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NASA의 기술 문헌들
터보펌프 연구개발을 진행하는데 있어, NASA의 기술자료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없었다. NASA는 우주개발에 방대한 예산을 부어넣고 있기 때문인지 얻어낸 성과를 방대한 자료, 예를 들어 NASA SP(Monograph : NASA의 기술자가 작성한 일종의 교과서), NASA CR(Contract Report : 위탁연구 보고서) 등으로 발표하였다. 현재로서는 대단히 상상할 수 없게도 귀중한 자료를 공표하였다. NASA SP-8052(Liquid Rocket Engine Turbopump Inducers : 액체로켓엔진 터보펌프 인듀서), NASA SP-8109(Liquid Rocket Engine Centrifugal Flow Turbopumps : 액체로켓엔진 원심 터보펌프), NASA SP-8107(Turbopump Systems for Liquid Rocket Engines : 액체로켓엔진의 터보펌프 시스템) 등이 있어서 대단히 참고가 되었다.
앞에 언급하였던 세 자료를 입수하지 못하였더라면 LE-5, LE-7 엔진의 터보펌프가 지금보다 크게 퇴보한 설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최근에도 후술할 LE-7A 엔진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인듀서 개량에 있어 NASA SP-8107에서 설계 지침을 골라내었다.
2. NASA 연구원으로부터 도움을 받다
NASA의 연구센터(Research Center)의 연구원과 최초로 면식을 가졌던 것은 객원연구원(방문연구원)으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 1년간 재적하였던 때였다. 소속하였던 기계공학과의 Acosta 연구실은 NASA 마셜 우주비행센터로부터의 위탁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우주왕복선의 주 엔진(SSME) 액체수소 펌프의 동특성에 관한 연구였다. 이 연구에 참가하였다는 이유로 나는 NASA의 몇몇 연구센터에 방문할 수 있었다.
이건 NASA의 연구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이야기다. LE-5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제1차 시제 제작 시기에 펌프 측의 액체산소와 터빈 측의 수소과농 가스발생기 가스를 분리하기 위한 헬륨 퍼지 씰에 카본 재질의 플로팅 링 씰(그림 1.20)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무참하게도, 단기간의 시험에서 카본 링과 축 사이에 극심한 접촉이 발생, 씰 부분의 축 일부가 용융된 일이 있었다. 해결의 묘수가 없는 채로 시간이 흘러갔다.
카본 링 플로팅 링 씰의 구조. 검은색의 카본 링이 기밀을 수행하고, 그 주위를 금속제 링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이다. |
1978년 6월, NASA의 루이스 연구센터(Lewis Research Center, 현재는 Glenn Research Center 로 이름이 바뀌었다.)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에서의 연구개발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라 이야기하며 위의 플로팅 링 씰 문제를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젊은 연구원이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참고할만한 자료가 있습니다." 라고 말하며 "Small High-Speed Self-Acting Shaft Seals for Liquid Rocket Engines : 액체로켓엔진의 소형 고속 자동식 축 씰" 이라는 제목의 NASA 위탁연구 보고서를 건네주었다. 귀국 후, 책의 내용을 상세히 살피자, 역시나 개량을 위한 중요한 지침이 있었다. 링 형상의 카본을 분할하여, 축과의 접촉면에 유체윤활효과를 증폭하는 얇은 도랑을 마련, 이른바 동압형 세그먼트 씰(그림 3.2)이 완성되었다. 이때만큼은 NASA에 감사한 마음으로 한잔 하였다.
최근에는 또 NASA에 신세를 졌다. 제 9장(LE-7A 인듀서 관련 내용. 전에 연재함)에 서술하였는데, H-IIA 로켓의 LE-7A 엔진 액체수소 터보펌프 인듀서 개량이 있다.
LE-5의 축 씰 계통 단면도. 저기서 ガスヘリウムパージシール라 표기된 추진제 혼합방지 씰과 高温ガスシール라 표기된 터빈 측 가스 씰에 세그먼트 씰이 적용되어 있다. |
LE-5의 세그먼트 씰 형상. 내부의 검은색 카본 링 위에 미로 형상으로 홈이 파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링은 카본 링을 냉각함과 동시에 작동유체의 속도를 떨어뜨려 정압을 상승, 간극을 유지한다. |
한 마디
저자의 논문에서 '세그먼트 씰'이 계속 언급되어서 이게 무슨 종류의 씰인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는데, 오늘 그 의문이 풀렸다. 특별히 다른 종류의 씰은 아니고 카본 링 플로팅 링 씰의 일종이었다. 동압력 개방식 메카니컬 씰과 유사하게 씰 링 표면에 홈을 파 놓은 씰이다. 아마 의도한 효과도 같을 것이다.
위에 언급된 NASA SP 시리즈는 나도 애독하는 자료이다. 생각보다 쓸만한 60년대 NASA 문건들이 많았다. 몇몇은 해당 분야 종사자들로부터 추천을 받아서 접했던 것이었고, 몇개는 내가 찾아낸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저자가 SSME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론 현재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사람이 미국 대학원에 진학한 후 저런 프로젝트로 펀딩을 받을 수 없어 사실상 참여가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이러한 법이 생기기 전에 유학을 다녀와서 저게 가능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번에 번역한 글은 '미국이 일본의 발사체 개발에 어떠한 방식으로 도움을 주었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것같다. 한국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동구권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저 정도로 엔진 개발에 참여했던것은 결코 아니었다고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