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31일 토요일

Kamijo Kenjiro - 제 5장, LE-7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 개발 - 미국으로부터의 충고와 예산 확보

 
LE-7의 액체산소 터보펌프

LE-7 엔진


1. 미국으로부터의 충고

LE-7의 개발은 1983년 12월 대장성에서 승인되었다. 이 계획은 처음에 미국과는 관계 없도록 하였다.
1983년 12월 미 동부 보스턴에서 개최된 미국 기계학회에 출장하였다. 거기서 전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스즈키(로켓다인 사에서 일하고 있던 일본계 미국인)씨의 '회사에서 볼까?' 라는 편지를 받았다.

캘리포니아 교외의 로켓다인 본사에서 스즈키 씨와 점심식사를 함께하였다. 그 자리에서 스즈키 씨는 '일본은 쇄국을 하려는 셈이냐?' 라는 말을 하였다. 순간 필자는 그 이유를 묻고 싶었다.
그 의미를 요약하자면, '일본은 2단 엔진을 국산화한 H-I 이 있는데 이 발사체는 1단 및 그 구성품, 부스터가 미국의 델타 발사체를 라이센스 생산한 것이었다. 이것은 순전히 미국의 호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완전 자국산 발사체는 미국과 관련이 없다. 이것은 어떤가?' 라는 의미였다.

스즈키 씨의 말을 이해함과 동시에 나 자신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살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에 '확실히 미국과의 연관을 없애버리는 것은 우리의 실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순 자국산 발사체를 보유하게 된다면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자국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발사체를 가지지 못할 경우 불리해질 가능성이 있다' 라고 열심히 설명하였다.
그러자 스즈키 씨는 '일본의 사정을 이해하였다. 귀국한다면 일본의 책임자를 NASA와 연결하는 것을 고려해보라' 라는 말을 하였다. 그 직후 스즈키 씨는 'LE-7의 개발은 과분하다. 로켓다인이 개발한 J-2S 엔진은 LE-7이 지향하는 성능과 거의 동일한 성능을 낸다. 이걸 수입해서 쓴다면 LE-7을 개발하는데 쓰일 비용을 다른데 돌릴 수 있지 않는가?' 라는 말을 하였다.

로켓다인 J-2S

이 말에 대하여 나는 '자체 개발이야말로 실력을 올릴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응수하였다. H-II 개발과 관련된 이야기가 완전히 끝난 후 스즈키 씨와 화기애애한 점심식사 자리를 계속했다.

귀국 후 1984년, 우주개발사업단(NASDA)의 야마우치 이사장이 항공우주기술연구소(NAL) 가쿠타 지소에 방문했을 때 스즈키씨의 말을 전하였다. 야먀우치 이사장은 거기에 '알겠습니다' 라고 답하였다. 이후의 경위는 잘 모르지만, H-II 개발과 관련하여 미 - 일 사이에 문제가 없도록 모종의 연락이 NASA에 취해졌다고 믿고 있다.

H-II 개발의 공식 결정은 1986년에 내려졌다. 
이건 좀 지나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스즈키 씨는 분명 특별한 사정이 있다는것을 알고있었을 것이다. 스즈키 씨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도호쿠 제국대학 항공학과에 재학중이었다. 미국 - 일본 제국 사이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에 부득이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그는 미국과 일본의 항공우주 분야에서의 실력 차이를 잘 알고있었다. 미국과 연관이 없는 H-II 개발 이야기는 그에게 있어서는 예전의 쓰라린 경험을 불러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2. 힘들었던 예산획득 과정

LE-7의 개발은 1984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NAL의 그룹(필자가 소속)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래 예상치도 못했던 난제들을 풀지 않으면 안되었다. 액체산소와 액체수소를 고압으로 연소시키는 엔진으로는(=연료 과잉 다단연소사이클) 그 당시 SSME가 알려져 있었는데, 이후 소련에서도 비슷한 엔진(RD-0120)을 개발중이었음이 드러났다.

필자가 소장으로 보임하고 있었던 NAL 가쿠타 지소의 로켓유체기계실험실은 이미 기술한 대로 LE-5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 개발, 고압 액체수소 터보펌프 시제 시험, 베어링 및 씰의 연구 등을 수행하여 액체산소 터보펌프와 관련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었다.LE-7용 터보펌프 개발은 좋은 연구 주제라고 생각하여 LE-5의 액체수소 터보펌프를 개발하였던 NASDA와 교섭을 진행하였다.하지만 의외의 결과를 마주하여야 했다.

NAL 가쿠타 지소, 현 JAXA 가쿠타 우주센터

1983년 봄, NASDA의 보조 주임개발원이 NAL 가쿠타 지소에 방문하여 "이번 엔진 개발은, NAL 유체기계실험실이 어드바이저 역할만 하면 충분하므로 개발 업무는 NASDA와 제작업체(미쓰비시, IHI)가 주관이 되어 진행하겠다"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을 들은 후부터 필사적으로 설득 공작을 시작하였다.
"NAL이 개발에 참여하면 터보펌프 시험설비가 2개소가 되므로, 개발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라는 얼토당토않은 근거가 과학기술청으로 전달되었다. 그 시기 NAL의 예산을 분배해야 하는 문제로 NAL 그룹의 LE-7 엔진 개발계획은 극히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1983년 여름 1984년 예산 요구안을 작성하던 시기 NAL에서는 YS-11의 후계기를 목표로 한 아스카(飛鳥)의 개발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LE-7의 터보펌프 개발을 위해서는 4~5개의 터보펌프, 시험설비, 많은 양의 추진제(가스 수소, 액체질소, 액체산소, 헬륨가스), 30~40억엔의 비용이 예상되었다.
우연히 그 시기 NAL 가쿠타 지소 로켓유체기계실험실의 노사카 마사타카(野坂正隆) 주임연구관이 과학기술청 연구조정과에 과장 보좌관으로 부임하였다. 1983년 7월, 노사카 씨가 NAL 담당 과장에게, 로켓유체기계실험실의 입장을 설명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설명을 들은 과장은 "당신에의 과거 실적으로 판단하여 연구비를 얼마든지 배정해 주고 싶지만 NAL이 최종 판단을 내리므로 NAL의 간부들을 설득할 수밖에 없다." 라는 말을 하였다. 이후 가쿠타 지소로 돌아와 예산 요구안을 작성하였다.
미타카의 NAL 본원과 협상을 진행하면서 "아스카의 개발예산은 크고, 터보펌프 연구개발 비용은 과학기술청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뒤집지 않은 채 과학기술청에 제출할 최종 예산안이 정해졌다. 터보펌프 연구개발예산은 "담당자한테 가서 요구하라" 라는 답을 들었다.

NAL 본원

예산을 별도로 요구하는 것이 어떠냐는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서, 밤에 NAL 본원의 기획과에 항의전화를 걸었다. 기획과의 주임연구관과 긴 통화를 나누었다. "이 예산이 빠지게 되면 NAL은 LE-7 엔진의 개발에서 밀려나게 되어, 지금까지의 우리 실적이 모두 물거품이 됩니다." 라고 필사의 마음으로 설명하였다. 그러자 "한번 더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누겠으니, 오늘 밤은 가쿠타 지소에 계셔 주십시오." 라는 답을 받을 수 있었다.
한밤중, 아까 긴 통화를 나눈 기획과 주임연구관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터보펌프 연구개발예산은 내부에서 조달하기로 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후일 알게 된 사실은, 그 기획과 사람이 NAL 소장 외의 간부를 밤중에 불러내어 재차 협의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예산안을 다시 짰다고 한다. 아스카의 예산 일부를 미리 전용하여 터보펌프 연구개발예산으로 편성하여 집어넣은 간부에게 크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각 연도의 개발계획 작성, 예산안 작성, 예산의 집행, 시험장비와 시험시편 발주/납기 연기 등의 기술개발 이외의 많은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본 지소(NAL 가쿠타 지소)의 기획과를 포함한 행정부서로부터 셀 수 없을 정도의 지원을 받아서 여기서 특별히 언급해 두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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