰손실로 인한 엔탈피 q가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𝛥hact가 증가하게 된다. |
식 5의 펌프 효율의 결과로는 펌프 유체가 외부로 유출되어 그 만큼 효율이 낮아진다. 한편, 식 6으로 정의되는 단열 효율의 결과로는 마찰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q를 포함한 𝛥m2가 외부로 방출되는 관계로 그만큼 손실이 감소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효율이 올라가게 된다.
(그림 4.3에서 h2 + q를 포함한 𝛥m2가 외부로 빠져나가면서 펌프 입구의 엔탈피를 올리는 𝛥m1에 포함된 전체 엔탈피 양은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h1을 올리고, 끝으로는 h2를 올려 단열 효율을 낮추는 데 기여하는 마찰 손실은 결과적으로 저평가된다 - 역자 주)
직감으로는 이상하다고 여겼으나 이 효율 평가 방법이 옳은 것이다. 더욱이, 다단 펌프의 경우 외부로의 누설이 없더라도 상단에서 하단으로의 이차 유로가 있기 때문에 단일 단의 효율을 구하기 위해서는 같은 보정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이 방법은 실제 LE-7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2단 펌프 효율 측정에 사용되었다.
한 마디
고압 펌프 연구를 수행하면서 저자는 고압 펌프의 효율 측정 방식을 확립할 수 있었던듯 하다. 기존 LE-5의 펌프의 경우는 압력상승이 낮은만큼 외부로 누설되는 유량이 적어 언급되었던 단열 효율과 펌프 효율 사이의 차이가 의미있을 정도로 크지 않았으리라고 추측된다. 어쩌면 고압 펌프라는 선행 연구를 수행하지 않았더라면 같은 과정을 LE-7 용 터보펌프 개발 중 겪어 개발 지연에 일조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선행 연구는 그 누구도 모르고 있던 과제가 튀어나오고, 그것이 추구 진행할 큰 프로젝트에서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기도 한다. 여러 모로 선행 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에피소드인듯 하다.
한국의 경우도 KSLV-II 용 75, 7톤급 엔진을 개발하기에 앞서 30톤급 엔진 개발을 수행하면서 필요한 기술들을 습득할 수 있었고, 후속 발사체인 KSLV-III 를 위해서는 2010년대 초반부터 다단연소사이클 파워팩을 제작하고 시험하는 등의 선행 연구가 있어왔다. 이들 연구로 인하여 최근에는 비록 폭발해 버리긴 했지만 KSLV-III의 상단용 엔진에 적용될 터보펌프가 실매질 시험을 거치기도 하였다. 선행 연구 없이 본 과제 시작에 맞추어 기술 개발을 시작하였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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