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시 미국에서 발표한다는 것은...
도호쿠 시골에 위치한 소규모의 NAL 시설에서 로켓 펌프 연구를 시작한 1970년대 초기, 일본항공우주학회는 소규모였고 발표 논문 내용들 중 추진공학과 관련된 것들은 대부분이 제트엔진에 관련된 것이었다. 로켓 펌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기계학회에서 발표하는 것이 가능했으나 대부분 내용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당시 미국에서의 우주개발 규모가 이미 거대했던 것에 비해, 그때부터 시작한 일본의 로켓개발 연구 발표는 흥미를 끌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아폴로 계획이 진행되었던 미국의 로켓 엔진에 관련된 연구 수준은 높았고, 미국항공우주학회(AIAA)나 미국기계학회(ASME)의 논문집에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에서의 발표를 고려하는 것은 가당찮았다.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발표한다는 것은 상당히 운이 없는 경우였으며, 자비를 쓰는 출장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어, 멋진 성과가 나오지 않는 한 그러고 싶지 않았다.
2. LE-5 정도는 발표해도 된다!
미국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 펌프에 관련된 논문을 발표한 것은 LE-5의 터보펌프 시스템 시험이 완료되어 엔진 개발까지 전망이 서던 1981년이었다. 당시 액체수소와 액체산소를 추진제로 사용한 실용화된 로켓엔진은 미국의 센타우르 단 용 RL-10 엔진과 새턴V 로켓의 J-2 엔진 두 가지가 있었다. 내 눈엔 LE-5 엔진이 일본답게 세심하고 정갈하게 개발되었다고 생각하여 미국에서의 발표를 고려하였다.
당시 원고는 전부 수작업이었다. AIAA 로부터 송부받은 원고용지에 타이프 라이터로 인쇄한 원고와 별도로 작성된 도면이나 사진을 첨부하여 논문을 작성하였다. 이 논문을 1981년 7월에 미국 콜로라도 주의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개최된 제 17회 합동 추진계 회의(Joint Propulsion Conference)에서 발표하였다.
미국에서의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저자 |
발표에서 호평받았다. 더욱이, 당시 유럽에서는 아리안 로켓에 적용될 소형 액체수소/액체산소 엔진(HM-7)이 개발되었던 관계로 관계된 연구자들로부터 몇 가지 질문을 받았다. 역시 이러한 성과는 미국에서 발표해야만 한다고 실감하였다. 더 나아가, 이 논문은 1982년에 미국항공우주학회의 논문집(Journal of Spacecraft and Rockets)에 게재되었다. 우리나라 로켓엔진 기술의 우수함이 세계에 알려진 계기였다.
한 마디
아무래도 저자도 사람인지라 해외 학회에서 발표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모양이다. 안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고 때로 결점이 있다면 잘 포장해서 말해야 하는데 국내 학회에서도 잘못하면 날카로운 질문을 받아 망신을 당하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는데, 이걸 자기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발표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렇다할 성과가 없는데 발표를 해야만 한다? 이러면 해외 뿐만 아니라 국내 발표까지도 힘들어진다.
해외 발표와 관련하여 내 대학원 연구실 선배들이 연습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랩 미팅 시간을 할애해서 발표장에 있는 것을 가정하여 영어로 발표하는 것을 연습하였다. 이 과정에서 해외 학회 발표 경험이 많은 지도교수급 인원들이 결점을 찾고 고칠만한 점을 짚어주었다. 매주 들어가는 익숙한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긴장해서 말을 더듬거나 했던 경우가 기억에 남는다.
나 역시도 몇 달 후에는 미국은 아니지만 해외에서 영어로 구두 발표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연구실 생활 중에 출장하였던 학술대회는 모두 국내 학회였고, 거기서 만나는 인사들도 대부분 아는 사이였는데 저 때는 아예 모르는 사람들인데다 외국인이기까지 하는 사람들 앞에서 내 연구 성과를 발표해야 한다. 솔직히 거기서 훌륭한 발표를 할 자신은 없다. 난 이미 국내 학회에서도 발표 도중에 말을 더듬거나 했던 경험이 있다. 물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 연구의 수준이 박사급 수준은 아니라서 그런지 몰라도 잘 했긴 하지만. 이번 내용은 여러모로 나에게도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이 개발에 참여했던 LE-5 엔진, 특히 터보펌프 시스템에는 자신이 있었나보다. 대놓고 '엔진이 일본답게 정갈하게 개발되었다' 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충분히 미국같은 곳에서도 자랑할 만한 성과라고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완전 익스팬더 사이클 방식이라 비추력이 높은 RL-10 이나 아예 대추력인 J-2 처럼 대단해 보이는 엔진은 아닐지라도 그 당시에 액체수소와 액체산소를 사용하는 터보펌프식 엔진을 개발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미 자기 자신부터가 발표 내용에 자신있었기 때문에 해외 발표의 부담은 비교적 덜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 자랑할만한 성과를 얻게 되면 해외에서 발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지도 모른다. 그땐 발표할 때 어떠한 부담도 없을것만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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