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터보펌프 구동 방식에 대한 논쟁
이야기는 살짝 거슬러 올라간다. 1976년 말, NASDA와 NAL 에서 LE-5 엔진의 터보펌프 형식을 결정할 때였다. 펌프와 터빈을 결합하는데 있어 기어를 사용하는것이 어떤가에 대해 꽤 격렬한 논쟁이 오갔다.
미국의 초기 액체수소/액체산소 엔진인 7톤급 RL-10엔진은 고속에서 성능이 좋아지는 가스터빈에 고속회전이 필수인 액체수소 펌프를 직결시켜 구동하고, 기어를 거쳐 저속에서 양호한 성능이 나오는 액체산소 펌프를 구동시키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더욱이, LE-5와 동시기에 개발이 진행된 유럽 아리안 로켓의 상단 엔진(HM7 시리즈)도 같은 방식이었다. 따라서 세계적으로도 실적이 있는 기어 방식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 기술자가 있는 것은 당연했다.
RL-10의 터보펌프 단면도. 터빈과 액체수소 펌프가 직결되어 구동되고 있고, 액체산소 펌프는 기어를 거쳐 동력을 공급받는 구조이다. |
동시기의 HM7B 엔진 터보펌프 절개 모델. RL-10과 마찬가지로 액체수소 펌프가 터빈과 직결되어 있고 액체산소 펌프는 기어를 거쳐 동력을 공급받는다. |
2. 기어 방식 VS 독립 2축식
제 1장(영역되어 있음)에서 서술했듯이,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윤활에는 윤활유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기어의 윤활은 고체 윤활제로 이루어지고, 액체수소 혹은 저온 수소가스로 냉각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나의 대학원 박사 과정 연구주제가 마침 유체공학과 윤활 분야에 걸쳐있었기 때문에 윤활에 관련된 지식을 꽤 가지고 있었다. 고속 및 고부하라는 가혹한 환경 하에서 기어에 고체 윤활제를 더한 수소 냉각 방식을 적용한 결과, 충분한 윤활이 이루어질지에 대해서 상상할 수가 없었다.
기어를 사용하지 않는 독립 2축 터보펌프 방식(동시기 J-2엔진에서 쓰이는 방식이다)의 사용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어떤 때엔 의견이 갈리자, "카미죠 씨로부터 예산을 받아오는 것이 아니므로 카미죠 씨의 의견을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라는 심한 말을 들었던 때도 있었다.
결국, 독립 2축식 터보펌프로 결정되었다. NAL은 이전(2장 내용)에 언급하였던, 개발이 중지된 케로신/액체산소 엔진의 터보펌프 시험설비를 개조하여 1977년 말부터 액체산소 터보펌프 개발에 착수하였다.
LE-5 엔진의 터보펌프 파워팩 계통. 양 터보펌프가 별도의 터빈으로 구동되는 독립 2축식이다 |
3. 탁월한 선택이었던 독립 2축식
지금도 독립 2축식의 선택은 실수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추력 12.4톤으로 H-II로켓 1 ~ 6호기에 사용되었던 LE-5A, 그 다음 추력 14.0톤으로 H-II 로켓 8호기와 이후의 H-IIA 로켓에 사용된 LE-5B 엔진은 터보펌프에 대해서는 약간의 개량만으로 대처 가능했다.
유럽에서는 HM7 엔진에 기어를 적용하였으나 추력을 증강시킨 Vinci 엔진(추력 15.5톤)에서는 독립 2축식으로 바뀌었다. 만약 LE-5 엔진의 터보펌프에 기어를 사용하였더라면 어찌되었을까? 개발이 늦어져서 ISAS와의 경쟁에서 패했을지도 모른다.
LE-5 계열의 액체산소 터보펌프 변천. 일부형상들이 변경된 것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
LE-5 계열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변천. 액체산소 터보펌프와 비슷하게, 변천과정에서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
4. 비교적 순조로웠던 이후 개발 과정
1980년 7월, NASDA 가쿠다 로켓개발 센터(저자의 소속인 NAL 가쿠다 지소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음)에서 양 터보펌프를 결합한 상태로 진행한 시험(한국식으로는 '파워팩 시험' 이라고 추측됨)이 무사 종료되어, 같은 해 12월에 타시로 시험장에서의 엔진 단품 시험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이후의 개발시험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어찌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터보펌프 결합 시험을 하던 때 NAL 가쿠다 지소의 로켓 유체기계 연구실의 거의 전부가 근무 장소를 NASDA 로켓개발 센터로 옮겨서 NASDA의 개발 인력, 그리고 IHI의 기술자들과 합동개발 팀을 구성하여 개발시험에 임했다. 이윽고 1980년 12월 타시로 시험장에서의 최초 엔진 시스템 시험에는 필자도 잠시 동안 타시로 시험장에 상주하며 분투하였다. 그리운 추억이었다.
LE-5 엔진의 타시로 시험장에서의 엔진 단품 시험 당시 모습이라고 추정되는 사진 |
한 마디
액체수소/액체산소 엔진의 경우 두 추진제의 극심한 밀도 차이로 인하여 양 펌프를 같은 회전수로 회전시킬 경우 한 쪽의 효율이 나빠질 수 있다. 그래서 양 펌프의 회전속도를 달리하는 것이 효율 측면에서 좋은데, RL-10 및 HM7 계열이 설계되었던 시기에는 기어를 사용하여 이를 최적화하였다고 한다.
기어를 사용한다면 회전수 동기와 측면에서는(쉽게 말하자면, 한 펌프가 가속될 때 다른쪽 펌프도 지체 없이 가속된다) 유리하겠으나, 기어박스라는 구성품이 추가되어 엔진의 건조질량 측면에서 불리해지고, 위에서 언급된 기어박스 및 윤활 문제도 떠오르게 되어, 별도의 기어박스 윤활 및 냉각 계통이 필요해진다. 기어박스가 추가되어서 고려해야할 문제들이 더 생겨버렸다. 정말이지, 좋은 기어박스는 기어박스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된 HM7 계열의 스키매틱은 아래와 같다.
HM7 계열의 스키매틱 |
스키매틱을 잘 보면 재생냉각 채널을 지나 액체수소 탱크를 가압하기 위한 재순환 배관(분홍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배관에서 일부가 분기되어 터보펌프 기어박스로 유입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어박스 내부의 기어의 냉각 및 윤활 유로이다.
언급된 고체 윤활제도 확인할 수 있다. 기어박스 냉각 유로를 보면 'lubrificateur'라 표기된 검은색 마름모꼴의 무언가가 보인다. 이것이 바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체 윤활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어 방식 터보펌프는 비단 당시의 액체수소/액체산소 엔진에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1축식 터보펌프로 구성하는 케로신/액체산소 엔진들에도 기어박스가 적용된 터보펌프가 사용된 바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액체수소 엔진들과 마찬가지로 기어박스 냉각 및 윤활 유로가 있다. 거기다 별도의 윤활제도 추가한다.
LR-79 계열 엔진의 Mark.3 터보펌프. 미국의 델타, 아틀라스 등의 발사체에 사용되었다. |
LR-79 계열 엔진들의 스키매틱. S-3D 엔진에는 'LUBE SYSTEM'이 언급되었고, H-I 엔진에는 'LUBE ADDITIVE BLENDER'가 존재한다. |
미국의 타이탄 계열 발사체의 LR-87 엔진의 터보펌프 절개도. 양 펌프 모두 터빈으로부터 기어로 동력을 전달받고 있으며, 'Oil cooler', 'Oil pump'가 존재하여 기어박스를 위한 냉각 및 윤활 시스템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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