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9일 화요일

밸런스 피스톤 문제 해결 - LE-7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 개발 과정 중의 사례.

2년쯤 전에 연재하였던 카미죠 켄지로(上條謙二郎)의 회고록에 LE-7 엔진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밸런스 피스톤에서 발생한 문제와 그 해결 과정이 언급된 바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해당 글의 링크를 첨부한다.


문제를 간략히 설명하면, 정격 작동 환경 하에서 전방 오리피스에서의 펌프 슈라우드-케이싱 간 간극이 지나치게 좁아 액체산소 환경 하에서 마찰 없이 안정적으로 작동할지 우려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아무리 인코넬계 내열 합금으로 제작된 구성품일지라도 지나친 마찰로 인해 분진이 생겨버리면 발화해버릴 수 있다.

회고록에 언급된 그림. 밸런스 홀과 오리피스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카미죠 켄지로는 '검토도 하지 않고 밸런스 홀을 뚫어 문제를 해결했다. 대신 효율은 감소했다.' 라고 서술하였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과연 어떠한 근거 없이 단순히 직감만으로 저렇게 밸런스 홀을 뚫어 밸런스 피스톤의 결함을 해결했던 것일까? 이번에 다뤄볼 주제는 바로 이러한 점이다.

이번 글에서는 LE-7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 개발 과정 중 나타났던 밸런스 피스톤의 문제의 상세와, 해결에 사용된 방식들(밸런스 홀 가공이라던가)을 어떻게 검증하여 어떠한 근거로 적용하였는지에 대해서 다룰것이다.

1.  문제의 상세

H-II 로켓용 액체산소 터보펌프에는 큰 펌프 출구압으로 인한 축 추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Gap 식 밸런스 피스톤을 적용했다. 밸런스 피스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전 글에서 다룬 바 있기 때문에 이 글에는 설명하지 않겠지만, 틈새를 지니는 매커니즘이기 때문에 작동 중 축 추력 변동에 의해 틈새가 변동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점을 짚어두고 간다.
2Gap 식 밸런스 피스톤은 상, 하류 오리피스와 밸런스 홀, 두 오리피스 사이의 밸런스 피스톤 챔버로 구성된다. 여기서 상류 측 오리피스는 펌프 후면 슈라우드의 외측에, 하류 측 오리피스는 펌프 슈라우드 내측에 존재하며, 두 오리피스의 간극 변화로 인한 밸런스 피스톤 챔버 내부의 압력 변동을 이용하여 자동적으로 축 추력을 맞춘다. 여기서 밸런스 홀은 적절하게 설정하여 챔버 내부의 압력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한다.
여기서 나타났던 문제점은 초기 계산 대비 밸런스 피스톤 챔버 내부의 압력이 크게 나타나서 상류 측 오리피스의 간극이 지나치게 좁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2Gap 식 밸런스 피스톤의 작동 방식


LE-7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밸런스 피스톤 부분.
지나치게 간극이 좁아졌던 외측 오리피스와 좁은 간극의 원인이 된 볼트 위치, 그리고 밸런스 홀이 잘 보인다.

2. 문제 해결


2.1 밸런스 홀


문제 해결에는 총 두 가지 방식이 적용됐다. 그 중 독자들에게 친숙? 한 밸런스 홀부터 언급한다.
아래 그림을 잘 보도록 하자. 무언가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1989년 발표된 논문에 언급된, LE-7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단면도

밸런스 홀로 보이는 유로가 임펠러 중심부에 있는데 이건 회고록에서 언급된 그 밸런스 홀이 맞는것일까?
그게 맞다면, 밸런스 홀의 위치 등 직경은 어떻게 적용되었을까? 이것도 검토 없이 '적당한' 위치를 골라서 뚫었던것일까? 물론 아니다.
LE-7 이 한창 개발되던 시기에는 현재와 같이 3차원 CFD가 활발하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LE-7 개발 전에도 2차원에서 격자를 짜고 모델링해서 간단히 푸는 경우를 관련 문헌을 통해 추측이 가능하지만, 그런 사례들 중에서 밸런스 홀까지 모델링하여 풀었던건 확인되지 않는다.

대신, 이전 LE-5 개발 당시 회전축 씰 시험에 활용한 시험 장비를 개조하여 밸런스 홀 시험 리그를 구축하고 이걸 통해 회전수와 밸런스홀 전후 차압에 대한 관계를 알아보는 시험을 진행하였다. 
해당 장비는 LE-5의 액체산소 터보펌프 구조를 유용한 장비로, LE-5 이외에도 LE-7의 회전축 씰 개발에도 사용된 바 있다. 

씰 시험 장비의 LE-5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 회전축 씰 개발 당시 세팅 단면도

씰 시험 장비의 LE-7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 회전축 씰 개발 당시 세팅 단면도

여기서 밸런스 홀 시험 부분은 씰 시험 장비의 맨 왼쪽, 웨어링 링 씰(LE-5 터보펌프 회전축 씰 시험 당시) 혹은 세그먼트 씰(LE-7 터보펌프 회전축 씰 시험 당시)에 위치힌다. 이 부분은 실제 LE-5 액체산소 터보펌프로서는 펌프 임펠러에 해당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적절하다 할 수 있다. 실제 이 부분의 씰 차압을 조정하여 축 추력 변화를 모사할 수 있다고 논문에서 언급된 바 있다.

밸런스홀 시험 시의 시험장비 단면도


밸런스홀 시험 시에는 LE-7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세그먼트 씰 개발 시험 시와 유사하게 펌프 부분에 큰 직경의 라이너와 세그먼트 씰을 조합하였으며, 라이너는 내측에 밸런스 홀 두 개가 뚫려있는 형상을 적용하였다. 
시험 방식은 회전수와 밸런스홀 전후(라이너 전후)의 차압에 따른 유량 계수를 취득하는 방식이었으며, 논문에 밸런스홀이 없는 라이너로 수행한 시험이 언급된 것으로 볼 때 이는 대조군을 확보하는 한편 세그먼트 씰의 차압에 따른 누설량을 취득하기 위함이라고 추측된다.
시험 중 취득한 변수로는 누설량으로 구해지는 밸런스 홀의 축방향 레이놀즈 수와 밸런스 홀의 위치와 회전수로 구해지는 밸런스 홀의 회전 선속 레이놀즈 수가 있다. 이를 조합하면 회전수와 차압에 따른 누설량 변화를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밸런스 홀의 수와 직경, 그리고 위치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시험 결과 도출된, 밸런스 홀의 축류 유동속도와 회전 선속, 그리고 유량 계수 간의 관계.

밸런스 홀의 축류 레이놀즈 수와 유량계수 간의 회전 레이놀즈 수에 따른 관계


그림 7을 보면 밸런스 홀의 축류 유동 속도와 회전 선속의 비율에 따른 밸런스 홀의 유량 계수가 나름 한 커브로 수렴될 정도로 도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축류 유동 속도가 0일 때는 당연히 유량이 0이므로 유량 계수도 0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커브에서 나타났다. 
그림 8에서는 축류 유동 속도로 구해진 레이놀즈 수와 유량 계수 간의 관계를 회전 선속으로 구한 유량 계수 영역에 따라 비교하여 나타내었다. 이 경우에는 낮은 회전수의 선행 연구 사례와는 달리 축류 레이놀즈 수가 커져도 회전 레이놀즈 수가 크면 유량 계수가 커지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회전수와 밸런스 홀의 유량 간 분명히 상관관계가 나타났으나 일반적인 펌프에서 밸런스홀 유량 증가에 따라 비교적 일정히 유량 계수도 증가했던데 반해, 유량계수의 분모에 해당하는 차압이 증가하는 등의 형태로 유량 증가의 유량 계수에의 효과를 상쇄하여 유량 계수가 비교적 일정히 나타났다는 것이다.
위의 결과에서 도출된 특성을 바탕으로 적절한 차압과 유량을 위한 밸런스 홀의 크기와 위치에 따른 특성이 도출될 것이며, 이를 이용하여 밸런스 홀 내부 압력 강하를 위한 적절한 형상을 결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밸런스 홀을 적용했을 때의 결과는 어떨까?
자세한 내용에 앞서 임펠러 후방에서의 축 추력 발생에 대해 설명한다. 임펠러 후방의 유체는 임펠러를 빠져나와 가압된 작동유체가 유입된 것으로, 본 사례에서는 임펠러 회전 각속도의 1/2 수준의 각속도를 지니도록 가정되었는데, 이는 케이싱 벽면에서의 속도가 0, 임펠러 후방 슈라우드 면에서의 속도가 각속도일 것으로 가정한 것에 기반한 것인듯 하다.
즉, 임펠러 출구에서의 전압은 유지되는데 여기서 동압 성분인 각속도 성분이 줄어든 만큼 축 추력을 야기하는 정압으로 변환된다.
실제 펌프 후방 밸런스 피스톤 챔버에서 측정된 압력 결과로는 상기 가정에 기반한 압력강하량보다 더 작은 압력강하량이 관측됐다. 이는 실제 챔버 내부에서의 유체의 회전 속도는 내부로 유입될 때부터 임펠러 회전 각속도의 1/2 보다 더 낮다는 것을 의미했다.


점성을 가진 유체의 움직이는 판과 멈춰있는 벽 사이에서의 속도 분포 가정.
딱 중간에서 움직이는 판의 속도 U 의 절반 정도의 속도를 가진다.

밸런스 피스톤 챔버 내부에서의 압력강하 양상
점선이 내부 유체의 각속도가 임펠러 회전 각속도의 1/2 수준이라 가정한 경우이다


여기서 밸런스 피스톤 챔버 내부 유동의 회전 각속도 성분이 높을수록 압력 강하가 크게 나타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무래도 빠르게 회전하는 원심 임펠러에서 나온 유동이기 때문에 챔버 내부의 외측에서 내측을 향하는(즉, 외측 오리피스에서 내측 오리피스로 향하는) 유동의 속도보다 회전 각속도가 꽤 높을 것이다. 여기서 회전 각속도 성분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슈라우드나 케이싱 벽면과의 마찰 등으로 인한 손실도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 정류 베인 등의 작용으로 회전 각속도 성분이 에너지 보존 법칙에 의해 정압 성분으로 교환된다면(좁은 틈이기 때문에 중심을 향하는 유동 속도의 증가에는 한계가 있다) 어떻게 될까? 챔버 내부로 유입될 때부터 높은 수준의 정압에서 시작한데다가 회전 각속도 성분이 작아 손실도 작기 때문에 외측에서 내측까지의 압력 강하도 적게 나타날 것이다.
여기서 '정류 베인'의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케이싱에 위치한 볼트 머리이다. 일반적으로 유동 속의 방해물은 유동을 방해하여 난류를 형성하여 에너지를 소산시키는 식으로 압력을 떨어뜨린다. 실제로 펌프 임펠러 후면 케이싱에 구조물을 위치시켜 축 추력을 제어하는 방식도 가끔씩 쓰인다.
하지만 LE-7의 경우에는 방해물로만 작용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정류 베인으로 작용하였다. 볼트 머리가 챔버 내부에서 튀어나온 형태가 아니라, 볼트 머리가 들어갈 공간 안에 들어가있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는 장애물 효과는 두드러지지 않은듯 하다.
아래 그림은 위의 회고록에서도 언급된 쿠로카와 준이치(黒川淳一) 교수의 관련 논문에서 언급된 그림으로, 볼트 머리가 위치한 공간으로 각속도를 가진 유동이 유입되었으나, 볼트 머리 주변을 선회하다 해당 영역을 나가면서는 회전 성분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쿠로카와 준이치 교수의 논문에서 언급된, 볼트 체결부에서의 유동


상기 언급된 볼트 체결부로 인한 압력 상승과 밸런스 홀로 인한 영향 모두가 축 추력 모델에 반영되어 밸런스 피스톤의 간극 예측에 활용되었다.
밸런스 홀 적용 결과 실제 시험과 모델에서 모두 간극이  증가하는 것이 확인되었으나, 밸런스 피스톤 내부 형상 영향만으로는 충분한 간극 확보가 어려워 직접적으로 축계를 터빈 쪽으로 밀어내는 또 다른 힘이 필요하였다.

밸런스 홀 추가로 인한, 펌프 작동 영역에서의 전방 오리피스 간극 양상.
밸런스홀 추가로 인한 압력 감압으로 전 영역에서 간극이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밸런스 홀이 적용되지 않은 경우(TEST1)와 적용된 경우(TEST2)의 전방 오리피스 간극 해석결과 비교.
간극이 분명 증가하긴 하였으나 비교적 미미하여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해보인다.


2.2 펌프 전방 케이싱 그루브

위의 밸런스 홀 관련 사례에서는 볼트 머리가 정류  베인 역할을 수행하여 밸런스 피스톤 챔버 내부의 정압을 상승시키면서 압력 강하를 저감하였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을 펌프 임펠러의 전방 슈라우드에 적용한다면 축계를 터빈 측으로 밀어내는 힘이 생길 것이라는건 쉽게 생각해낼 수 있다.
이를 위해 LE-7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에서는 임펠러 전방 슈라우드와 접하는 펌프 케이싱에 그루브(Groove) 를 성형하여 일종의 정류 베인 역할을 수행하여 펌프 전방으로 누설되는 유동의 압력 강하를 줄였다.

펌프 케이싱에 적용된 그루브의 형상

그루브의 위치를 표시한 사진.

그루브 형상에 따른 펌프 전방 슈라우드 압력강하 특성


그루브의 슈라우드에서 차지하는 면적과 높이, 그리고 수에 따른 압력강하 특성을 조사하였으며, 대조군인 그루브가 존재하지 않는 펌프에서의 시험 결과에서는 상사매질인 액체질소와 실매질인 액체산소에서의 특성이 동일하게 나타났다. 그래서 그런지 그루브 적용 시험들은 모두 액체질소로 수행되었다.
시험 결과 상, 그루브가 펌프 슈라우드 전 영역에 존재하는 경우에 가장 낮은 압력강하 특성을 보였다. 논문에 어떤 형상을 적용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을 찾진 못했으나 '슈라우드의 그루브가 전방 오리피스 간극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라고 언급된 점으로 미루어볼 때, 축 추력 해석을 통해 적절한 셋 중 적절한 형상을 고르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이것 역시 양날의 칼일 수밖에 없는 것이, 그루브의 존재로 인한 압력강하 저하로 임펠러 전방의 씰을 통해 누설되는 유량이 늘어나 효율이 내려갈 수 있기에 신중히 결정하였을 것이다.

앞 단락에서 언급하였던 밸런스 홀과 함께 전방 케이싱 슈라우드에 그루브를 적용하자 전방 오리피스 간극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의 축 추력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밸런스홀에 그루브까지 적용한 후의 전방 오리피스 간극 양상.
이전 사례 대비 충분히 커진 점을 알 수 있다.


3. 요약

LE-7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밸런스 피스톤 전방 오리피스의 과도하게 작은 간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방법들이 적용되었다.

1. 밸런스 피스톤 챔버에 추가적으로 밸런스 홀을 적용하여 챔버 내부 압력강하 증대
2. 임펠러 전방 슈라우드와 마주하는 펌프 케이싱에 그루브를 적용하여 축계를 터빈 측으로 밀어내는 축 추력 증대

상기 방법들은 회고록에서 언급된 '검토하지도 않고' 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나름 정량적인 평가 과정을 거쳐서 적용되었다. 해석적인 방법에서 도출된 특성과 실제 시험에서 관찰된 특성은 잘 일치하였다.
케이싱의 그루브는 일반인인 우리로서는 직접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우나 밸런스 홀 추가로 인한 영향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맨 위에 위치한, 1989년 논문에서의 단면도와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전시물을 비교하면 차이는 극명하다.
외측에 있는 밸런스 홀은 내측 밸런스 홀 출구 위치 확보를 위함인지 출구가 좀 더 전방으로 이동하였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맨 위에서 언급했던 1989년 그림에서 펌프 부분을 확대하고 밸런스 홀을 빨갛게 표시한 것.
밸런스 피스톤 챔버 외부에 밸런스 홀이 위치한다.


실제 비행에 사용된 형상의 밸런스 홀을 빨갛게 표시한 것.
위의 그림에 존재하는 밸런스 홀 외에 밸런스 피스톤 챔버 내측에 밸런스 홀이 추가되었다. 

두 밸런스 홀을 후면 슈라우드 사진 상에 표시한 그림

두 밸런스 홀을 전방에서 바라본 사진

4. 참고 문헌

[1] NAL TR-1201 LE-7液酸ターボポンプの軸推力釣り合わせ
[2] ロケットターボポンプの研究・開発:35年間の思い出 上條謙二郎
[3] ロケット用液酸ポンプの水力性能と軸スラスト性能の総合解析 黒川淳一、上條謙二郎、志村隆










2025년 8월 5일 화요일

극저온 액체로켓엔진 추진제의 과냉 - 터보펌프 캐비테이션 측면에서

최근 스페이스X 를 위시한 뉴 스페이스(New-Space) 기업들의 우주발사체 개발이 활발한 가운데, 액체로켓엔진 시스템의 성능 향상을 위한 방법들 중 추진제의 과냉각(스페이스X 관련 글들에서는 'Subcool' 이라 언급됨)이 떠오르고 있다.
과냉각된 추진제는 온도가 낮은 만큼 밀도가 늘어나 같은 부피의 추진제탱크에 더 많은 질량의 추진제를 담을 수 있으며, 터보펌프의 작동 측면에서도 캐비테이션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어 바람직하다고 알려져왔다. 
통념적으로 극저온 유체를 포함한 유체들은 낮은 온도에서 평상시보다 낮은 증기압 특성을 지녀 기화하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터보펌프의 작동 변수들 중 중요한 '캐비테이션 수'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터보펌프는 캐비테이션 수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캐비테이션 현상이 심화되다가 결국에는 양정상승이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들어가므로, 캐비테이션 수를 높여주는 것이 캐비테이션 현상 저감에 도움이 된다는 통념이 타당해보인다.

위키피디아에서의 캐비테이션 수 설명.
펌프에서는 분모에 펌프 블레이드 팁 속도, 분자에 증기압이 들어간다.

터보펌프 인듀서의 캐비테이션 수 - 양정상승 관계.
캐비테이션 수가 줄어들다 특정 구간에 다다르면 양정상승량이 급격하게 낮아진다.

오늘 쓸 글은 과연 이러한 통념이 맞는지에 대해서이다. 과연 간단히 추진제의 온도를 낮추는 것만으로 캐비테이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1. 이론적 배경 -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

이 글을 쓰기에 앞서 내가 읽은 문헌이 있다.
바로 내 은인인, 일본의 터보펌프 1세대 연구자 카미죠 켄지로(上條謙二郎)와 동시기에 활동하였던 Christopher E. Brennen 의 'Hydrodynamics of Pumps' 이다. 브레넨은 이전 카미죠 켄지로와 관련된 연재글에서 잠시 언급된 바 있으며, 안면도 있었는지 카미죠 켄지로의 논문을 대리발표하기도 하였다.

Christopher E. Brennen.
카미죠 켄지로의 저서에서 Caltech의 준교수(한국식으로는 조교수)로 언급된 인물.

브레넨의 해당 저서에서는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에 대해 이론적인 설명을 언급하고 있다. 여담으로,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 역시 카미죠 켄지로가 저서에서 언급한 바 있으며, 당연히 나도 그 내용을 연재글에 싣고있다.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로 인해 액체산소, 액체수소 등과 같은 극저온 추진제가 케로신과 같은 상온 추진제 대비 더 낮은 유량 계수 영역(분모인 팁 속도가 높아지는데, 해당 변수는 캐비테이션 수에서 분모에 위치하므로 낮은 캐비테이션 수 영역임을 의미한다)에서도 흡입 성능이 유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도 특정 영역까지만 유지되며 그 이후로는 양정은 급격하게 저하되므로 효과가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는것은 아니다.

미국의 문헌에서 확인되는 인듀서의 유량 계수(팁 기준) - 흡입 비속도 관계.
그래프 기준 높은 영역까지 올라가는 항목들을 자세히 보면 극저온 추진제가 작동유체임을 알 수 있다.


2.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

우선 나는 일반적인 석사 졸업생 나부랭이A에 불과하며, 캐비테이션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거나 특정 인듀서 설계 파라메터에 대해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에 대해 계산할 능력은 안 된다는 점을 겸허히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브레넨의 저서는 해당 현상을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
브레넨의 저서에서 캐비테이션은 하나의 구(球)형 공동(저서에서는 'Bubble' 이라 언급됨)만을 가지고 있으며, 해당 모델(Spherical Bubble Model)은 Rayleigh-Plesset 방정식에 기반한다. 해당 모델에서는 공동의 반지름 R(t)와, 공동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작동유체의 압력 p(t) 간의 관계를 정의하고 있다.

공동 반지름과 작동유체 압력 간의 관계

위의 식에서 p(t) 외의 pB(t) 는 공동 내부의 압력이며, R은 구형 공동의 반지름, 𝞺L 은 작동유체의 밀도이다. 여기서 p(t) 는 계산에 필요한 입력 변수가 되며, 일련의 과정을 통해 pB(t)를 계산할 수 있다.
여기서 공동 내에 기체 뿐만 아니라 액상까지 존재한다면(학부 열역학 시간에 배우는 '건도'가 이럴때 쓰인다.)공동 내의 압력 pB(t) 는 아래와 같이 정의된다.

공동 내 압력의 관계식

식의 우항을 잘 보면 공동 내의 증기압 pv(TB)가 pv(T) - 𝞺Lϴ 로 바뀌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전자는 공동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작동유체의 온도에서의 증기압을 의미하며, 후자가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를 나타내는 항이다. 여기서 𝞺Lϴ가 증가하면 공동 내의 증기압이 낮아지며, 감소하면 상승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의 원천인 ϴ 는 아래와 같이 정의된다.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를 나타내는 관계식

위의 식을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식 6.1, 6.2와 연계해서 열전달 방정식을 세워서 풀어야 하지만 아래와 같이 일련의 근사식이 있다.
우선, 공동-액체 간 경계면에서의 온도구배는 아래와 같이 정의된다.

공동-액체 간 경계면에서의 온도를 정의하는 관계식

여기서 kL 은 액체의 열전달 계수이다.
그리고 액체 구간에서의 열확산 방정식은 아래와 같이 단순화될 수 있다.

단순화된 열확산 방정식

식 6.5에서 αL 은 액체의 열확산 계수로, 액체의 정압비열과 열전달계수, 밀도의 관계식인  αL = kL / 𝞺LCPL 로 정의된다. 
상기 식 6.4와 6.5 를 6.3에 적용하면 아래와 같은 열역학적 효과의 관계식이 도출된다.

문헌 상 식 6.6과 6.7로 설명된 식을 합친 것.

언뜻 보기에 T 로 언급되는 작동유체 온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열역학적 효과ϴ 도 커져서 공동 내의 압력도 낮아져 캐비테이션이 억제될 것처럼 보인다.

3. 실제 나타나는 현상은? - 통념과 반대된다.

우선 브레넨의 저서에 나와있는 캐비테이션 수 - 양정 간의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를 제시한다. 작동 유체는 물이며 온도를 달리하여 시험을 실시하였다.

다양한 온도 영역에서의 원심 펌프 캐비테이션 실험 결과.

그래프를 보면 증기압이 높아 캐비테이션이 더 잘 일어날 것처럼 보이는 고온으로 가면 갈수록 더 낮은 캐비테이션 수에서 양정이  저하됨을 알 수 있다. 이는 명백히 우리의 통념과는 반대된다.
하지만 아무리 물의 증기압을 높여서 극저온 유체와 유사하게 만들었다 하더라도 실제 극저온 유체에서는 안 그러지 않을까? 여기에 대해 브레넨은 J-2 엔진의 액체산소 펌프용 인듀서의 시험 결과를 제시한다.

J-2 엔진의 액체산소 터보펌프 시험 결과.

시험 결과를 보면 고온으로 가면 갈수록 양정을 상실하는 캐비테이션 수 영역이 낮아짐을 알 수 있다. 물론 고온에서는 액체산소 특성상 증기압이 급격히 상승하므로 그만큼 입구압을 높여서 시험했을 수도 있긴 하겠지만, 우주발사체에서 많이 사용하는 영역인 90K 와 95K 영역을 보면 믿을만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는 왜 나왔던 것일까?
여기에 브레넨은 작동유체 온도가 낮은 조건과 높은 조건에서, 초기 공동 크기가 동일한 상황을 가정하여 공동의 크기를 커지게 하는 내부 압력과 작아지게 하는 공동-작동유체 간 열전달에 대한 관계로 설명한다.

작동유체 온도가 낮은 조건에서는, 공동 내의 온도 자체가 낮으므로 포화증기의 밀도도 낮을 수밖에 없다. 겨울철과 여름철의 외부 습도에 대한 관계를 상기해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러면 당연히 공동 내로 기화하는 추진제의 양도 적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주변 액체로부터 빼앗아가는 열량도 낮을 수밖에 없다. 기화로 빼앗기는 열량이 낮은 만큼, 공동 내의 온도는 주변 대비 적게 내려가며, 이러면 공동 내의 증기압은 아주 약간 내려갈 것이다
증기압이 적게 내려가니, 공동을 줄어들게 하는 힘은 줄어드므로 공동은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커지게 된다.

이를 위의 수식들로 설명해 보면(틀릴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자), 공동 내의 증기량인 mG 는 작을 것이고 포화증기 밀도 𝞺V 역시 작아져서 공동의 반지름 증가율인 dR/dt 에 큰 차이가 없다면 열역학적 효과 ϴ 도 작아지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공동 내의 압력을 낮추는 열역학적 효과가 작아졌으니 내부 압력인 pB(t)는 증가하여 공동을 커지게 한다

작동유체 온도가 높은 조건에서는, 공동 내의 온도가 높아 포화증기 밀도가 높다. 이로 인해 공동 - 액체 영역 간 추진제 기화로 인한 열전달이 활발하게 일어나, 오히려 공동 내 온도는 크게 내려갈 것이다. 온도가 크게 내려갔으므로 내부 증기압이 크게 내려갈 것이다.

이것 역시 위의 수식들로 설명해 보면  포화증기 밀도 𝞺V 는 온도가 낮은 조건 대비 매우 커져서 열역학적 효과 항인 ϴ 가 크게 반영된다. 이러면서 공동 내부 압력 pB(t)는 내려가서 공동의 성장이 억제된다.

4. 추진제 과냉각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과냉각된 추진제를 사용한다는 것으로 알려진 스페이스X의 Falcon9

이론적으로도 그렇고 실험 결과로도 과냉각된 추진제는 오히려 캐비테이션 특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만약 내가 인듀서 설계자라면 추진제 과냉각을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하고싶을 정도다.

하지만 '발사체 시스템' 차원에서의 추진제 과냉은 위에 언급했다시피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밖에 없다. 만약 발사체 시스템 측면에서 추진제 과냉각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터보펌프 설계자가 과냉각 배제를 설득할 수 없다면, 인듀서 설계자 입장에서는 당연하겠지만 과냉된 온도조건의 추진제 속에서 인듀서가 일으키는 캐비테이션의 특성을 파악하고 운전 가능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과냉되지 않은 일반적인 온도조건에서 캐비테이션 특성이 좋은 인듀서가 과냉 영역에서도 좋은 특성을 보일 것이겠지만, 이는 인듀서가 선택한 형상 특성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영향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


참고 문헌

[1] Hydrodynamics of Pumps, Christopher E. Brennen
[2] ロケット用小型高速高揚程液体酸素ポンプの試験的研究, TR-415, 上條謙二郎 외.
[3] Liquid Rocket Engine Centrifugal Flow Turbopumps, NASA SP-8109

2025년 5월 2일 금요일

ES-703엔진 터보펌프의 세부 사진들

1970년대 옆나라 일본의 우주개발 기관들로 NASDA(우주개발사업단, 宇宙開発事業団), NAL(항공우주기술연구소, 航空宇宙技術研究所), ISAS(우주과학연구소, 宇宙科学研究所) 총 세 기관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독자들은 잘 알 것이다.
이들 중 NASDA 와 NAL이 연합하여 현재까지 사용중인 LE-5B-3(익스팬더 블리드 사이클)의 원본인 LE-5(가스발생기 사이클)과, 1단용 대형 엔진의 효시인 LE-7을 개발하였다. 

같은 시기 M 시리즈를 위시한 고체 우주발사체를 개발하여 과학 위성 및 탐사선들을 쏘아올리고 있었던 ISAS,역시 LE-5와 유사한 액체수소-액체산소 엔진 개발 프로젝트가 존재했다. 당시 ISAS에서 개발된 엔진들의 이름은 ES(Engine System)-70X, ES-100X 로, 각각 7톤급과 10톤급 엔진 라인업이었다. 7톤급 엔진인 ES-70X 시리즈는 ISAS의 2단형 우주발사체인 M-2H의 2단에, 10톤급 엔진인 ES-100X 는 H-I(우리가 아는 NASDA의 그 발사체가 맞다)의 2단에 적용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엔진의 사이클은 LE-5와 같은 가스발생기 사이클이나 엔진 시동 방식은 한국의 75, 7톤급 엔진과 유사한 파이로시동기 방식이다. 파이로시동기에는 ISAS의 M시리즈 발사체의 자세제어 장치의 기술이 들어갔다고 한다.

ISAS ES-70X 엔진 시스템의 스키매틱. ES-100X 엔진도 같은 방식을 공유한다.
가스발생기 사이클이며 파이로시동기(TURBINE SPINNER)가 존재한다.


ISAS의 ES 시리즈 엔진들의 실물 사진

오늘 쓸 글은 ISAS의 ES 시리즈 엔진들 중 ES-703 엔진의 터보펌프의 세부 사진에 대한 글이다. 같은 시기 개발된 LE-5의 터보펌프들과 비교할 때 같은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한 부분이 보이며, 일부는 아무래도 같은 회사(IHI)에서 제작되어서 그런지 유사한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들을 찾으면서 글을 읽는다면 나름 재미있을것이다.

터보펌프 전시물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한 대학의 항공우주공학과 건물 1층 로비에 위치해있다. 엄밀히 말해 정식 박물관이 아니기때문에 지나치게 사람들이 찾아가면 해당 대학 학생 및 교직원들이 곤란할 수 있어 정확한 대학명은 말하지 않는다. 
여담으로 해당 대학의 항공우주대학을 저 ES 시리즈 엔진을 개발한 인사가 창설했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터보펌프 전시물의 위치는 참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1. 전체적인 구조


ES-703 엔진 터보펌프 전시물. 터보펌프의 모델명은 TP-703이라 한다.
가쿠다에서 보았던 LE-7 엔진용 터보펌프와 유사한 절개 모델이다.


TP-703의 단면도. 이번 글에서 많이 언급될 것이다.

처음 전시물을 보면 LE-5나 LE-7보다는 한국의 75톤, 7톤급 터보펌프와 유사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엄연히 LE 시리즈와 동일하게 별개의 축계로 구성된 터보펌프 시스템으로, 따라서 LE-5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
액체산소와 액체수소 터보펌프가 각각의 터빈을 가지지만, 각 터빈이 같은 터빈 케이싱 안에서 서로 마주보고 반대로 회전하는 형식이다. 이러한 형식을 '반전식 터빈(Contra-Rotating Turbine)' 이라고 부르며, 1단과 2단 동익 사이의 정익을 없앤 대신 2단 동익을 1단 동익과 반대로 회전시켜 1단 동익에서 토출된 유체의 각속도 성분을 그대로 이용하는 형식이다.
해당 형식은 2단 정익이라는 구조물의 부재로 마찰 손실이 존재하지 않아 효율이 높으며, 저유량 조건에서 2단 동익이 1단 동익 대비 느리게 회전하는 경우, 2단 동익의 유동각 범위가 넓어져 터빈 후단의 배압이나 2단 동익의 회전속도 변화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가스발생기 사이클 엔진인 ES-703의 터보펌프 터빈 구성 방식으로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단점으로는 혼합비 조정 등을 위해 터빈의 회전수를 능동적으로 조절하기 어렵다는 점? 그 때문인지 ES-70X 시리즈 엔진은 액체산소 펌프에서 토출된 액체산소 일부를 다시 추진제탱크로 돌려보내 혼합비와 추력을 제어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2. 액체수소 터보펌프 - 인듀서 및 임펠러 측

우선 액체수소 펌프 쪽으로 시선을 옮겨본다.

TP-703의 액체수소 펌프

큰 직경의 펌프 임펠러로부터 액체수소 펌프라는 것을 안내판 없이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인듀서에는 별도의 라이너가 없었으나, 인듀서와 임펠러 사이에 계단식 라비린스 씰로 이차유로를 구성한 것이 눈에 띈다. 이런 구조는 LE-5의 액체수소 펌프에서도 보인다.
임펠러는 낮은 비속도로 인한 상대적으로 낮은 유로 높이 때문인지 상부와 하부를 따로 제작해서 접합한듯한 흔적이 보였다. 저 비속도 임펠러들에서 흔히 보이는 제작 방식이다.
이외에 인듀서 전방의 입구 플랜지에는 배관 플랜지 간의 기밀을 위한 정적 씰이 들어가는 홈이 보인다.

액체수소 펌프 직전방에서

바로 전방으로 시선을 옮겨보니 임펠러 상부 슈라우드에서 밸런싱을 위해 갈아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흔적은 LE-5는 물론 LE-7의 펌프 임펠러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LE-5와 7 모두 인듀서 체결용 구조(TP-703에서는 유선형으로 가공된 육각 볼트) 후방에 인듀서를 밸런싱한 흔적이 존재했지만 TP-703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가려진 부분을 갈아낸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언급된 부분을 논문 상의 도면에 표시한 것

3. 액체수소 터보펌프 - 펌프 후단 구조물들

다음은 액체수소 펌프 후방의 구조로 시선을 옮겨보자.

액체수소 펌프 후방의 구조

공교롭게도 터보펌프 전시물 앞에서의 흥분으로 액체수소 펌프 축계의 사진은 제대로 찍지를 못했다. 
우선 펌프 임펠러의 축 추력 저감을 위한 Back Vane 이 보인다. 동시기 개발된 LE-5의 경우에는 액체수소 펌프에 밸런스 피스톤을 적용하여 축 추력 문제를 해결하였다. ISAS의 터보펌프 관련 인사들이 발표한 논문에서는 Back Vane이 터보펌프 회전수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에서 우수하여 선정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Back Vane이 축 추력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는지 이해를 돕기 위해 논문에서 언급된 그림을 첨부한다.

ISAS의 논문에서 언급된 Back Vane의 작동 원리. 다른 방향으로 빗금친 부분에 주목.

요약하자면 임펠러 후단은 펌프 출구의 고압 유체가 들어차 전면 대비 고압 영역이 될 수밖에 없는데, Back Vane이 유체의 정압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해서(아마 와류 등을 일으켜 에너지를 소산시키는 방식일 것이다) 전/후면의 압력 차이를 줄여준다. 이 방식은 미국의 M-1 엔진의 터보펌프 등에 적용된 바 있다. 어쩌면 M-1의 자료를 당시 개발자들이 참고했을지도 모르겠다.

임펠러 후면으로 전면 베어링, 베어링 냉각용 유체 노즐, 후면 베어링, 회전축 씰 조합체가 위치해있다. 전면 베어링은 케이싱에 앞/뒤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되어 있는 대신, 후면의 베어링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앞/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있다. 이는 극저온에서의 열팽창으로 인해 작동 환경에서 후방 베어링에 의도치 않은 힘이 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설계로, 고온에서 작동하는 가스터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신 후방 베어링이 고정되지 않은 관계로 강성이 낮아지고, 자연스럽게 터빈의 임계속도가 낮아지는데, 이는 후방 베어링에 스프링으로 예압을 가해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다. 위의 사진에서도 후방 베어링의 외륜을 펌프 쪽으로 밀어내는 방향으로 예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륜을 예압할 시 베어링의 거동을 나타낸 그림.
접촉각이 생겨 같은 반경방향 하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적은 하중이 베어링에 전달된다.

베어링 냉각 문제도 LE-5와 비슷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한 점을 알 수 있었다. LE-5의 액체수소 터보펌프는 밸런스 피스톤의 2번 오리피스에서 토출된 액체수소가 그대로 베어링 두 개를 냉각시키도록 구성한 반면, TP-703 에서는 별도의 냉각 유체 분사용 노즐을 통해 직접적으로 베어링에 냉각유체를 분사시켜 해결하였다. 이는 가스터빈에서 많이 보이는 방식이다. LE-5의 액체산소 터보펌프도 펌프 출구에서 베어링 냉각용 고압 액체산소를 취하여 베어링이 위치한 공간으로 보내긴 하지만 노즐로 불리는 물건을 쓰진 않았다.

가스터빈의 베어링 냉각 방식. 별도의 오일 분사노즐로 베어링에 직접적으로 냉각용 오일을 분사한다.

베어링 후면에는 회전축 씰 조합체가 보인다. 아무래도 터빈의 작동유체가 고온 수소과농 가스이다보니 액체수소가 누설되어 섞이더라도 폭발 위험은 없다. 해서, 회전축 씰은 메카니컬 씰(액체수소의 누설을 1차적으로 막음), 라비린스 씰(고온 터빈구동 가스를 막는다) 구성으로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하지만 넓은 직경의 터빈 가스 씰 안쪽에 메카니컬 씰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LE-5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와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메카니컬 씰은 벨로우즈까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가쿠다 우주센터의 전시물에 비해 더 나은 측면이 있다. 가쿠다 우주센터에서는 축계 조립체만 전시해서 메이팅 링만 붙어있거나 아예 축계를 제외하면 가려놓아서 저런 구조를 볼 수가 없었다.

액체수소 펌프의 회전축 씰 계통 설명 - 메카니컬 씰과 라비린스 씰

비슷한 구조 - LE-5의 액체산소 터보펌프 회전축 씰 구성.
터빈 가스 씰의 위치에 주목.

다음으로는 Back Vane 외의 터빈 임펠러 후면의 구조와 터빈 구성으로 화제를 옮겨본다. 펌프 임펠러의 후방에서는 별도로 밸런싱을 위해 갈아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후면에 Back Vane 이 존재해서 별도의 유체력을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기 위함이라고 추정된다. 어쩌면 임펠러 후단에 별도로 갈아내기 위한 구조가 존재하거나 아예 임펠러 익단을 갈아냈을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터빈은 일반적인 노즐-1단 동익-정익-2단 동익 구조가 아니라 노즐-1단 동익-2단 동익 구조의 반전식 터빈 구조이다. 액체수소 펌프를 회전시키는 1단 동익은 완전한 충동형 터빈의 형상을 띄고 있으며 액체산소 펌프를 회전시키는 2단 동익은 충동형 터빈 블레이드의 형상에 어느정도의 반동도가 더해진 형상이다.

TP-703의 펌프 임펠러 후면 구조와 터빈의 구성

각 터빈에는 터빈 블레이드 팁으로부터의 작동유체 누설을 줄여 효율을 높이기 위함인지 허니컴 씰이 케이싱과 터빈 블레이드 팁 사이에 위치해있다. 허니컴 씰은 터빈 블레이드 대비 약한 재질로 만들어져 살짝 닿더라도 터빈 블레이드는 손상되지 않으면서 좁은 간극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건 LE-5와 LE-7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구조이다. 해당 구조도 가스터빈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당연하게도 터보펌프와 가스터빈은 이란성 쌍둥이에 비견된다)

논문에서 언급된 TP-70X 계열 터보펌프의 허니컴 씰 구조.

가쿠다 우주센터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LE-7 엔진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터빈의 허니컴 씰 구조

4. 액체산소 터보펌프 - 터빈 블리스크 내측 및 축계 구조물

터빈에서 시선을 옮겨 액체산소 터보펌프 쪽을 본다.
우선 터빈에는 별도로 밸런싱을 위해 갈아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는 터빈 블리스크에 밸런싱을 위한 별도의 밸런싱 스톡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LE-5의 액체수소 터보펌프에도 별도의 밸런싱 스톡이 존재해서 해당 부분 이외에는 갈아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 기억난다.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터빈-임펠러 사이의 구조들

베어링을 보면 촬영 각도의 문제로 액체수소 터보펌프에서는 보지 못했던 베어링 내륜의 구조가 보인다. 베어링이 내륜 확장형 베어링으로 되어있으며, 확장된 내륜이 펌프 쪽을 바라보고 있다. 베어링 내륜의 확장은 베어링을 뺄 때 사용하는 공구인 베어링 풀러로 베어링을 쉽게 잡기 위함으로, 이는 터빈 블리스크와 샤프트가 일체형으로 제작된 본 터보펌프에서 취할만한 구조라고 생각된다.

ISAS의 논문에 언급된 터보펌프의 도면에 내륜확장형 베어링과 터빈의 밸런싱 스톡을 표시한 것

2번 베어링(터빈 측에 가까운 베어링)에 스프링으로 예압이 가해지고 베어링 냉각용 추진제 분사 노즐이 존재한다는 점이 앞전의 액체수소 터보펌프와 동일하였지만 액체수소 터보펌프에서는 관찰할 수 없었던 점을 찾을 수 있었다.
1번 베어링과 2번 베어링 사이는 긴 스페이서가 위치해서 양 베어링 간의 위치를 잡아주는데 스페이서에 작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본 순간 2차유로 출구라 생각했지만 도면을 보고 나니 구멍이 스페이서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쩌면 터보펌프 조립 시 들어갈 수 있는, 추진제 이외의 수증기 등의 기체가 터보펌프 퍼지 시 원활히 빠져나가도록 뚫어둔 구멍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두면 그대로 얼어버려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으니깐. 스페이서는 터빈과 축이 일체형이 아닌 이상 안 쓸 수가 없으므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논문에 언급된 도면에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1번, 2번 베어링 사이 구조 설명을 추가한 그림

그 다음엔 시선을 좀더 앞쪽으로 옮겨서 회전축 씰과 펌프 임펠러 후단 구조를 살펴본다.

추진제 혼합방지 씰과 펌프 임펠러 후면이 잘 보이도록 찍은 사진

앞서 설명한 내륜 확장형 베어링을 포함하여 전체적인 구조는 액체수소 터보펌프와 동일하다. 
하지만 회전축 씰 조합체에 헬륨 퍼지 씰이 추가됐다. TP-703의 헬륨 퍼지 씰은 LE-5 와는 달리 라비린스 씰로 구성되어있었다. LE-5과 같은 시기에 개발되긴 했지만 살짝 이른 시기에 개발되어서 그런것이었을까? 아니면 설계자의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었을까? 확실한 점은 추진제가 섞이지 않을수 있다면 어떤 구조를 택하더라도 답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펌프 임펠러 후면에는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그것과 동일하게 Back Vane이 존재했다. 그 때문인지 밸런싱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걸 보면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가만 보니 액체수소와 액체산소 펌프 모두 동일한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 연료와 산화제 터보펌프의 설계 주체가 각각 NASDA 와 NAL 로 다른 LE-5의 터보펌프 시스템과 비교할 때 이것도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겠다.

5. 액체산소 터보펌프 - 케이싱 간 결합 구조

살짝 시선을 낮추어 펌프의 케이싱을 결합하는 구조를 살펴본다.

케이싱 간의 결합 구조를 찍은 사진

본 순간 어?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케이싱 간을 연결할 땐 별도의 너트를 추가하지 않고 케이싱에 나사산을 파서 볼트로 결합한 방식이었다. 이는 무두 볼트를 사용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한국의 75톤, 7톤급 터보펌프와 같은 방식이다.
단, 각 터보펌프를 결합할 댄 일반적인 볼트-너트 구조를 사용했다. 너트도 일반적인 형상이 아니라 풀림 방지 구조가 존재하는듯한 형상이었다. 어쩌면 이게 열팽창에 좀 더 좋은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볼트 머리와 케이싱 사이에는 풀림 방지용 및 열팽창 대응용으로 와셔가 삽입되어 있었다.

대조군 - 한국 75톤급 터보펌프의 케이싱 간 결합 구조

대조군 - LE-5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6. 액체산소 터보펌프 - 펌프 인듀서 및 임펠러

이젠 액체산소 펌프에 더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어본다.

액체산소 펌프 쪽에 가까이 가서 찍은 사진 1

액체산소 펌프 쪽에 가까이 가서 찍은 사진 2

액체수소 펌프와 동일하게 임펠러 상부 슈라우드 외측에 밸런싱을 위한 흔적이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일체형으로 주조되고 기계가공된듯한 임펠러라는 점이다. 비속도가 높으니 일체형으로 만들어도 문제는 없겠지.
임펠러에 라비린스 씰이 존재하는 점도 동일하지만 여기서는 케이싱에 위치한 라이너 구조도 보인다. 라이너구조는 LE-5 에도 적용된 바 있다. LE-5 에서는 라비린스 씰을 알마이트로 코팅하고 라이너는 불소 첨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어쩌면 TP-703도 똑같이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7. 감상

터보펌프 전시물은 단 하나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쿠다 우주센터의 전시물과 비교할 때 나름 매력있는 전시물이었다. 계속 언급했지만 동시기 LE-5의 터보펌프와 비교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니 재미있었다.
ES-703은 LE-5와 같은 시기 개발되긴 했지만 터보펌프 자체는 LE-5 보다 근소하게 먼저 개발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 터보펌프의 개발 과정 중 취득된 기술 중 일부가 IHI와 같은 제작 회사 등을 통해 LE-5용 터보펌프 개발에도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겹치는 개발 기간 중 서로 기술적인 요소들을 공유하면서 수렴진화했거나. 적어도 ES-70X 계열 이후의 ES-100X 는 LE-5 와 경합했던 물건인 만큼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추측이 틀리진 않을것같다.
또, 아무래도 우주개발 초기에 개발된 물건이다 보니 살짝 투박한 구석도 있어서 '이 사람들도 인간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각 설계 요소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특정 문제를 안정감 있게 풀어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실제 저 터보펌프로 시험을 진행한 노시로(能代) 시험장의 전시장에서 보았더라면 가쿠다 때에서와 같이 장소가 주는 느낌으로 더 생생히 느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부러운 점이라면, 실제 터보펌프를 개발한 인사가 대학으로 부임해서 연구센터를 만들고 후학을 양성했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현재도 해당 대학 연구센터에서는 구 NASDA, JAXA 출신 연구자가 교수로 들어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학생들이 JAXA 같은 연구기관이나 IHI와 같은 항공우주 회사에 많이 진출하였다고 한다. 한국은 아무래도 항공우주 개발 측면에서 막 걸음마를 떼었다 볼 수 있기 때문에 실제 개발에 참여한 인사들로부터 학생때부터 배운 제자들이 아직 업계에 진입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ES-703 엔진 및 터보펌프인 TP-703을 개발한, 타나츠구 노부히로(棚次亘弘)의 저서를 들고 터보펌프 앞에서 사진을 찍어 선배 터보펌프 엔지니어(물론 타국이긴 하지만)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이번 글을 마친다.

터보펌프 앞에서

8. 참고 문헌

[1] 液水/液酸ターボポンプの試験 I. ポンプ, 棚次亘弘
[2] 液水/液酸エンジンの開発, 棚次亘弘
[3] ターボポンプの開発, 棚次亘弘

밸런스 피스톤 문제 해결 - LE-7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 개발 과정 중의 사례.

2년쯤 전에 연재하였던 카미죠 켄지로(上條謙二郎)의 회고록에 LE-7 엔진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밸런스 피스톤에서 발생한 문제와 그 해결 과정이 언급된 바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해당 글의 링크를 첨부한다. https://cf-105arrow.b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