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NASDA, MHI 등은 취재하는데 NAL에는 취재가 들어오지 않았다
H-II 로켓 1호기(시험기)는 1994년 2월 4일에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이 발사 성공을 전하는 TV 뉴스 외에도 쉴 틈 없이 이 위업을 칭송하는 신문기사가 게재되었다. 그러던 사이에 같은 해 6월 12일에 유명한 TV 프로그램에서 "격전, 남자다운 H-II 로켓" 이라는 방송을 내보냈다. 내용을 보아 하니 사전의 취재에 상응하는 시간이 할당되었음이 명백했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NAL로는 취재가 들어오지 않아 살짝 놀라웠다.
나 자신과 NAL의 그룹은 연구를 본분으로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아직 우리나라는 큰 프로젝트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종료 후의 평가 단계에서 좋지 못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필자와 함께 움직였던 연구자 중에서는 납득이 간 끝에 급기야 "실장이 핥고 있으니까 이렇게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연구원도 있었다.
부하의 기분을 되새겨 이제 와서라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후의 일들을 생각하여 NASDA와 TV 방송국에 항의 전화를 걸었다. 이 TV 프로그램은 NASDA의 개발 책임자를 중심으로, 참여 기업들의 부장 등으로부터의 개발 고생담 이야기를 다루었다. 터보펌프에 대해서는 액체수소 터보펌프에 대해서만 소개하여 NAL이 관여하였던 액체산소 터보펌프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소개도 없었다.
H-II 로켓 1호기 발사 영상
2. 그 동안 두 번의 실패가 있었다.
무엇이 좋았을지, 어땠을런지에 대해서는 이후에 어떠한 것도 체감할 수 없었다. H-II 로켓은 총 2회의 발사 실패가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1998년 2월의 H-II 로켓 5호기에서 MHI가 개발하였던 2단의 LE-5A 엔진의 고장으로 인한 통신방송기술위성(COMETS)의 발사실패, 1999년 11월의 8호기에서는 IHI가 개발하였던 LE-7 엔진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인듀서의 파손으로 인한 운수다목적위성(MTSAT-1)의 발사실패가 있었다. H-II 로켓은 NASDA가 발사의 모든 책임을 지기 때문에 전술한 TV프로그램에 출현한 모든 조직이 이들 실패에 관여해 있었다.
로켓엔진의 중요한 서브시스템에는 연소기와 터보펌프가 있는데 TV프로그램에 출현하지 못한 NAL이 담당한 부분(액체산소 터보펌프)은 실패와 관련이 없었다.
H-II 로켓 5호기 발사 영상. 상단 LE-5A 엔진 결함으로 정지궤도 진입 실패.
H-II 로켓 8호기 발사 영상. 1단 LE-7 엔진 결함으로 비행 종료.
H-II 로켓 8호기 실패 이후 원인 규명 관련 영상. 10분 10초부터 저자인 Kamijo Kenjiro 출연
3. H-II 로켓 이전 로켓들의 의의
H-II 로켓의 발사가 성공함에 따라 "H-I 로켓의 개발은 굴욕이었다. H-II 로켓을 개발함으로써 이러한 굴욕을 씼어냈다." 라는 믿을 수 없는 발언이나 기술이 눈에 띄었다. 최초에는 그 의미하는 바를 몰랐다. 조사를 해 본 이후에야 막연히 그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실용위성 발사용 로켓 개발계획은 N형 로켓(Q 로켓을 흡수)에서 신형 N로켓(최종적으로 N-I 로켓이 되었다)으로 변경되었다. NASDA의 시마 히데오(島秀雄) 이사장 등의 강한 의지로 행해졌다고 소개된다. 구체화되고 있던 Q 로켓의 개발계획 중지는 특히 고체 로켓으로 실적을 올리고 있던 기술자들에게는 좀처럼 인정할 수 없는 변경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더욱이, H-I 로켓의 경우는 2단을 개발하였는데, 1단은 델타 로켓의 엔진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발사 시기에 미국의 허가가 필요하여 굴욕감을 맛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H-I 로켓의 개발을 계획하고 실현시킨 사람들에게는 매우 실례되는 말이다. 일본인이라면 순국산 로켓을 개발하고 싶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고체 로켓이 중심인 Q 로켓의 개발을 그대로 진행했더라면 어떠한 모습이 되었을지 걱정스럽다.
Q 로켓의 풍동 시험 모델. 4단식으로 3단이 액체식, 나머지 단은 고체식인 발사체이다. |
시마 이사장의 결단은 이후 마쓰우라 요오에(松浦陽恵) 이사장, 야마우치 마사오(山内正男) 이사장, 오오츠카 사다키치(大塚貞吉) NAL 가쿠다 지소장, 타케나카 유키히코(竹中幸彦) NASDA 로켓 담당 이사 등에 의해 인수인계되어 H-I 로켓이 완성되었다. 이 개발로부터 터보펌프 방식의 액체산소/액체수소 로켓엔진 시스템 및 관성유도장치 등의 극히 중요한 로켓 기술을 습득하여 우리나라의 많은 로켓 기술자들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다.
4. 그 외의 연구진들에게 바치는 말
더욱이 우리나라의 로켓 연구/개발에 관여한 NAL의 연구자들은 그들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연구원은 다양한 분야로 표현된다. H-I 로켓의 발사 성공 시기에는 기계학회 기술상, H-II 로켓의 발사 성공 시에는 일본 항공우주학회 기술상, 터보기계협회 기술상, 일본 트라이볼로지학회 기술상을 수상하였다. 그동안 진행하였던 연구로는 일본기계학회 논문상, 일본 항공우주학회 논문상, 과학기술청 장관상(연구 공적자 표창)등을 수상하였다. 다음으로는 미국 윤활학회 최우수 논문상이나 미국 자동차학회 항공우주부문 논문상을 수상하여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우리나라의 로켓 개발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줄 평
이번 에피소드에서도 참여 기관 사이의 갑/을 관계로 인한 애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시험 중 엔진 폭발 에피소드에서 초기 원인 규명 과정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는데 발사 성공 후에는 취재조차 받지 못하고 거의 모든 관심은 NASDA와 MHI로 집중되었다.
그래도 저자인 카미조 켄지로는 자신의 부하들의 명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쩌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여 조직을 자신의 것으로 장악하는 등의 정치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필자는 이러한 조직 내 정치질로 인하여 홍역을 겪는 일을 아주 약깐 떨어진 거리에서 목격한 바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에피소드는 한국의 로켓개발 기관이 귀감을 삼아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일본에서도 한국의 KSLV-I 나로호를 'KOREA만 새긴 러시아제 로켓이다!' 라고 폄하하는 존재들과 같은 이들이 발견됐다는 것이 놀랍다. 사실 이번 에피소드를 포함하여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한국의 비슷한 개발 과정에서 들려왔던 비슷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어서 역시나 사람 사는 곳은 똑같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H-I과 KSLV-I 모두 후대의 H-II와 KSLV-II 개발을 위하여 꼭 필요한 존재였다. 마치 기록사격 전의 사격술 예비훈련과 영점사격이 없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