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9일 일요일

Kamijo Kenjiro - 제 5장, LE-7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 개발 - LE-7 엔진 주 연소기의 용접 개선

 1. 액체산소 터보펌프가 폭발했다? 석연찮은 이야기

LE-7 엔진은 1989년(헤이세이 원년)즈음부터 주연소기 용접 부위의 취약성이 지적되었다. 이후 다네가시마(島) 시험장에서는 연소시험 중 수 회의 엔진 폭발이 발생하였다. 
1990년 9월 26일, 그 날에도 다네가시마 시험장의 모리마사 히로(弘) 개발부원(NASDA 소속)으로부터 "LE-7 엔진이 연소시험 중 폭발하였다. 상황상 판단할 때 액체산소 펌프가 폭발의 원인인듯 하다." 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때 나는 "모두가 그런다면 아닐 수가 없다." 라고 답을 하였다.
액체산소 펌프에 대해서는 걱정스러운 점이 있었기에 이후 상세한 원인규명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네가시마에서는 사고 당일에 액체산소 펌프의 폭발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원인 조사서가 작성되었다.
1주일 정도 후, 액체산소 펌프는 다네가시마에서 이시카와지마 하리마 중공업(IHI)의 미즈호(穂)공장으로 이송되었다. 확실히 폭발사고를 연상시키는 터보펌프였다. 인듀서가 축에서 분리된 터보펌프를 본 순간, "어라?" 하는 생각을 하였다. 인듀서가 축으로부터 분리된 모습이 추측했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 내가 "액체산소 펌프가 폭발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라고 말하자 IHI의 기술부장이, "액체산소 펌프가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안이한 말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정정하여 주십시오." 라고 살짝 강한 어조로 말하였다. 거기서 나는, "상세한 원인규명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론은 아닙니다." 라고 이전의 발언을 철회하였다.
LE-7 엔진 연소시험 중 폭발사고

2. 그곳에 피에조 센서가 있었다

"액체산소 펌프가 사고의 원인이었다" 라고 단정을 지어버리는 의견을 들을 때마다, 냉정히 조사에 임하였던 나도 감정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던 장면이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간신히 다네가시마에서의 측정 데이터가 나에게 들어왔다. 폭발 순간의 데이터가 없지는 않을까 하는 등의 걱정을 하는 와중에, 어떠한 것들을 깨달았다. 
그림 5.14와 같이, 엔진을 세운 채로 시험(종형 시험, 験 이라고 부른다) 할 때 액체산소 배관에는 피에조 타입(결정 방향의 압축이나 인장으로 전류가 발생하고 그것을 계측) 압력 센서가 액체산소 탱크 출구로부터 펌프 입구에까지 수 개소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피에조 센서는 반응성이 매우 좋기 때문에 찰나의 순간에도 외부의 폭발에 반응하는 센서라고 생각해도 좋다. 
액체산소 탱크로부터 액체산소 터보펌프까지, 각 센서의 반응들을 이른 순서대로 나열 즉, 시계열로 검토해 보면 무언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문제의 액체산소 배관과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위치

3. IHI로의 조사 요청

이러한 것들을 집에서 문득 떠올렸다. IHI에 연락을 취하는 것에 대햇는, 마침 그날이 NAL 가쿠다 지소의 레크리에이션 날이었던 관계로 나도 야마가타(形)의 포도 따기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출근 시간에 약간 앞서 레크리에이션 행사 출발 시간까지의 약간의 시간을 쪼개어 조사해야 할 항목들을 정리하여 IHI에 팩시밀리와 전화로 전하였다. 야마가타에서의 포도 따기 행사는 즐거웠고, 행사 후 NAL 가쿠다 지소의 사무실로 돌아오니 IHI 로부터의 조사 결과가 팩시밀리로 도착해 있었다.

4. 원인은 액체산소 터보펌프가 아니었다!

위의 발상은 크게 적중하여, 액체산소 펌프 근처의 센서보다 액체산소 탱크 근처의 센서가 더 이른 시기에 반응하였다. 역시나 액체산소 펌프는 폭발의 원인이 아니었고 사고의 영향으로 폭발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완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그대로 엔진의 개발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1992년 6월 18일 LE-7 엔진의 대형 폭발사고가 또다시 발생하였다.

5.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하였다

미쓰비시 중공업(MHI)의 일부 담당자도 연소기 계통 용접 부위의 취약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용접 부위의 취약을 개선하는 방법은 MHI의 나가사키(崎) 연구소에서 제안하였다. 용접 후의 용체화 처리 온도(고온의 열처리를 수행하여 취성을 저하시키는 방식)를 섭씨 100도 정도 상승시키는 방식이었다.
MHI의 나가사키 연구소와 NAL이 협력하여 용체화 처리 온도 등의 영향을 평가하였는데, 중립적인 기관에서의 시험이 더 좋다는 이유로 NAL의 로켓 유체기계실험실(가쿠다 지소)에서 시험을 실시하였다. 
시험은 900 K의 가스 수소 환경에서 실시하였다. 그 결과를 그림 5.15에 나타내었다. 변경 전의 용체화처리 시험 시편은 용접 부위에서 파단되었다. 한편, 용체화처리 온도를 섭씨 100도 상승시킨 시험 시편에서는 나뉘어졌던 용접 부위가 아니라 모재에서 파단이 발생하였다. 이 방법을 채용하면 걱정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체수소 환경에서의 인장시험 결과

LE-7 엔진 부품의 열처리 관련 영상. 48분부터.

6. 원인 규명 그 후

다만, 마지막에 용접을 실시하는 연소기 외측 부위의 용체화처리 온도를 올리면, 연소기 외부의 납땜 부분이 풀어지기 때문에 납땜 방식의 개발과 제작 방식의 변경이 필요하였다. 이를 위하여 MHI의 담당자는 그 밖의 방법으로 대체하기 위하여 분투하였다. 
MHI의 코마키(牧) 공장에서의 회의 석상에서, 나는 이러한 속마음(音)을 말하였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어서 기대하였던 여러분에게 미안했다. 우리 NAL은 개발에서 손을 떼겠다." 라고. 그 이후 회의장에서는 "슝" 하고 나가 버렸다.
결국, 개량이 결정되어 개발은 재개되었다. 이후의 개발은 순조로워서 최초의 계획보다 2년 지연된 1993년에 LE-7 엔진의 개발은 마무리되었다.

한줄 평

여러모로 프로젝트 참여 기관에서의 갑/을 관계로 인한 애환이 담겨있는 에피소드같다. LE-7 엔진은 NASDA와 NAL이 협력하여 개발하였으나 주 개발 기관은 엄연히 NASDA였다. 게다가 연소시험을 실시하는 장소인 다네가시마 우주센터도 NASDA 의 시설이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NASDA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맡은 부분의 결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영향력 자체가 낮은 NAL로 책임을 전가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원인을 규명해 내어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밝혀낸 저자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왠만해선 일본인들은 자기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데 저자는 아마 MHI와 NASDA가 모두 모였을 공식 회의 석상에서 "나 이러면(우리는 무시하고 너희들끼리만 그럴거면) 개발 참여 못한다" 라고까지 직설적으로 소리쳤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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