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8일 수요일

Kamijo Kenjiro - 제 3장, 우리나라 최초의 펌프식 엔진 개발(LE-5 엔진 개발) - 엔진 형식 결정

1. 터보펌프 구동 방식에 대한 논쟁

이야기는 살짝 거슬러 올라간다. 1976년 말, NASDA와 NAL 에서 LE-5 엔진의 터보펌프 형식을 결정할 때였다. 펌프와 터빈을 결합하는데 있어 기어를 사용하는것이 어떤가에 대해 꽤 격렬한 논쟁이 오갔다. 
미국의 초기 액체수소/액체산소 엔진인 7톤급 RL-10엔진은 고속에서 성능이 좋아지는 가스터빈에 고속회전이 필수인 액체수소 펌프를 직결시켜 구동하고, 기어를 거쳐 저속에서 양호한 성능이 나오는 액체산소 펌프를 구동시키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더욱이, LE-5와 동시기에 개발이 진행된 유럽 아리안 로켓의 상단 엔진(HM7 시리즈)도 같은 방식이었다. 따라서 세계적으로도 실적이 있는 기어 방식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 기술자가 있는 것은 당연했다.


RL-10의 터보펌프 단면도. 터빈과 액체수소 펌프가 직결되어 구동되고 있고, 액체산소 펌프는 기어를 거쳐 동력을 공급받는 구조이다.

동시기의 HM7B 엔진 터보펌프 절개 모델. RL-10과 마찬가지로 액체수소 펌프가 터빈과 직결되어 있고 액체산소 펌프는 기어를 거쳐 동력을 공급받는다.

2. 기어 방식 VS 독립 2축식

제 1장(영역되어 있음)에서 서술했듯이,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윤활에는 윤활유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기어의 윤활은 고체 윤활제로 이루어지고, 액체수소 혹은 저온 수소가스로 냉각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나의 대학원 박사 과정 연구주제가 마침 유체공학과 윤활 분야에 걸쳐있었기 때문에 윤활에 관련된 지식을 꽤 가지고 있었다. 고속 및 고부하라는 가혹한 환경 하에서 기어에 고체 윤활제를 더한 수소 냉각 방식을 적용한 결과, 충분한 윤활이 이루어질지에 대해서 상상할 수가 없었다. 
기어를 사용하지 않는 독립 2축 터보펌프 방식(동시기 J-2엔진에서 쓰이는 방식이다)의 사용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어떤 때엔 의견이 갈리자, "카미죠 씨로부터 예산을 받아오는 것이 아니므로 카미죠 씨의 의견을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라는 심한 말을 들었던 때도 있었다.
결국, 독립 2축식 터보펌프로 결정되었다. NAL은 이전(2장 내용)에 언급하였던, 개발이 중지된 케로신/액체산소 엔진의 터보펌프 시험설비를 개조하여 1977년 말부터 액체산소 터보펌프 개발에 착수하였다.

LE-5 엔진의 터보펌프 파워팩 계통. 양 터보펌프가 별도의 터빈으로 구동되는 독립 2축식이다

3. 탁월한 선택이었던 독립 2축식 

지금도 독립 2축식의 선택은 실수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추력 12.4톤으로 H-II로켓 1 ~ 6호기에 사용되었던 LE-5A, 그 다음 추력 14.0톤으로 H-II 로켓 8호기와 이후의 H-IIA 로켓에 사용된 LE-5B 엔진은 터보펌프에 대해서는 약간의 개량만으로 대처 가능했다.
유럽에서는 HM7 엔진에 기어를 적용하였으나 추력을 증강시킨 Vinci 엔진(추력 15.5톤)에서는 독립 2축식으로 바뀌었다. 만약 LE-5 엔진의 터보펌프에 기어를 사용하였더라면 어찌되었을까? 개발이 늦어져서 ISAS와의 경쟁에서 패했을지도 모른다.

LE-5 계열의 액체산소 터보펌프 변천. 일부형상들이 변경된 것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LE-5 계열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변천. 액체산소 터보펌프와 비슷하게, 변천과정에서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4. 비교적 순조로웠던 이후 개발 과정

1980년 7월, NASDA 가쿠다 로켓개발 센터(저자의 소속인 NAL 가쿠다 지소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음)에서 양 터보펌프를 결합한 상태로 진행한 시험(한국식으로는 '파워팩 시험' 이라고 추측됨)이 무사 종료되어, 같은 해 12월에 타시로 시험장에서의 엔진 단품 시험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이후의 개발시험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어찌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터보펌프 결합 시험을 하던 때 NAL 가쿠다 지소의 로켓 유체기계 연구실의 거의 전부가 근무 장소를 NASDA 로켓개발 센터로 옮겨서 NASDA의 개발 인력, 그리고 IHI의 기술자들과 합동개발 팀을 구성하여 개발시험에 임했다. 이윽고 1980년 12월 타시로 시험장에서의 최초 엔진 시스템 시험에는 필자도 잠시 동안 타시로 시험장에 상주하며 분투하였다. 그리운 추억이었다.

LE-5 엔진의 타시로 시험장에서의 엔진 단품 시험 당시 모습이라고 추정되는 사진


한 마디

액체수소/액체산소 엔진의 경우 두 추진제의 극심한 밀도 차이로 인하여 양 펌프를 같은 회전수로 회전시킬 경우 한 쪽의 효율이 나빠질 수 있다. 그래서 양 펌프의 회전속도를 달리하는 것이 효율 측면에서 좋은데, RL-10 및 HM7 계열이 설계되었던 시기에는 기어를 사용하여 이를 최적화하였다고 한다. 
기어를 사용한다면 회전수 동기와 측면에서는(쉽게 말하자면, 한 펌프가 가속될 때 다른쪽 펌프도 지체 없이 가속된다) 유리하겠으나, 기어박스라는 구성품이 추가되어 엔진의 건조질량 측면에서 불리해지고, 위에서 언급된 기어박스 및 윤활 문제도 떠오르게 되어, 별도의 기어박스 윤활 및 냉각 계통이 필요해진다. 기어박스가 추가되어서 고려해야할 문제들이 더 생겨버렸다. 정말이지, 좋은 기어박스는 기어박스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된 HM7 계열의 스키매틱은 아래와 같다. 

HM7 계열의 스키매틱

스키매틱을 잘 보면 재생냉각 채널을 지나 액체수소 탱크를 가압하기 위한 재순환 배관(분홍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배관에서 일부가 분기되어 터보펌프 기어박스로 유입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어박스 내부의 기어의 냉각 및 윤활 유로이다. 
언급된 고체 윤활제도 확인할 수 있다. 기어박스 냉각 유로를 보면 'lubrificateur'라 표기된 검은색 마름모꼴의 무언가가 보인다. 이것이 바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체 윤활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어 방식 터보펌프는 비단 당시의 액체수소/액체산소 엔진에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1축식 터보펌프로 구성하는 케로신/액체산소 엔진들에도 기어박스가 적용된 터보펌프가 사용된 바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액체수소 엔진들과 마찬가지로 기어박스 냉각 및 윤활 유로가 있다. 거기다 별도의 윤활제도 추가한다.

LR-79 계열 엔진의 Mark.3 터보펌프. 미국의 델타, 아틀라스 등의 발사체에 사용되었다.


LR-79 계열 엔진들의 스키매틱. S-3D 엔진에는 'LUBE SYSTEM'이 언급되었고, H-I 엔진에는 'LUBE ADDITIVE BLENDER'가 존재한다.
미국의 타이탄 계열 발사체의 LR-87 엔진의 터보펌프 절개도. 양 펌프 모두 터빈으로부터 기어로 동력을 전달받고 있으며, 'Oil cooler', 'Oil pump'가 존재하여 기어박스를 위한 냉각 및 윤활 시스템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2023년 6월 19일 월요일

Kamijo Kenjiro - 제 3장, 우리나라 최초의 펌프식 엔진 개발(LE-5 엔진 개발) - 우주과학연구소(宇宙科学研究所) 와의 경쟁

1. H-I 로켓 2단 엔진 개발에 우리(NASDA + NAL) 말고 다른 기관도 참가한다!

LE-5의 터보펌프 시스템 개략도. 

Caltech에 재직중이었던 1976년 봄, 이시카와지마 - 하리마 중공업(石川島播磨重工, IHI) 과장으로부터 돌연 예정에 없던 편지가 도착하였다. 그 내용은, "우리 나라에서 개발 예정인 H-I 로켓 제2단의 액체수소/액체산소 엔진(후일 LE-5 라고 명명됨)의 터보펌프 연구개발을 우주과학연구소(宇宙科学研究所, ISAS) 도 하고싶다고 제안하였다. NAL과 구축한 기술 중 일부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였다.
내가 NAL에 입사하기 이전 1960년대부터 NAL과 IHI 에서는 터보펌프의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많은 터보펌프 기술들이 양자 간에 축적되었다. 따라서, ISAS의 터보펌프 연구개발에도 그 기술이 쓰이게 될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이 편지를 보고 매우 복잡한 기분이 들었으나, 거절할 명분을 생각해낼 수 없어 승낙한다는 답장을 썼다.

ISAS의 액체로켓엔진 개발 시설, 아키타 현 노시로 시험장(能代試験場) - 현재 JAXA 노시로 로켓 시험장 

노시로 시험장의 전시물. 고체 로켓과 더불어 소형 액체수소/액체산소 엔진들이 개발되었다

2. ISAS와의 경쟁을 맞이하여...

그 시점부터 LE-5 엔진 터보펌프의 연구개발에는 항상 ISAS를 의식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로켓엔진 터보펌프 연구개발은 NAL 가쿠다 지소의 로켓 유체기계 연구실과 IHI 에서 이루어졌는데, 로켓 유체기계 연구실 구성 멤버들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나, 대졸 연구자 한 명과 다섯 명의 고졸 연구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LE-5 엔진을 총괄하는 NASDA의 지원을 받고 있었어도 1970년 2월 11일에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おおすみ)를 쏘아올려 우주개발위원회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자신은 전혀 없이 의기소침한 상태였다. 1976년 8월 말에 미국에서 귀국하여 NAL 가쿠다 지소의 로켓 유체기계 연구실장으로 부임한 후 LE-5 엔진 터보펌프 개발에 착수하였다. 같은 해 NASDA 에서는 소형 연소기를 이용한 기초실험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연말, 그 시험설비를 견학하는 것을 추천받았다. 당시 NASDA의 부 주임개발부원으로 LE-5 엔진 프로젝트 시작에 공헌한 후지타 토시히코(藤田敏彦) 씨에게 안내받아 2박 3일의 일정으로 미쓰비시 중공업(三菱重工, MHI)의 아키타(秋田) 현 타시로 시험장(田代試験場)을 방문하였다. 아키타 산기슭의 시험장에 NASDA의 시험 설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모처럼 안내받았으나 당연히 ISAS와의 경쟁이 머릿속에 맴돌아서 여관의 식사나 목욕도 즐겁지 않았던 것이 지금도 선명한 추억이다.

3. LE-5 엔진의 스테이지 시험(추진기관 시스템 시험) 성공

LE-5 엔진 터보펌프의 개발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우주개발위원회의 위원이 "NASDA와 ISAS의 터보펌프에 대해서는 성능이 더 좋은 쪽을 엔진에 적용하기로 합시다." 라고 견해를 말하였다. 나는 "드디어 왔구나!" 라고 생각하였다. 제 3자가 듣기에는 극히 당연한 견해였으나 나에게는 대단히 무거운 말이었다.
1983년 3월 21일에 H-I 로켓의 최초 스테이지 시험(로켓과 동일한 형상으로 시험하고, 이땐 40초 정도로 시험하였다. 한국에서는 '추진기관시스템 시험' 이라고 부르며, KSLV-II 개발 시에는 75톤급 엔진 인증을 위한 QM으로 시험을 진행하였다 - 역자 주) 이 타시로 시험장에서 실시되었다. 이날 우연히 NAL 가쿠다 지소에서는 파티가 열려서 지소장인 오오즈카 사다키치 씨가 동석하였다.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던 때, 나에게 시험 성공을 알리는 전화가 걸려왔다. 난 LE-5 엔진은 완성되었다고 확신하였다. 오오츠카 씨는, "이걸로 됐다. ISAS의 엔진 개발도 성공적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라고 말했다.

H-I 로켓 상단의 형상. 오른쪽에 LE-5 엔진이 보인다

미쓰비시 중공업 타시로 시험장의 스테이지 시험 시설


4. ISAS와의 경쟁 승리와 그 동안의 감상

결국 NASDA, NAL, IHI가 공동개발한 터보펌프가 LE-5 엔진에 적용되게 되었다. LE-5 엔진 개발이 거의 끝나가던 시기, 액체수소/액체산소 엔진 개발연구연락회의 전문부회(NASDA, NAL, ISAS로 구성)의 총괄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ISAS의 교수가, "이번에 ISAS와 두 귀하는 순수히 기술로 경쟁하였고 두 귀하께서 이겼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오랫동안 안고있던 응어리가 내려가 말끔한 기분이 들었다. 고마운 말들을 해 주어서 이후에도 ISAS사람들과는 친하게 지냈다.
나 등이 로켓 터보펌프 연구슬 수행하던 시기, 탄도 미사일은 액체 로켓에서 고체 로켓으로 변하고 있었다. 탄도 미사일로 제조된 상당수의 액체로켓들이 우주 로켓으로 사용되어 액체 로켓의 개발은 수십 년간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시기가 되었다. 액체 로켓과 관련된 성과는 실험에 응용되는 빈도가 지극히 낮아졌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국립 연구소에서 10년간 로켓 터보펌프 연구자로서 로켓의 실용화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나의 연구활동은 도대체 뭐냐?" 라고 반성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개발에 참가하여 이것을 성공시킨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큰 일대 결심을 하고 개발에 참가한 순간, ISAS와의 경쟁이 되어버려 크게 고뇌하였다.

한 마디

ISAS도 H-I 로켓의 상단 엔진 개발에 뛰어들었다. 아무래도 고체 로켓이긴 하지만 이미 자력으로 위성을 궤도에 올린 기관이었기 때문에 ISAS가 다른 두 기관 대비 갖는 위상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났을 것이다.
ISAS에서 개발을 진행한 10톤급 상단 엔진의 이름은 ES-1001로, 아무래도 'Engine System - 1001' 일 것이다. 엔진 사이클은 LE-5와 동일한 가스발생기 사이클이나 세부적인 구성과 시동 방식에 있어 차이가 존재한다. H-I 로켓 상단용 외에도 7톤급의 M 로켓 상단용 엔진도 단 레벨로 시험이 진행으며, 엔진의 이름은 ES-702 였다. 두 엔진 모두 개량형이 존재하여 해당 형식은 맨 뒤 숫자를 달리하여 표기하는 듯 하다.

NASDA - NAL의 경쟁자, ISAS의 10톤급 상단 엔진인 ES-1001 도면

ISAS의 상단 설계(그림은 7톤급 엔진인 ES-702를 사용한 형식).



ISAS의 스테이지 시험 광경

ISAS의 스테이지 시험 시설 개략도

ISAS의 상단 엔진에 적용된 터보펌프 단면도

ISAS의 터보펌프를 보면 액체수소 펌프와 액체산소 펌프가 같은 펌프 케이싱 내부에 있는 것으로 보이나, 사실 엄연히 별개의 터빈으로 회전한다. 가스발생기로부터 수소 과잉 가스가 들어오면 우선 상류의 액체수소 펌프 측 터빈을 회전시킨 다음 그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액체산소 펌프 터빈을 회전시키는 방식이다. ISAS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방식은 ISAS의 독창적인 방식이라고 한다.
이러한 방식은 언뜻 보면 문제는 없어보이나, 액체수소/산소 터보펌프 터빈 사이에 별도의 바이패스 유로를 구성할 수 있는 LE-5의 방식 대비 제어 측면에서 자유도가 낮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ISAS의 엔진이 채택되지 않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래는 관련된 ISAS의 영상이다.






2023년 6월 17일 토요일

Kamijo Kenjiro - 제 3장, 우리나라 최초의 펌프식 엔진 개발(LE-5 엔진 개발) - 미국으로부터의 조언(서론)

1. 미국 유학, 그곳에서 들은 조언들

나는 우리나라의 재외연구원 제도를 통하여 1975년 9월부터 1년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의 객원연구원으로 기계공학과 Acosta 연구실에 재직하였다. 해당 연구실에서는 NASA에서 의뢰받은 우주왕복선 주 엔진(SSME)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축 진동에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 역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유로 엄격한 재약 없이 NASA의 연구센터나 로켓 관련 회사들을 방문하는 것이 가능했다.
방문 전에 "우리 나라에서는 추력 10톤 정도의 액체수소/액체산소 엔진을 개발하는 계획이 진행중입니다." 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대부분의 연구자나 기술자들이 요약하자면 "그러한 종류의 로켓엔진 개발은 매우 어려운데다 많은 비용이 필요하므로 무리입니다. 만약 무리해서라도 개발하고자 한다면 펌프를 사용하지 않는 가압식 사이클 엔진을 개발하십시오." 라고 충고에 가깝다 생각되는 조언을 하였다. 로켓 펌프를 연구 주제로 삼고있던 나에게는 심한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로켓 개발계획을 정하는 입장이 아니었던 관계로 그렇게까지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 중 단 한명, N 로켓 기술 이전으로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은 로켓다인(Rocketdyne) 사의 일본계 2세 조지 스즈키(George Suzuki)씨가, "개발을 깔끔하게 진행해 버린다면 펌프식 엔진을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격려해 주면서 미국의 로켓엔진 개발 역사 등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2. 귀국과 엔진 형식에서의 비하인드 스토리

1년간의 재직을 끝내고 귀국하니, 우리 나라에서는 우주개발사업단(宇宙開発事業団, NASDA)을 중심으로 엔진의 형식, 특히 펌프식으로 할지 가압식으로 할지 격렬한 논쟁이 오갔다. NASDA의 간부가 가압식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해당 인물은 나와 동일한 시기에 미국의 로켓엔진 개발을 담당한 유명한 기업을 방문하였다는 알게 되어, 나와 동일한 조언을 들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항공우주기술연구소(航空宇宙技術研究所, NAL) 가쿠다(角田) 지소장인 오오츠카 사다키치(大塚貞吉)와 NASDA의 다케나카 유키히코(竹中幸彦) 로켓 부장(나중에 로켓 담당 이사) 등이 펌프식 엔진의 개발을 강하게 주장하여 이것이 최후 결론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펌프식으로 잘 결정된 것에 격하게 감사한다.

LE-5 엔진

LE-5 엔진의 액체산소 터보펌프. 저자가 소속된 NAL 에서 개발을 담당

LE-5 엔진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NASDA에서 개발을 담당

3. 개발 진행과 성공, 그 후

추력 10톤급의 LE-5 엔진 개발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1981년 여름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개최되었던 미국 항공우주학회(AIAA), 미국 기계학회(ASME), 미국 자동차학회(SAE) 주최의 합동 추진계 회의(Joint Propulsion Conference)에서 터보펌프 개발 상황을 발표하였다. LE-5 엔진 터보펌프의 완성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스앤젤레스에 들러 스즈키 씨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LE-5 엔진의 개발 진행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는 매우 기뻐하였다.
그리고 1986년 8월에 H-I 로켓 발사가 성공한 후 우리 나라를 방문한 스즈키 씨를 만날 기회를 얻었다. 그 때 스즈키 씨는 이 성공을 매우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일본의 개발이 너무 순조로워 실패가 그만큼 적기 때문에 진짜로 실력이 붙고 있는지가 우려된다." 라고 감상을 말하였다.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였던 미국 로켓엔진 기술자의 말의 무거움을 느꼈다.



한 마디

아무래도 미국 엔지니어들은 당시 일본이 라이센스 생산이긴 하지만 우주발사체를 운용하던 국가였어도 액체수소/액체산소 조합 특성상 개발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던것같다. 실제로 액체수소 추진제는 한국의 우주로켓 관련 연구자들에게 물어봐도 개발에 부정적일 정도로 기술적인 어려움이 많다. 
특히 터보펌프의 경우도 다른 조합 대비 어려움이 커서(터보펌프가 높은 회전수에서 작동해야 하며, 누설은 물론이고 수소 취성도 신경써야 할 수가 있다) 가압식 엔진으로 개발하라고 충고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 일본은 LE-3 등 가압식 액체로켓엔진은 이미 개발 경험이 있었다. 
그래도 LE-5는 순조롭게 개발된 편이긴 하지만 LE-5 다음의 LE-7 에서는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히 터보펌프와 엔진 시험 중 몇 번의 폭발사고를 겪어 실제 인명 피해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2023년 6월 4일 일요일

Kamijo Kenjiro - 제 8장, 2인의 외국인 연구자와의 만남 - 장관이 된 도당 씨

1. POGO 현상 규명을 위한 터보펌프의 동적 특성 조사

H-I 발사체 2단을 개발할 때, 로켓 기체와 추진계(엔진, 터보펌프, 배관 등등)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나는 로켓의 종방향 진동 - 어린이의 놀이 기구인 포고 스틱(한국에선 '스카이 콩콩'이라 불리는 그것)과 비교되어 POGO 현상이라 불린다 - 의 억제를 위하여 몇몇 연구가 이루어졌다. 액체산소 펌프의 캐비테이션이 POGO 현상 발생 원인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다. 결국, NAL이 액체산소 펌프의 동적 특성을 조사하게 되었다.

타이탄-II(Titan-II) 발사체의 POGO 억제장치. 펌프 전단에 일종의 공간을 마련하여 추진제 유량의 순간적인 변동에 대응하도록 한다.

2. 쓸만한 순간유량계를 찾았다!

이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 극저온 유체인 액체산소의 순간 유량(시점 별 변화하는 유량)을 추정할 필요가 있다. 순간 유량을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전자기 유량계와 레이저 도플로 유속계 등이 알려져 있으나, 물이 작동유체인 경우에 한정되고 액체산소에 대해서는 좀처럼 사용 가능한 것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확실히 제국 산소(帝国酸素, 현재는 日本エアリキード, AIR LIQUIDE Japan GK)의 영업맨으로부터 프랑스에 액체산소에도 사용 가능한 순간유량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 제국 산소, 현 일본 에어 리퀴드 사의 로고. 일본의 액체로켓엔진 개발 과정에 극저온 유체를 공급한 듯

즉시 이 유량계의 상세한 사항을 조사하였다. 사양을 나타낸 자료로부터 LE-5 엔진 액체산소 펌프의 순간 유량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이 유량계는 배관에 2개소의 센서를 부착하여, 한쪽의 센서로부터 초음파를 발신, 나머지 센서에서 수신하여 유량을 계측하는 방식의 초음파 유량계였다. 초음파 유량계는 처음 접하는 형식은 아니었으나 극저온 액체산소에서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 특이점이었다. 
해당 유량계는 프랑스의 민간회사가 제작하는 것이 아닌, '국립항공우주연구소(ONERA)"가 개발하여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 유량계를 구입하기까지 거쳤던 상세한 절차는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이 유량계의 취급은 매우 어려운 것이어서 장착 및 취급을 지도할 기술자 2명의 여비와 체류비가 청구되었다. 
프랑스의 국립항공우주연구소, ONERA. 아마 일본의 NAL에 대응되는 기관인 듯.

3. 프랑스제 순간유량계를 이용한 터보펌프 동적 특성 조사

해당 유량계를 구입하여 LE-5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동적 특성을 조사하게 되었다. 2명의 기술자 중 한 명이 장 자끄 도당(Jean-Jaques Dordan)씨였다. 이 건에 관련되어 나는 오직 매니저와 같은 일을 하고 있어서(일본식으로 '프로젝트 매니저' 였던 듯), 시무라 타카시(志村隆) 연구원이 시험을 담당하고 있던 관계로, 유량계의 취급 및 사용에 관련된 것은 시무라 씨가 지도받았다. 시무라 씨는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 이후로도 긴 시간 동안 액체산소 펌프의 동적 특성 연구에 전념하여 몇 개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4. 도당 씨와의 추억

도당 씨 등은 3개월 동안 NAL 가쿠다 지소와 가까운 시바타(柴田)정 후나오카(船岡)에 방을 잡고 정력적으로 지도하였다. 당시 토요일은 오전만이 근무시간이었던 관계로 오후에는 휴식하였다. 그러나 일요일은 두 사람이 좀처럼 지루해 보였기에 센다이(仙台)를 중심으로 관광지를 방문하였다. 마쓰시마(松島)의 대중식당에서 내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은 정말로 그립다. 대중식당에서 젓가락을 능숙하게 사용하여 생선구이를 먹던 모습이 추억이었다. 시무라 씨 등이 초음파 유량계의 취급에 대해 마스터한 뒤, 두 사람은 프랑스로 귀국하였다. 그 이후로는 유량계의 취급에 관해 질문하는 정도로 소식이 끊겼다.

5. 다시 접하게 된 그

재차 도당 씨의 이름이 나오게 된 것은 NAL 가쿠다 지소에 기술지원을 했던 때로부터 20년 이상이 지난 2004년 봄이었다. 나는 2003년 3월에 도호쿠 대학으로 부임하여 같은 해 4월부터 JAXA 가쿠다 우주센터(전 NAL 가쿠다 지소)에 비상근 초빙 직원으로 근무하였다. 주된 일은 H-IIA 로켓의 평가였다.
츠쿠바 우주센터(여긴 NASDA 소속이었다)의 평가가 끝난 후 그 날 친목회가 열렸다. 나의 옆자리에 앉았던 히구치(樋口)이사가 돌연, "도당 씨가 JAXA를 방문했을 때 "지금 만나고 싶은 일본인이 한 명 있다. 혹시 카미죠를 아는가?" 라고 물었다 어떻게 할까?" 라고 물었다. 도당 씨와의 관계를 설명하자 히구치 씨는 이해하였다. 나는 좀 섯부르긴 했지만 도당 씨가 일본을 방문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도당 씨는 ONERA 를 퇴직한 후 자리를 올려 2003년 7월에 유럽우주기관(ESA)의 장관 자리까지 올라갔다. 아마도 취임 인사도 겸하여 우리 나라를 방문했을 것이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사에게 "내가 그 사람이 개발한 초음파 유량계를 사줘서 ESA의 장관이 되지 않았겠는가?" 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사가, "국장까지의 승진은 연관 있을 수 있는데, 그 이상부터는 순전히 그의 능력일 것이다." 라고 답했다. 그 의견은 백번 옳은 것이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30년 전에 NAL 가쿠다 지소에서 찍었던 겨울옷 차림의 도당 씨와, 더러워진 작업복 차림의 내가 찍혀있는 사진으로부터는 도저히 지금의 도당 씨가 상상되지 않는다.

NAL 가쿠다 지소 시험 시설 앞에서, 저자와 도당이 함께 찍은 사진

6. 도호쿠 대지진과, 도당 씨와의 연락

2011년 3월 11일 오후, 도호쿠 지방에 매드니튜드 9의 대지진과 큰 해일이 덮쳐왔다. 집에 있던 나에게도 무서웠던 경험이었다. 우리 집은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두 달 동안 아이치(愛知) 현 코난(江南)시에 있는 친정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3월 17, 18일에는 야마가타(山形)의 아카유 온천(赤湯温泉)에 다녀왔고, 3월 19일에 코난 시로 돌아왔다. 당시 대정전의 여파로 인해 통신 수단이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우리 집의 안부를 걱정해 주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대단히 폐를 끼치고 말았다. 4월에 접어들어 노트북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우리 집의 사정을 전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운 좋게 4월 7일의 최대 여진에도 우리 집 건물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재해 직후 JAXA 직원으로부터 우리 집의 안부를 묻는 몇 통의 메일이 자택 컴퓨터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내용을 확인한 것은 4월 중순이었다. JAXA 로부터 연결 방법을 듣고 도당 씨의 비서에게 메일을 보냈다. 곧 답장이 도착했다. "장관은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본인이 메일을 보내겠다고 합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도착한 도당 씨의 메일을 보고, 그의 NAL 가쿠다 지소에서 보냈던 3개월이 대단한 추억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매년 그의 일기장에는 NAL 가쿠다 지소의 액체산소 터보펌프 시험시설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위의 사진)을 붙이고 있다고 한다. 초음파 유량계의 지도가 젊은 기술자 시절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한 마디

위에서 저자의 동료였던 시무라가 작성한 논문의 제목은 "Dynamic Response of LE-5 Rocket Engine Liquid Oxygen Pump" 이다. 해당 논문에서 언급된 시험 리그의 스키매틱은 아래와 같다.
동적 특성 조사용 시험 리그 스키매틱

잘 보면 펌프 전단에 'Ultrasonic Flowmeter'가 보이는데, 이것이 펌프로 들어가는 액체산소의 순간 유량을 측정하기 위한 초음파 유량계이다. 저자가 이 글에서 언급한 도당 씨가 기술지도한 장치이기도 하다.
해당 장치를 이용하여 아래와 같은 데이터를 얻어내었다 한다.
초음파 유량계를 사용하여 얻어낸 데이터

극히 짧은 시간동안 입구에서의 유량 변동과 펌프 입/출구 압력의 변화가 서로 상관있어 보인다. 
POGO 현상은 이렇게 추진제 공급계에서의 상호 작용으로 인하여 유입되는 유량의 순간적인 변화 및 압력 변동이 일어나고 그것이 엔진 연소실로 들어가는 추진제의 유량 변동까지 이어져 결국에는 추력의 섭동으로 인한 축방향 진동까지 이어지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펌프 입구에서의 순간 유량 변동을 흡수해주는 장치를 추가하면 되는데, 그러한 장치가 맨 위에 언급했던 타이탄 발사체의 장치와 같은 것이다.  타이탄 발사체의 경우 스프링, 질소로 가압되는 장치를 추가하였다.
일종의 Reservoir과 같은 장치인데, 이것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전체 시스템에서의 순간 유량 변동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레저버의 설계가 가능해진다. 알지 못한 채로 설계한다면 POGO 현상이 억제되지 않거나 지나치게 무거운 장치가 추가되어 시스템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저자의 주 활동 무대가 일본 도호쿠 지방이라 그래서 대충 짐작했겠지만 도호쿠 대지진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상황을 경험하고서도 도당 씨와 연락을 취한 것을 보면 저자도 도당 씨와의 추억을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듯 하다. 안 그랬으면 이렇게 회고록에서 언급하지도 않았겠지만.

LE-5 엔진 터보펌프의 세부 사진들 - 가쿠다 우주센터 방문기에 이어

이전에 썼던 LE-7 엔진 터보펌프 전시물의 상세한 리뷰에 이어, 이번에는 바로 옆에 전시된 LE-5 엔진 터보펌프에 대한 내용을 써보고자 한다.  LE-5 엔진 터보펌프 전시물은 LE-7 과는 달리 절개 모델이 아니라 터보펌프 실물과 축계가 따로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