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4일 수요일

재점화를 수행하는 액체로켓엔진의 터보펌프 회전축 씰

 얼마 전 KSLV-II 누리호의 2차 비행시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따라서 누리호에 장착된 75톤급, 7톤급 엔진은 성공적인 궤도비행 실적이 생기게 되었다. 

그로부터 한달 쯤 후, KSLV-III 계획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이 발표되었다. 정리하자면 KSLV-III에는 1단에 재점화가 가능한 산화제 과잉 다단연소사이클 100톤급 엔진이 장착되고, 2단에는 역시 재점화가 가능한 10톤급 산화제 과잉 다단연소사이클 10톤급 엔진 2개가 장착된다고 한다. 

엔진 개발과 관련된 여러 설계안들

KSLV-II 누리호와 KSLV-III의 성능 비교. 대략 H-II와 비슷한 성능으로 점쳐진다.

1단의 100톤급 엔진 5기, 2단의 10톤급 엔진 2기 구성


필자는 이를 위한 100톤급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용 터보펌프의 개발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축 추력 완화용 밸런스 피스톤(내가 일본의 LE 시리즈 엔진 터보펌프에 대한 글에서 언급한 그것이다)등, 이전에는 언급되지 않았던 새로운 기술들에 대한 논문들이 관련 학회에서 발표되었는데 이들 중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존 75톤급, 7톤급 엔진의 경우 추진제 혼합방지 씰 등에 간극이 존재하는 플로팅 링 씰이 적용되었는데 이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플로팅 링 씰은 직접 마찰이 일어나는 종류의 씰이 아니고, 축의 변위에 맞춰 간극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좋은 특성이 있는 씰인데 왜 이걸 바꾸자고 하는걸까? 오늘은 이에 대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75톤급 엔진의 혼합방지 씰. 검은 부분이 카본 플로팅 링이다.

1. 유사 사례 

왜 다른 구조로 변형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사례들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탐색 대상은 재점화를 수행하는 엔진들의 터보펌프이다. 
재점화를 수행하는 엔진들에는 전에 많이 언급했던 LE-5외에도 J-2 등이 존재한다. 

- 유사 사례 : LE-5의 경우

LE-5의 경우 H-I 발사체의 상단 엔진으로 개발된 액체수소/액체산소 가스발생기 사이클이다. 해당 발사체의 목표인 정지궤도로의 호만 전이를 위하여 재점화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LE-5의 액체산소 터보펌프

위의 그림은 LE-5의 터보펌프 중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단면을 나타낸 그림이다. 터빈의 작동유체는 고온의 수소 가스 + 약간의 수증기, 펌프의 작동유체는 액체산소이기 때문에 두 계통 사이에 혼합방지 씰이 적용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계통 사이에 적용된 씰의 종류를 후방 베어링 쪽부터 나열해 보면 메카니컬 씰(メカニカルシール), 헬륨 퍼지 씰(ヘリウムパージシール), 터빈 가스 씰(タービンガスシール) 순으로 적용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여기서 작동유체의 흐름을 설명하자면, 펌프 쪽은 메카니컬 씰(액체산소 -> 기체산소) - 헬륨 퍼지 씰(기체산소 + 헬륨) 순으로 흐르고, 터빈 쪽은 터빈 가스 씰(기체수소 + 수증기) - 헬륨 퍼지 씰(기체수소 + 헬륨) 순으로 흐른다. 양 계통에서 누설된 작동유체는 모두 헬륨 퍼지 씰 앞에서 헬륨에 밀려 퍼지되어 섞이지 않게 된다.

여기서 메카니컬 씰이 눈에 띈다. 메카니컬 씰은 스프링과 같은 벨로우즈의 힘으로 축에 장착된 메이팅 링과 씰의 카본 링이 밀착하여 기밀 작용을 수행하는 씰로 75톤급, 7톤급 엔진의 경우에는 연료펌프와 터빈 사이에 적용된 씰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에서는 '기계 평면 실'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75톤급 엔진 터보펌프의 메카니컬 씰

해당 씰의 구조. 연료펌프와 터빈 사이에 적용된다.

메카니컬 씰의 경우에는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플로팅 링 씰, 세그먼트 씰, 라비린스 씰에 비하여 적어도 터보펌프가 작동하지 않고 멈춰있을 땐 메이팅 링과 밀착하여 누설을 거의 막아줄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쯤 되면 감이 좋은 독자들은 눈치를 챌 것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사례만을 가지고 판단하긴 이르니 여러 사례들을 계속 소개하겠다.

LE-5의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경우는 어떠할까?
LE-5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우선, 펌프의 작동유체와 터빈의 작동유체가 상은 다르지만 같은 수소이고, 소량의 수증기는 산화제가 될 수 없으므로 추진제 혼합방지 씰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액체산소 터보펌프보다 더 간단하게 메카니컬 씰(メカニカルシール)과 라비린스 씰(ラビリンスシール)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 경우 유체의 흐름은 메카니컬 씰(액체수소 -> 저온 기체수소) - 라비린스 씰(기체수소) - 터빈 순으로 흐른다.

설명했다시피 여기에도 메카니컬 씰이 적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와 동일하게, 터보펌프가 작동하지 않을 시엔 메카니컬 씰이 메이팅 링과 밀착하여 작동유체의 누설을 거의 방지할 것이다.


- 유사 사례 : J-2계열

J-2 엔진은 아폴로 계획의 새턴 계열 발사체에 적용된 상단용 액체수소/액체산소 가스발생기 사이클 엔진이다. 아폴로 계획에 대해서 공부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새턴V 발사체의 3단은 한 번만 점화하는 것이 아니라 재점화를 수행하여 달 궤도로 진입한다. 따라서, 재점화를 수행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위의 LE-5와 유사하다. 

먼저, J-2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경우이다.
J-2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회전축 씰 부분

LE-5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와 마찬가지로 혼합방지 계통이 적용되어 있다. 적용된 씰의 종류를 펌프 -> 터빈 영역 순으로 나열해 보면 메카니컬 씰(그림 상에서 PRIMARY SEAL), 플로팅 링 씰(그림 상에서 INTERMEDIATE SEAL), 플로팅 링 씰, 메카니컬 씰로 이루어져 있다.

LE-5와 마찬가지로, 메카니컬 씰이 적용되어 있다. LE-5와 J-2 모두 재점화가 가능한 엔진이다. 이 두 엔진들에 공통적으로 메카니컬 씰이 존재한다는 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다음은 J-2 엔진의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경우이다.
J-2의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회전축 씰 부분

이 경우에는 메카니컬 씰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 적용된 씰들을 잘 보면 회전축에 장착된 메이팅 링과 면 접촉을 하는 씰(Face contact seal)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메카니컬 씰과 유사하게 터보펌프 정지 시 면 접촉으로 밀착하여 누설을 최소화할 것으로 예상되나 메카니컬 씰 보다는 정지/운전 시 모두 기밀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어서인지 별도의 드레인 라인(PRIMARY SEAL DRAIN, TURBINE SEAL DRAIN)이 존재한다.
수정 : 저 'PRIMARY SEAL'과 'SECONDARY SEAL' 에는 모두 메카니컬 씰 요소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단순히 메카니컬 씰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허니컴 씰 도 들어있는 일종의 복합형 씰이다.

J-2 계열 소개의 마지막으로 J-2S의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경우이다.

 J-2S의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회전축 씰 부분

무언가 신기한 구조가 보일 것이다. 이전 사례에는 보이지 않았던 'STATIC LIFT-OFF SEAL'이 존재하며 이것은 'ACTUATION PRESSURE' 이라는 서술이 존재하는 걸로 볼 때 공압으로 작동하는것으로 여겨진다. 해당 씰은 역시 메이팅 링이 존재하여 이것과 밀착하여 누설을 방지하는 것 같다. 
저 STATIC LIFT OFF SEAL은 터보펌프 정지 시엔 씰을 그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미는 공압이 가해지지 않아 그대로 메이팅 링에 밀착하여 액체수소의 누설을 방지한다. 그리고 터보펌프 운전 시에는 씰에 압력이 가해져 오른쪽으로 밀리면서 메이팅 링과의 밀착이 해제된다. 

정리하자면 엔진 정지 시에는 면 접촉 액체수소 씰(LIQUID HYDROGEN SEAL)과 압력 작동식 씰로 액체수소의 누설을 방지하며, 엔진 작동 시에는 압력 작동식 씰은 해제되고 액체수소 씰만으로 누설량을 줄이는 방식이다. 

무언가 이전의 사례보다 더 적극적으로 엔진 정지 시 작동유체의 누설을 방지하고자 하는 노력이 보인다.

2.  왜 그럴까?

이쯤 되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눈치챌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재점화를 수행하는 액체로켓엔진의 터보펌프에 적용된 씰에는 엔진 정지 시 작동유체의 누설을 아예 없도록 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지구 궤도 상에서 호만 전이를 위하여 엔진이 정지한 상태로 무추력 비행을 수행한다. 이러한 비행을 '코스팅(Coasting)' 이라고 부른다. 이후 사전 계산된 시점에 엔진을 또다시 점화하여 목표한 궤도로 진입하는데, 이는 엔진을 재점화 없이 작동시켜 궤도에 진입시키는 직접 전이 방식보다 효율적인 방식이다.
이러한 경우 엔진의 재점화 능력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엔진 점화 시점들 사이의 간격이 비교적 클 것이다.

재점화 시 추진제가 터보펌프에 들어간 상태가 아니라면 누설도 없으니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효율을 위하여 극저온 추진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추진제는 엔진 작동 전 예냉 과정이 필요하며, 최소 터보펌프 시동 직전까지는 추진제가 펌프 내에 들어가 캐비테이션을 방지할 정도의 최저 압력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 말인 즉슨, 점화 시점들 사이에 추진제는 반드시 펌프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만약 회전축 씰이 플로팅 링 씰과 같은 어느 정도 간극을 허용하는 씰이라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종류의 씰은 회전축의 회전에 의하여 내부 유체에 회전 각속도 성분을 가하는 방식으로 누설을 줄인다. 회전하지 않는다면 거의 무용지물이 되고, 한번 정지 후 두 번재 점화 전까지 너무 많은 추진제가 누설되어 외부로 새어나갈 것이다.  
펌프와 터빈이 같은 작동유체로 작동된다면 추진제를 더 싣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둘이 다른 경우에는 혼합방지 씰에 더 많은 버퍼 가스를 공급해주어야 하고, 더 많은 버퍼 가스 요구량은 엔진 및 발사체의 건조질량에 악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터보펌프 정지 시에 무용지물이 되는 씰을 사용하는 것은 지양하여야 한다. 대신, 정지 시에도 밀착하여 씰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메카니컬 씰과 같은 씰이 이러한 곳에 알맞다. 코스팅 시 추진제의 불필요한 낭비를 줄임과 동시에 혼합 방지 씰의 버퍼 가스 요구량도 줄일 수 있다.

- 개발될 다단연소사이클용 터보펌프의 혼합방지 씰 예상

자세한 개발 진행 상황은 아직 알려져있지 않으나, 아마도 75톤급, 7톤급과 같은 카본 플로팅 링 씰 구조는 1차 씰에는 사용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대신에 케로신 용이긴 하지만 이미 국내에서 개발 사례가 존재하는 메카니컬 씰 계통이 적용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J-2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혼합방지 계통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조를 짐작해 보자면, 연료측 메카니컬 씰 - 연료측 헬륨 퍼지 카본 플로팅 링 씰 - 산화제측 헬륨 퍼지 카본 플로팅 링 씰 - 산화제측 메카니컬 씰 순으로 구성될 것이다.

물론 기존 메카니컬 씰의 카본 링은 산소와 만나면 폭발할 수도 있지만, 카본 자체가 다공성 구조체이기 때문에 냉각이 용이하여 극저온 산소 환경에서는 의외로 괜찮을 수도 있다. 아니라면 극저온 베어링의 자가윤활 케이지에 사용되는 PTFE 소재도 답이 될 수도 있다. 이미 과거에 30톤급 엔진 터보펌프의 초기 시제에 카본 링 대신 PTFE 링이 적용된 혼합 방지 씰이 적용된 바 있다.

수정 : PTFE 소재는 표면 거칠기 등의 문제로 인하여 메카니컬 씰의 씰 링으로 사용되기는 부적합하다. 이에 대한 미국의 시험 결과가 존재한다.


3. 참고 문헌

LIQUID ROCKET ENGINE TURBOPUMP ROTATING-SHAFT SEALS - NASA SP-8121

液酸, 液素ロケットエンジンターボポンプシステムの研究 - NAL TR-696

추진제 혼합 방지 실의 성능시험 - KARI 곽현덕, 전성민, 김진한

https://blog.naver.com/rlaalstn5122/22270766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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