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5일 화요일

극저온 액체로켓엔진 추진제의 과냉 - 터보펌프 캐비테이션 측면에서

최근 스페이스X 를 위시한 뉴 스페이스(New-Space) 기업들의 우주발사체 개발이 활발한 가운데, 액체로켓엔진 시스템의 성능 향상을 위한 방법들 중 추진제의 과냉각(스페이스X 관련 글들에서는 'Subcool' 이라 언급됨)이 떠오르고 있다.
과냉각된 추진제는 온도가 낮은 만큼 밀도가 늘어나 같은 부피의 추진제탱크에 더 많은 질량의 추진제를 담을 수 있으며, 터보펌프의 작동 측면에서도 캐비테이션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어 바람직하다고 알려져왔다. 
통념적으로 극저온 유체를 포함한 유체들은 낮은 온도에서 평상시보다 낮은 증기압 특성을 지녀 기화하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터보펌프의 작동 변수들 중 중요한 '캐비테이션 수'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터보펌프는 캐비테이션 수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캐비테이션 현상이 심화되다가 결국에는 양정상승이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들어가므로, 캐비테이션 수를 높여주는 것이 캐비테이션 현상 저감에 도움이 된다는 통념이 타당해보인다.

위키피디아에서의 캐비테이션 수 설명.
펌프에서는 분모에 펌프 블레이드 팁 속도, 분자에 증기압이 들어간다.

터보펌프 인듀서의 캐비테이션 수 - 양정상승 관계.
캐비테이션 수가 줄어들다 특정 구간에 다다르면 양정상승량이 급격하게 낮아진다.

오늘 쓸 글은 과연 이러한 통념이 맞는지에 대해서이다. 과연 간단히 추진제의 온도를 낮추는 것만으로 캐비테이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1. 이론적 배경 -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

이 글을 쓰기에 앞서 내가 읽은 문헌이 있다.
바로 내 은인인, 일본의 터보펌프 1세대 연구자 카미죠 켄지로(上條謙二郎)와 동시기에 활동하였던 Christopher E. Brennen 의 'Hydrodynamics of Pumps' 이다. 브레넨은 이전 카미죠 켄지로와 관련된 연재글에서 잠시 언급된 바 있으며, 안면도 있었는지 카미죠 켄지로의 논문을 대리발표하기도 하였다.

Christopher E. Brennen.
카미죠 켄지로의 저서에서 Caltech의 준교수(한국식으로는 조교수)로 언급된 인물.

브레넨의 해당 저서에서는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에 대해 이론적인 설명을 언급하고 있다. 여담으로,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 역시 카미죠 켄지로가 저서에서 언급한 바 있으며, 당연히 나도 그 내용을 연재글에 싣고있다.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로 인해 액체산소, 액체수소 등과 같은 극저온 추진제가 케로신과 같은 상온 추진제 대비 더 낮은 유량 계수 영역(분모인 팁 속도가 높아지는데, 해당 변수는 캐비테이션 수에서 분모에 위치하므로 낮은 캐비테이션 수 영역임을 의미한다)에서도 흡입 성능이 유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도 특정 영역까지만 유지되며 그 이후로는 양정은 급격하게 저하되므로 효과가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는것은 아니다.

미국의 문헌에서 확인되는 인듀서의 유량 계수(팁 기준) - 흡입 비속도 관계.
그래프 기준 높은 영역까지 올라가는 항목들을 자세히 보면 극저온 추진제가 작동유체임을 알 수 있다.


2.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

우선 나는 일반적인 석사 졸업생 나부랭이A에 불과하며, 캐비테이션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거나 특정 인듀서 설계 파라메터에 대해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에 대해 계산할 능력은 안 된다는 점을 겸허히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브레넨의 저서는 해당 현상을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
브레넨의 저서에서 캐비테이션은 하나의 구(球)형 공동(저서에서는 'Bubble' 이라 언급됨)만을 가지고 있으며, 해당 모델(Spherical Bubble Model)은 Rayleigh-Plesset 방정식에 기반한다. 해당 모델에서는 공동의 반지름 R(t)와, 공동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작동유체의 압력 p(t) 간의 관계를 정의하고 있다.

공동 반지름과 작동유체 압력 간의 관계

위의 식에서 p(t) 외의 pB(t) 는 공동 내부의 압력이며, R은 구형 공동의 반지름, 𝞺L 은 작동유체의 밀도이다. 여기서 p(t) 는 계산에 필요한 입력 변수가 되며, 일련의 과정을 통해 pB(t)를 계산할 수 있다.
여기서 공동 내에 기체 뿐만 아니라 액상까지 존재한다면(학부 열역학 시간에 배우는 '건도'가 이럴때 쓰인다.)공동 내의 압력 pB(t) 는 아래와 같이 정의된다.

공동 내 압력의 관계식

식의 우항을 잘 보면 공동 내의 증기압 pv(TB)가 pv(T) - 𝞺Lϴ 로 바뀌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전자는 공동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작동유체의 온도에서의 증기압을 의미하며, 후자가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를 나타내는 항이다. 여기서 𝞺Lϴ가 증가하면 공동 내의 증기압이 낮아지며, 감소하면 상승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의 원천인 ϴ 는 아래와 같이 정의된다.

캐비테이션의 열역학적 효과를 나타내는 관계식

위의 식을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식 6.1, 6.2와 연계해서 열전달 방정식을 세워서 풀어야 하지만 아래와 같이 일련의 근사식이 있다.
우선, 공동-액체 간 경계면에서의 온도구배는 아래와 같이 정의된다.

공동-액체 간 경계면에서의 온도를 정의하는 관계식

여기서 kL 은 액체의 열전달 계수이다.
그리고 액체 구간에서의 열확산 방정식은 아래와 같이 단순화될 수 있다.

단순화된 열확산 방정식

식 6.5에서 αL 은 액체의 열확산 계수로, 액체의 정압비열과 열전달계수, 밀도의 관계식인  αL = kL / 𝞺LCPL 로 정의된다. 
상기 식 6.4와 6.5 를 6.3에 적용하면 아래와 같은 열역학적 효과의 관계식이 도출된다.

문헌 상 식 6.6과 6.7로 설명된 식을 합친 것.

언뜻 보기에 T 로 언급되는 작동유체 온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열역학적 효과ϴ 도 커져서 공동 내의 압력도 낮아져 캐비테이션이 억제될 것처럼 보인다.

3. 실제 나타나는 현상은? - 통념과 반대된다.

우선 브레넨의 저서에 나와있는 캐비테이션 수 - 양정 간의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를 제시한다. 작동 유체는 물이며 온도를 달리하여 시험을 실시하였다.

다양한 온도 영역에서의 원심 펌프 캐비테이션 실험 결과.

그래프를 보면 증기압이 높아 캐비테이션이 더 잘 일어날 것처럼 보이는 고온으로 가면 갈수록 더 낮은 캐비테이션 수에서 양정이  저하됨을 알 수 있다. 이는 명백히 우리의 통념과는 반대된다.
하지만 아무리 물의 증기압을 높여서 극저온 유체와 유사하게 만들었다 하더라도 실제 극저온 유체에서는 안 그러지 않을까? 여기에 대해 브레넨은 J-2 엔진의 액체산소 펌프용 인듀서의 시험 결과를 제시한다.

J-2 엔진의 액체산소 터보펌프 시험 결과.

시험 결과를 보면 고온으로 가면 갈수록 양정을 상실하는 캐비테이션 수 영역이 낮아짐을 알 수 있다. 물론 고온에서는 액체산소 특성상 증기압이 급격히 상승하므로 그만큼 입구압을 높여서 시험했을 수도 있긴 하겠지만, 우주발사체에서 많이 사용하는 영역인 90K 와 95K 영역을 보면 믿을만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는 왜 나왔던 것일까?
여기에 브레넨은 작동유체 온도가 낮은 조건과 높은 조건에서, 초기 공동 크기가 동일한 상황을 가정하여 공동의 크기를 커지게 하는 내부 압력과 작아지게 하는 공동-작동유체 간 열전달에 대한 관계로 설명한다.

작동유체 온도가 낮은 조건에서는, 공동 내의 온도 자체가 낮으므로 포화증기의 밀도도 낮을 수밖에 없다. 겨울철과 여름철의 외부 습도에 대한 관계를 상기해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러면 당연히 공동 내로 기화하는 추진제의 양도 적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주변 액체로부터 빼앗아가는 열량도 낮을 수밖에 없다. 기화로 빼앗기는 열량이 낮은 만큼, 공동 내의 온도는 주변 대비 적게 내려가며, 이러면 공동 내의 증기압은 아주 약간 내려갈 것이다
증기압이 적게 내려가니, 공동을 줄어들게 하는 힘은 줄어드므로 공동은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커지게 된다.

이를 위의 수식들로 설명해 보면(틀릴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자), 공동 내의 증기량인 mG 는 작을 것이고 포화증기 밀도 𝞺V 역시 작아져서 공동의 반지름 증가율인 dR/dt 에 큰 차이가 없다면 열역학적 효과 ϴ 도 작아지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공동 내의 압력을 낮추는 열역학적 효과가 작아졌으니 내부 압력인 pB(t)는 증가하여 공동을 커지게 한다

작동유체 온도가 높은 조건에서는, 공동 내의 온도가 높아 포화증기 밀도가 높다. 이로 인해 공동 - 액체 영역 간 추진제 기화로 인한 열전달이 활발하게 일어나, 오히려 공동 내 온도는 크게 내려갈 것이다. 온도가 크게 내려갔으므로 내부 증기압이 크게 내려갈 것이다.

이것 역시 위의 수식들로 설명해 보면  포화증기 밀도 𝞺V 는 온도가 낮은 조건 대비 매우 커져서 열역학적 효과 항인 ϴ 가 크게 반영된다. 이러면서 공동 내부 압력 pB(t)는 내려가서 공동의 성장이 억제된다.

4. 추진제 과냉각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과냉각된 추진제를 사용한다는 것으로 알려진 스페이스X의 Falcon9

이론적으로도 그렇고 실험 결과로도 과냉각된 추진제는 오히려 캐비테이션 특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만약 내가 인듀서 설계자라면 추진제 과냉각을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하고싶을 정도다.

하지만 '발사체 시스템' 차원에서의 추진제 과냉은 위에 언급했다시피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밖에 없다. 만약 발사체 시스템 측면에서 추진제 과냉각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터보펌프 설계자가 과냉각 배제를 설득할 수 없다면, 인듀서 설계자 입장에서는 당연하겠지만 과냉된 온도조건의 추진제 속에서 인듀서가 일으키는 캐비테이션의 특성을 파악하고 운전 가능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과냉되지 않은 일반적인 온도조건에서 캐비테이션 특성이 좋은 인듀서가 과냉 영역에서도 좋은 특성을 보일 것이겠지만, 이는 인듀서가 선택한 형상 특성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영향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


참고 문헌

[1] Hydrodynamics of Pumps, Christopher E. Brennen
[2] ロケット用小型高速高揚程液体酸素ポンプの試験的研究, TR-415, 上條謙二郎 외.
[3] Liquid Rocket Engine Centrifugal Flow Turbopumps, NASA SP-8109

2025년 5월 2일 금요일

ES-703엔진 터보펌프의 세부 사진들

1970년대 옆나라 일본의 우주개발 기관들로 NASDA(우주개발사업단, 宇宙開発事業団), NAL(항공우주기술연구소, 航空宇宙技術研究所), ISAS(우주과학연구소, 宇宙科学研究所) 총 세 기관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독자들은 잘 알 것이다.
이들 중 NASDA 와 NAL이 연합하여 현재까지 사용중인 LE-5B-3(익스팬더 블리드 사이클)의 원본인 LE-5(가스발생기 사이클)과, 1단용 대형 엔진의 효시인 LE-7을 개발하였다. 

같은 시기 M 시리즈를 위시한 고체 우주발사체를 개발하여 과학 위성 및 탐사선들을 쏘아올리고 있었던 ISAS,역시 LE-5와 유사한 액체수소-액체산소 엔진 개발 프로젝트가 존재했다. 당시 ISAS에서 개발된 엔진들의 이름은 ES(Engine System)-70X, ES-100X 로, 각각 7톤급과 10톤급 엔진 라인업이었다. 7톤급 엔진인 ES-70X 시리즈는 ISAS의 2단형 우주발사체인 M-2H의 2단에, 10톤급 엔진인 ES-100X 는 H-I(우리가 아는 NASDA의 그 발사체가 맞다)의 2단에 적용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엔진의 사이클은 LE-5와 같은 가스발생기 사이클이나 엔진 시동 방식은 한국의 75, 7톤급 엔진과 유사한 파이로시동기 방식이다. 파이로시동기에는 ISAS의 M시리즈 발사체의 자세제어 장치의 기술이 들어갔다고 한다.

ISAS ES-70X 엔진 시스템의 스키매틱. ES-100X 엔진도 같은 방식을 공유한다.
가스발생기 사이클이며 파이로시동기(TURBINE SPINNER)가 존재한다.


ISAS의 ES 시리즈 엔진들의 실물 사진

오늘 쓸 글은 ISAS의 ES 시리즈 엔진들 중 ES-703 엔진의 터보펌프의 세부 사진에 대한 글이다. 같은 시기 개발된 LE-5의 터보펌프들과 비교할 때 같은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한 부분이 보이며, 일부는 아무래도 같은 회사(IHI)에서 제작되어서 그런지 유사한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들을 찾으면서 글을 읽는다면 나름 재미있을것이다.

터보펌프 전시물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한 대학의 항공우주공학과 건물 1층 로비에 위치해있다. 엄밀히 말해 정식 박물관이 아니기때문에 지나치게 사람들이 찾아가면 해당 대학 학생 및 교직원들이 곤란할 수 있어 정확한 대학명은 말하지 않는다. 
여담으로 해당 대학의 항공우주대학을 저 ES 시리즈 엔진을 개발한 인사가 창설했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터보펌프 전시물의 위치는 참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1. 전체적인 구조


ES-703 엔진 터보펌프 전시물. 터보펌프의 모델명은 TP-703이라 한다.
가쿠다에서 보았던 LE-7 엔진용 터보펌프와 유사한 절개 모델이다.


TP-703의 단면도. 이번 글에서 많이 언급될 것이다.

처음 전시물을 보면 LE-5나 LE-7보다는 한국의 75톤, 7톤급 터보펌프와 유사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엄연히 LE 시리즈와 동일하게 별개의 축계로 구성된 터보펌프 시스템으로, 따라서 LE-5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
액체산소와 액체수소 터보펌프가 각각의 터빈을 가지지만, 각 터빈이 같은 터빈 케이싱 안에서 서로 마주보고 반대로 회전하는 형식이다. 이러한 형식을 '반전식 터빈(Contra-Rotating Turbine)' 이라고 부르며, 1단과 2단 동익 사이의 정익을 없앤 대신 2단 동익을 1단 동익과 반대로 회전시켜 1단 동익에서 토출된 유체의 각속도 성분을 그대로 이용하는 형식이다.
해당 형식은 2단 정익이라는 구조물의 부재로 마찰 손실이 존재하지 않아 효율이 높으며, 저유량 조건에서 2단 동익이 1단 동익 대비 느리게 회전하는 경우, 2단 동익의 유동각 범위가 넓어져 터빈 후단의 배압이나 2단 동익의 회전속도 변화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가스발생기 사이클 엔진인 ES-703의 터보펌프 터빈 구성 방식으로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단점으로는 혼합비 조정 등을 위해 터빈의 회전수를 능동적으로 조절하기 어렵다는 점? 그 때문인지 ES-70X 시리즈 엔진은 액체산소 펌프에서 토출된 액체산소 일부를 다시 추진제탱크로 돌려보내 혼합비와 추력을 제어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2. 액체수소 터보펌프 - 인듀서 및 임펠러 측

우선 액체수소 펌프 쪽으로 시선을 옮겨본다.

TP-703의 액체수소 펌프

큰 직경의 펌프 임펠러로부터 액체수소 펌프라는 것을 안내판 없이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인듀서에는 별도의 라이너가 없었으나, 인듀서와 임펠러 사이에 계단식 라비린스 씰로 이차유로를 구성한 것이 눈에 띈다. 이런 구조는 LE-5의 액체수소 펌프에서도 보인다.
임펠러는 낮은 비속도로 인한 상대적으로 낮은 유로 높이 때문인지 상부와 하부를 따로 제작해서 접합한듯한 흔적이 보였다. 저 비속도 임펠러들에서 흔히 보이는 제작 방식이다.
이외에 인듀서 전방의 입구 플랜지에는 배관 플랜지 간의 기밀을 위한 정적 씰이 들어가는 홈이 보인다.

액체수소 펌프 직전방에서

바로 전방으로 시선을 옮겨보니 임펠러 상부 슈라우드에서 밸런싱을 위해 갈아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흔적은 LE-5는 물론 LE-7의 펌프 임펠러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LE-5와 7 모두 인듀서 체결용 구조(TP-703에서는 유선형으로 가공된 육각 볼트) 후방에 인듀서를 밸런싱한 흔적이 존재했지만 TP-703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가려진 부분을 갈아낸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언급된 부분을 논문 상의 도면에 표시한 것

3. 액체수소 터보펌프 - 펌프 후단 구조물들

다음은 액체수소 펌프 후방의 구조로 시선을 옮겨보자.

액체수소 펌프 후방의 구조

공교롭게도 터보펌프 전시물 앞에서의 흥분으로 액체수소 펌프 축계의 사진은 제대로 찍지를 못했다. 
우선 펌프 임펠러의 축 추력 저감을 위한 Back Vane 이 보인다. 동시기 개발된 LE-5의 경우에는 액체수소 펌프에 밸런스 피스톤을 적용하여 축 추력 문제를 해결하였다. ISAS의 터보펌프 관련 인사들이 발표한 논문에서는 Back Vane이 터보펌프 회전수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에서 우수하여 선정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Back Vane이 축 추력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는지 이해를 돕기 위해 논문에서 언급된 그림을 첨부한다.

ISAS의 논문에서 언급된 Back Vane의 작동 원리. 다른 방향으로 빗금친 부분에 주목.

요약하자면 임펠러 후단은 펌프 출구의 고압 유체가 들어차 전면 대비 고압 영역이 될 수밖에 없는데, Back Vane이 유체의 정압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해서(아마 와류 등을 일으켜 에너지를 소산시키는 방식일 것이다) 전/후면의 압력 차이를 줄여준다. 이 방식은 미국의 M-1 엔진의 터보펌프 등에 적용된 바 있다. 어쩌면 M-1의 자료를 당시 개발자들이 참고했을지도 모르겠다.

임펠러 후면으로 전면 베어링, 베어링 냉각용 유체 노즐, 후면 베어링, 회전축 씰 조합체가 위치해있다. 전면 베어링은 케이싱에 앞/뒤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되어 있는 대신, 후면의 베어링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앞/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있다. 이는 극저온에서의 열팽창으로 인해 작동 환경에서 후방 베어링에 의도치 않은 힘이 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설계로, 고온에서 작동하는 가스터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신 후방 베어링이 고정되지 않은 관계로 강성이 낮아지고, 자연스럽게 터빈의 임계속도가 낮아지는데, 이는 후방 베어링에 스프링으로 예압을 가해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다. 위의 사진에서도 후방 베어링의 외륜을 펌프 쪽으로 밀어내는 방향으로 예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륜을 예압할 시 베어링의 거동을 나타낸 그림.
접촉각이 생겨 같은 반경방향 하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적은 하중이 베어링에 전달된다.

베어링 냉각 문제도 LE-5와 비슷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한 점을 알 수 있었다. LE-5의 액체수소 터보펌프는 밸런스 피스톤의 2번 오리피스에서 토출된 액체수소가 그대로 베어링 두 개를 냉각시키도록 구성한 반면, TP-703 에서는 별도의 냉각 유체 분사용 노즐을 통해 직접적으로 베어링에 냉각유체를 분사시켜 해결하였다. 이는 가스터빈에서 많이 보이는 방식이다. LE-5의 액체산소 터보펌프도 펌프 출구에서 베어링 냉각용 고압 액체산소를 취하여 베어링이 위치한 공간으로 보내긴 하지만 노즐로 불리는 물건을 쓰진 않았다.

가스터빈의 베어링 냉각 방식. 별도의 오일 분사노즐로 베어링에 직접적으로 냉각용 오일을 분사한다.

베어링 후면에는 회전축 씰 조합체가 보인다. 아무래도 터빈의 작동유체가 고온 수소과농 가스이다보니 액체수소가 누설되어 섞이더라도 폭발 위험은 없다. 해서, 회전축 씰은 메카니컬 씰(액체수소의 누설을 1차적으로 막음), 라비린스 씰(고온 터빈구동 가스를 막는다) 구성으로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하지만 넓은 직경의 터빈 가스 씰 안쪽에 메카니컬 씰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LE-5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와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메카니컬 씰은 벨로우즈까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가쿠다 우주센터의 전시물에 비해 더 나은 측면이 있다. 가쿠다 우주센터에서는 축계 조립체만 전시해서 메이팅 링만 붙어있거나 아예 축계를 제외하면 가려놓아서 저런 구조를 볼 수가 없었다.

액체수소 펌프의 회전축 씰 계통 설명 - 메카니컬 씰과 라비린스 씰

비슷한 구조 - LE-5의 액체산소 터보펌프 회전축 씰 구성.
터빈 가스 씰의 위치에 주목.

다음으로는 Back Vane 외의 터빈 임펠러 후면의 구조와 터빈 구성으로 화제를 옮겨본다. 펌프 임펠러의 후방에서는 별도로 밸런싱을 위해 갈아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후면에 Back Vane 이 존재해서 별도의 유체력을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기 위함이라고 추정된다. 어쩌면 임펠러 후단에 별도로 갈아내기 위한 구조가 존재하거나 아예 임펠러 익단을 갈아냈을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터빈은 일반적인 노즐-1단 동익-정익-2단 동익 구조가 아니라 노즐-1단 동익-2단 동익 구조의 반전식 터빈 구조이다. 액체수소 펌프를 회전시키는 1단 동익은 완전한 충동형 터빈의 형상을 띄고 있으며 액체산소 펌프를 회전시키는 2단 동익은 충동형 터빈 블레이드의 형상에 어느정도의 반동도가 더해진 형상이다.

TP-703의 펌프 임펠러 후면 구조와 터빈의 구성

각 터빈에는 터빈 블레이드 팁으로부터의 작동유체 누설을 줄여 효율을 높이기 위함인지 허니컴 씰이 케이싱과 터빈 블레이드 팁 사이에 위치해있다. 허니컴 씰은 터빈 블레이드 대비 약한 재질로 만들어져 살짝 닿더라도 터빈 블레이드는 손상되지 않으면서 좁은 간극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건 LE-5와 LE-7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구조이다. 해당 구조도 가스터빈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당연하게도 터보펌프와 가스터빈은 이란성 쌍둥이에 비견된다)

논문에서 언급된 TP-70X 계열 터보펌프의 허니컴 씰 구조.

가쿠다 우주센터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LE-7 엔진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터빈의 허니컴 씰 구조

4. 액체산소 터보펌프 - 터빈 블리스크 내측 및 축계 구조물

터빈에서 시선을 옮겨 액체산소 터보펌프 쪽을 본다.
우선 터빈에는 별도로 밸런싱을 위해 갈아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는 터빈 블리스크에 밸런싱을 위한 별도의 밸런싱 스톡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LE-5의 액체수소 터보펌프에도 별도의 밸런싱 스톡이 존재해서 해당 부분 이외에는 갈아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 기억난다.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터빈-임펠러 사이의 구조들

베어링을 보면 촬영 각도의 문제로 액체수소 터보펌프에서는 보지 못했던 베어링 내륜의 구조가 보인다. 베어링이 내륜 확장형 베어링으로 되어있으며, 확장된 내륜이 펌프 쪽을 바라보고 있다. 베어링 내륜의 확장은 베어링을 뺄 때 사용하는 공구인 베어링 풀러로 베어링을 쉽게 잡기 위함으로, 이는 터빈 블리스크와 샤프트가 일체형으로 제작된 본 터보펌프에서 취할만한 구조라고 생각된다.

ISAS의 논문에 언급된 터보펌프의 도면에 내륜확장형 베어링과 터빈의 밸런싱 스톡을 표시한 것

2번 베어링(터빈 측에 가까운 베어링)에 스프링으로 예압이 가해지고 베어링 냉각용 추진제 분사 노즐이 존재한다는 점이 앞전의 액체수소 터보펌프와 동일하였지만 액체수소 터보펌프에서는 관찰할 수 없었던 점을 찾을 수 있었다.
1번 베어링과 2번 베어링 사이는 긴 스페이서가 위치해서 양 베어링 간의 위치를 잡아주는데 스페이서에 작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본 순간 2차유로 출구라 생각했지만 도면을 보고 나니 구멍이 스페이서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쩌면 터보펌프 조립 시 들어갈 수 있는, 추진제 이외의 수증기 등의 기체가 터보펌프 퍼지 시 원활히 빠져나가도록 뚫어둔 구멍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두면 그대로 얼어버려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으니깐. 스페이서는 터빈과 축이 일체형이 아닌 이상 안 쓸 수가 없으므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논문에 언급된 도면에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1번, 2번 베어링 사이 구조 설명을 추가한 그림

그 다음엔 시선을 좀더 앞쪽으로 옮겨서 회전축 씰과 펌프 임펠러 후단 구조를 살펴본다.

추진제 혼합방지 씰과 펌프 임펠러 후면이 잘 보이도록 찍은 사진

앞서 설명한 내륜 확장형 베어링을 포함하여 전체적인 구조는 액체수소 터보펌프와 동일하다. 
하지만 회전축 씰 조합체에 헬륨 퍼지 씰이 추가됐다. TP-703의 헬륨 퍼지 씰은 LE-5 와는 달리 라비린스 씰로 구성되어있었다. LE-5과 같은 시기에 개발되긴 했지만 살짝 이른 시기에 개발되어서 그런것이었을까? 아니면 설계자의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었을까? 확실한 점은 추진제가 섞이지 않을수 있다면 어떤 구조를 택하더라도 답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펌프 임펠러 후면에는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그것과 동일하게 Back Vane이 존재했다. 그 때문인지 밸런싱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걸 보면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가만 보니 액체수소와 액체산소 펌프 모두 동일한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 연료와 산화제 터보펌프의 설계 주체가 각각 NASDA 와 NAL 로 다른 LE-5의 터보펌프 시스템과 비교할 때 이것도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겠다.

5. 액체산소 터보펌프 - 케이싱 간 결합 구조

살짝 시선을 낮추어 펌프의 케이싱을 결합하는 구조를 살펴본다.

케이싱 간의 결합 구조를 찍은 사진

본 순간 어?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케이싱 간을 연결할 땐 별도의 너트를 추가하지 않고 케이싱에 나사산을 파서 볼트로 결합한 방식이었다. 이는 무두 볼트를 사용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한국의 75톤, 7톤급 터보펌프와 같은 방식이다.
단, 각 터보펌프를 결합할 댄 일반적인 볼트-너트 구조를 사용했다. 너트도 일반적인 형상이 아니라 풀림 방지 구조가 존재하는듯한 형상이었다. 어쩌면 이게 열팽창에 좀 더 좋은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볼트 머리와 케이싱 사이에는 풀림 방지용 및 열팽창 대응용으로 와셔가 삽입되어 있었다.

대조군 - 한국 75톤급 터보펌프의 케이싱 간 결합 구조

대조군 - LE-5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6. 액체산소 터보펌프 - 펌프 인듀서 및 임펠러

이젠 액체산소 펌프에 더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어본다.

액체산소 펌프 쪽에 가까이 가서 찍은 사진 1

액체산소 펌프 쪽에 가까이 가서 찍은 사진 2

액체수소 펌프와 동일하게 임펠러 상부 슈라우드 외측에 밸런싱을 위한 흔적이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일체형으로 주조되고 기계가공된듯한 임펠러라는 점이다. 비속도가 높으니 일체형으로 만들어도 문제는 없겠지.
임펠러에 라비린스 씰이 존재하는 점도 동일하지만 여기서는 케이싱에 위치한 라이너 구조도 보인다. 라이너구조는 LE-5 에도 적용된 바 있다. LE-5 에서는 라비린스 씰을 알마이트로 코팅하고 라이너는 불소 첨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어쩌면 TP-703도 똑같이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7. 감상

터보펌프 전시물은 단 하나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쿠다 우주센터의 전시물과 비교할 때 나름 매력있는 전시물이었다. 계속 언급했지만 동시기 LE-5의 터보펌프와 비교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니 재미있었다.
ES-703은 LE-5와 같은 시기 개발되긴 했지만 터보펌프 자체는 LE-5 보다 근소하게 먼저 개발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 터보펌프의 개발 과정 중 취득된 기술 중 일부가 IHI와 같은 제작 회사 등을 통해 LE-5용 터보펌프 개발에도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겹치는 개발 기간 중 서로 기술적인 요소들을 공유하면서 수렴진화했거나. 적어도 ES-70X 계열 이후의 ES-100X 는 LE-5 와 경합했던 물건인 만큼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추측이 틀리진 않을것같다.
또, 아무래도 우주개발 초기에 개발된 물건이다 보니 살짝 투박한 구석도 있어서 '이 사람들도 인간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각 설계 요소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특정 문제를 안정감 있게 풀어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실제 저 터보펌프로 시험을 진행한 노시로(能代) 시험장의 전시장에서 보았더라면 가쿠다 때에서와 같이 장소가 주는 느낌으로 더 생생히 느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부러운 점이라면, 실제 터보펌프를 개발한 인사가 대학으로 부임해서 연구센터를 만들고 후학을 양성했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현재도 해당 대학 연구센터에서는 구 NASDA, JAXA 출신 연구자가 교수로 들어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학생들이 JAXA 같은 연구기관이나 IHI와 같은 항공우주 회사에 많이 진출하였다고 한다. 한국은 아무래도 항공우주 개발 측면에서 막 걸음마를 떼었다 볼 수 있기 때문에 실제 개발에 참여한 인사들로부터 학생때부터 배운 제자들이 아직 업계에 진입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ES-703 엔진 및 터보펌프인 TP-703을 개발한, 타나츠구 노부히로(棚次亘弘)의 저서를 들고 터보펌프 앞에서 사진을 찍어 선배 터보펌프 엔지니어(물론 타국이긴 하지만)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이번 글을 마친다.

터보펌프 앞에서

8. 참고 문헌

[1] 液水/液酸ターボポンプの試験 I. ポンプ, 棚次亘弘
[2] 液水/液酸エンジンの開発, 棚次亘弘
[3] ターボポンプの開発, 棚次亘弘

2024년 12월 24일 화요일

일본의 터보펌프용 극저온 메카니컬 씰 개발 이야기 - 개론

이번에는 터보펌프 자체보다는 거기에 들어가는 부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과거 내가 투고했던 글을 보면 재점화를 수행하는 액체로켓엔진의 터보펌프에는 메카니컬 씰과 같이 회전축이 정지할 때는 밀봉을 유지하는 형식의 씰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은 나름 초기에 개발했던 LE-5 엔진부터 이러한 것을 충실히 지켰고. 마침 LE-5도 궤도상에서 재점화를 수행하니, 관련된 고민을 했을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설계는 이후의 LE-7(액체수소 터보펌프. 리프트 오프 씰 형식으로 적용됐다), LE-9(추정. 상세한 도면이 공개되지 않았다)에도 절찬리에 적용되고 있다. 여담으로, 일본에서 이런 극저온 메카니컬 씰을 개발하는 곳은 이글 공업(イーグル工業, EKK)이라는 곳이다.

LE-5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단면도. 터빈 앞쪽에 메카니컬 씰(メカニカルシール)이 적용됐음을 알 수 있다.

LE-5의 액체산소 터보펌프 단면도.
여기는 추진제 혼합방지 씰인 헬륨 퍼지 씰(ヘリウムパージシール) 앞에 메카니컬 씰이 적용됐다.

LE-7의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터빈 측 단면도. 벨로우즈와 메이팅 링의 존재로부터 메카니컬 씰이 적용됐음을 알 수 있다.

이전 가쿠다 우주센터 방문기에서 언급하기도 했던 단면도.
리프트 오프 씰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보여주는 그림이라 또 가져왔다.

이런 극저온 메카니컬 씰은 현재 한국에서도 100톤급과 10톤급을 위해 개발중에 있다. 리프트 오프 씰 형식으로 개발중에 있으며, 개발사는 한국씰마스타이다. 극저온 조건에서 작동하는 메카니컬 씰의 경우에는 이미 75톤급과 7톤급 엔진의 연료펌프와 터빈 사이에 적용되어있다.
한편, 최근 한국에서도 뉴 스페이스(New-Space) 시대를 맞이하여 여러 민간 우주발사체 기업들이 창설되어 메테인/액체산소 조합을 채택한 액체로켓엔진들을 개발 중에 있다. 그리고 이들 엔진들은 하나같이 궤도 상 호만 전이 및 폐기 기동, 혹은 지상단의 재착륙을 위해 터빈과 펌프 사이에 메카니컬 씰이 적용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기에 쓰일 만한 극저온 메카니컬 씰에 대한 정보와 개발 사례가 부족한 실정이다. 아마 현재 개발을 진행중인 한국씰마스타에서는 관련 자료들을 갖고있을 것이라 생각되나, 학술대회 발표 자료나 학회세션 발표 초록을 제외하면 공개된 자료가 너무 적다.

한국형발사체 7톤급 터보펌프의 메카니컬 씰 적용 위치. 해당 메카니컬 씰은 한국씰마스타에서 개발하였다.

이번에는 이러한 상황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메카니컬 씰 개발 과정을 담은 일본NAL(航空宇宙技術研究所)의 TR시리즈 논문을 리뷰하고 터보펌프용 메카니컬 씰의 설계 주안점을 분석하는 한편, 개별 사례들을 분석 및 비교하는 글을 쓸 것이다. 
어떠한 요소에 주안점을 두고 설계가 이루어졌는지, 또 어떠한 방식으로 성능 향상을 위한 개량이 수행되었고 어떠한 점이 개선되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간다면 작동 유체에 따라 엄연히 다르게 나타났던 양상에 대해 소개하고 왜 이러한 차이가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도 다룰 것이다. 덧붙여서 메카니컬 씰을 직접 설계하진 못하더라도 어떠한 점에 주의를 기울여 관련 계통을 설계하여야 하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이번에 쓰고자 할 내용은 꽤 방대하여 여러 글로 나누어 쓸 것이다. 우선 첫 글은 액체로켓엔진 터보펌프용 극저온 메카니컬 씰의 설계 방식과 일본의 엔지니어들이 택한 성능개량 방식에 대한 내용이다. 


1. 메카니컬 씰 설계 - 축방향 압력분포 조정

터보펌프에 적용되는 메카니컬 씰은 상/하류의 차압으로 인한 힘과 씰 링-메이팅 링 사이 압력으로 인한 힘이 평형을 이루는 형식은 밸런스 형식이다. 일본의 자료에서는 전자가 밀봉력(密封力), 후자가 개방력(開方力)으로 각각 언급되었다.
밀봉력은 벨로우즈(혹은 스프링)가 씰 링을 메이팅 링으로 미는 힘과, 씰 링의 형상과 벨로우즈의 직경에 의해 고/저압부에 노출되는 면적 차이로 인해 발생되는 힘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서 벨로우즈의 힘에 의한 밀봉력은 이해하기 쉬우므로 설명을 생략하지만 씰 링 및 벨로우즈 직경에 의한 밀봉력에 대해서는 특별히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아래 그림을 보도록 하자. 


일본 NAL의 자료에서 언급된, 메카니컬 씰에 가해지는 힘

여러가지 기호가 있는데, 설명하자면 좀 길어서 일부만 언급할 것이다.
그림을 보면 씰 상류의 압력이 Po, 하류의 압력이 Pi 라 언급되어 있다. 당연히 Po는 펌프 측, Pi는 터빈 측으로, 펌프 측이 터빈 측보다 압력이 높아야 한다. 

그리고 메이팅 링과 맞닿는 씰 링의 외경은 Do, 내경은 Di 라 언급되어 있으며, Do와 Di 사이에 유체력으로 인해 개방력을 유발하는 압력분포가 존재한다. 이 압력분포는 선형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러한 압력분포는 일반적으로 비압축성 유체일 경우에 사용된다. 극저온 메카니컬 씰의 경우에는 당연히 해당 부위에서 상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좀 다른 압력분포를 나타내게 된다. 내가 참고한 자료에서는 아래와 같이 묘사되어 있다. 자료에 해당 모델이 어떠한 방식으로 압력분포를 추정했는지에 대해 나와있었으나 이걸 어느정도 이해하고 설명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으므로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양해를 부탁한다.

메카니컬 씰의 메이팅 링-씰 링 사이의 압력분포 양상 -
작동 속도에 따라 액체 -> 액체 + 기체 -> 기체 상태로 상이 변화하는데, 이에 따라 압력분포도 달라지게 된다. 

위의 그림에서 언급된 압력분포의 변화 양상 - 
회전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유체의 상변화가 일어나고 이에 따라 압력도 증가하게 된다.

앞서 말한 밀봉력의 경우에는 이 단락에서 가장 처음 언급한 그림의 Fc에 해당한다. Fc는 앞서 설명했다시피 씰 링과 벨로우즈의 형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림을 잘 보면 Fc의 형성에 기여하는 압력은 씰 링의 외경Do 로부터 De 라는 부분까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De는 '벨로우즈 유효 직경'으로, De 정도의 직경을 갖는 원통으로 벨로우즈를 단순화했을 때 원래 벨로우즈가 받는 축방향 힘과 Do 부터 De 까지의 구간의 압력으로 인한 힘이 같아진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Do와 De 로 이루어진 원환의 넓이를 Ac, 씰 링-메이팅 링 접촉면에 해당하는(Do와 Di) 원환의 넓이를 As 라고 하며 Ac/As 를 '유체 밸런스비' 라고 칭한다. De를 줄이면 줄일수록 그만큼 씰 링을 뒤에서 앞으로(메이팅 링으로) 미는 힘이 강해지는데, 이럴 때 유체 밸런스비는 그만큼 상승하게 된다. 이렇게 유체 밸런스비를 조정하여 씰 링의 밀봉 성능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물론 유체 밸런스비 상승으로 인한 수명 하락은 면밀히 고려하여야 한다.
덧붙여서, 저 밀봉력을 올리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씰 상/하류의 차압이다. 차압이 크다면 당연히 Fc를 생성하는 압력이 크게 높아지니 씰 링이 메이팅 링에 더 강하게 밀착할 것이다. 물론 개방력도 올라갈 순 있겠지만 그 크기는 Fc 보다는 크게 작다. 이로 인해 메카니컬 씰은 플로팅 링 씰과는 달리 높은 차압을 가지도록 설계하는 것이 많이 어렵다. 


2. 메카니컬 씰 설계 - 경방향 압력분포 조정

메카니컬 씰의 경방향 압력분포는 씰 링의 형상변화와 관련이 깊다. 특히 씰 링이 고압 측에 닫히는지, 열리는지에 따라 씰의 밀봉성능이 달라지는데, 여기에 경방향 압력분포가 관여한다. 아래 그림을 보도록 하자. 

서로 다른 형상의 메카니컬 씰에 가해지는 경방향 압력분포.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이는가?


타입I(タイプI)와 타입II(タイプII) 두 가지 형상이 제시되어 있다. 타입I은 바깥쪽, 즉 고압측으로 닫히는 방향으로 변형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고, 타입II는 반대로 저압측이 닫히는 방향으로 변형되고 있다. 
어찌보면 당연하게 고압 측이 닫히는 변형이 좀 더 바람직해 보이며, 이는 논문 상에서도 언급되어 있다. 이런 형상이라면 특히 정지 시의 기밀 성능이 더 좋을것이다. 

여기서 타입II가 일반적인 형상의 메카니컬 씰이다. 메이팅 링과 맞닿는 카본 링을 금속제 리테이너가 감싸고 있고, 벨로우즈가 리테이너에 접합되어 있는 형식이다. 아마 메카니컬 씰을 아는 사람이 메카니컬 씰을 그려보라는 요청을 받았을 경우에 단번에 나올 형상일 것이다. 
그림을 보면 벨로우즈에 압력(그림 상 圧力(1)로 언급되었다)이 경방향으로 가해지고, 그로 인해 내부로 향하는 힘인 Fp가 벨로우즈와 리테이너의 접합점인 C(그림 상 作用点C)에 형성된다. 그리고 이 힘은 씰 링(여기서는 카본 링과 리테이너 조합체)의 도심을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돌리는 모멘트 Mp가 된다. 더 쉽게 말하자면 C에 가해지는 힘이 씰 링을 아래로 잡아당겨 종국에는 고압 측을 향해 씰 링이 들리는 방향으로 변형된다.

타입I은 이러한 점을 해결한 형상이다. 기존의 리테이너에 벨로우즈가 접합된 구조가 아니라 엔드 피팅이 추가되어 가장자리에 벨로우즈가 접합된다. 그리고 엔드 피팅과 리테이너가 A점에서 용접으로 접합되어 있다.
벨로우즈에 가해지는 압력으로 경방향 힘인 Fp가 형성되는 것은 기존 형상과 동일하다. 하지만 기존 형상과 비교할 때 Fp가 생성하는 모멘트 Mp의 크기가 더 작도록 설계되었다. 그림 자체가 완전히 동일하게 그려진 것은 아닌것같긴 하지만 적어도 도심과 Fp가 위치한 지점의 위치는 기본형과 비교할 시 축을 기준으로 가까워졌다.
또한 리테이너와 엔드 피팅 사이에 접합점을 제외하고 간극이 있는 부분이 B-B로 표기되어 있는데, 여기로도 작동유체가 들어가 압력(그림 상 圧力(2) 로 언급됨)을 형성한다. 해당 압력은 리테이너와 엔드 피팅 모두에 힘을 가하는데, 여기서 엔드 피팅에 가해지는 힘이 접합점 A에 Fp'로 형성된다. 힘 Fp'는 도심을 기준으로 Fp와는 반대에 위치하나 힘의 방향은 같다. 따라서 Fp'로 인한 모멘트 Mp'는 Fp로 인한 모멘트 Mp를 상쇄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여기서 Fp' 혹은 Mp'의 크기를 조절해서 씰 링이 고압 측을 향해 닫히는 방향으로의 변형도 유도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압력성분을 이용해서 씰 링의 변형을 의도한 대로 유도할 수 있었다.


3. 메카니컬 씰 설계 - 극저온에서의 열수축량 차이로 인한 변형

바로 위의 단락에서 압력분포로 인한 변형을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극저온 환경에서의 열수축량 차이로 인한 변형을 다룬다. 

열수축량 차이로 인한 변형. 여기에도 형상의 차이가 영향을 미친다.

앞선 단락과 동일하게 타입 I(タイプI)가 개량형, 타입 II(タイプII)가 기본형이다. 
극저온 환경에서는 메카니컬 씰을 구성하는 소재들(카본 링, 엔드 피팅, 리테이너, 벨로우즈를 구성하는 소재들)의 열수축량 차이로 인해 씰 링의 도심을 기준으로 모멘트가 형성된다.

먼저 타입 II에서 가해지는 힘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한다. 카본 링과 리테이너의 열수축량 차이가 존재한다. 여기서 카본 링이 리테이너 대비 더 적게 수축하므로 카본 링이 리테이너를 밀어올리는 방향으로 힘 Ft가 형성된다. 이 힘은 시계 방향의 모멘트 Mt를 형성한다.
그리고 리테이너와 벨로우즈의 열수축량 차이도 있다. 벨로우즈가 리테이너 대비 더 크게 수축하므로 리테이너와 벨로우즈의 접합면에 힘 Ft'가 형성된다. Ft'는 도심을 기준으로 Ft와 반대에 위치해 있으면서 방향도 반대이다. 따라서 Ft'로 인한 모멘트 Mt'는 Mt와 방향이 같으므로 두 모멘트가 합쳐져 씰 링이 고압 측에 대해 열리는 방향으로 변형을 일으킨다.

타입 I 에서는 이와 다르게 추가된 엔드 피팅의 소재를 벨로우즈와 동일하게 설정하였다. 따라서 열수축으로 인한 힘은 리테이너와 엔드 피팅의 접합점에 위치한다. 엔드 피팅이 리테이너보다 더 크게 수축하므로 Ft'는 기본형과 동일하게 안쪽으로 향하는데, 접합점의 위치로 인해 Ft'가 도심의 전방에 위치한다. 도심을 기준으로 카본 링과 리테이너의 열수축량 차이로 인한 힘 Ft와 같은 쪽에 위치해 있으면서 양 힘의 방향은 반대이므로 양 힘으로 인한 모멘트 Mt와 Mt'는 서로 상쇄되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열수축량 차이로 인한 씰 링의 변형은 기본형 대비 최소한으로 억제되게 된다.

상기 2, 3 등의 방식들로 씰 링이 특정 방향으로 변형되면 아래와 같은 형상으로 카본 링 노즈와 메이팅 링에 마찰 흔적이 남게 된다.


메이팅 링과 씰 링에 나타난 마찰 흔적.
(a)가 위에서 설명했던 타입 II, (b)가 타입 I에 해당한다.


4. 메카니컬 씰 설계 - 메이팅 링

메이팅 링은 씰 링의 카본 링 노즈와 직접 맞닿는 부분이다. 지나친 마찰을 방지하기 위해 표면에 크롬 등의 코팅이 이루어진다. 정지 시에는 카본 링 노즈와 메이팅 링이 밀착하여 기밀 작용을 수행하고, 축 회전 시에는 노즈와 메이팅 링 사이의 유체력으로 인한 개방력으로 씰 링이 미세하게 부상하게 된다.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터보펌프는 시동 시 급격하다고 봐도 될 정도로 회전수가 올라가는 경우가 있을 텐데 이때 카본 링 노즈와 메이팅 링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말이다. 밀착 상태에서 회전상태로 천이하는데 개방력이 필요한 만큼 상승하지 않아 필연적으로 급격한 마찰이 일어나는 단계가 있다. 이땐 마치 성냥을 그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높은 마찰열이 발생한다. 
이때 작동유체의 열전달 계수에 따라서 메이팅 링의 온도가 올라가는 정도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작동유체가 열전달 계수가 매우 낮은 액체수소일 경우 표면 온도가 거의 1000 K 가까이 순간적으로 상승한다. 이 열로 인해 표면의 크롬 코팅 층이 살짝 갈라지면서 손상된다. 

시험 후 메이팅 링에서 관찰된 균열

하지만 이러한 손상이 메이팅 링-카본 링 노즈 사이의 유체력 형성에 있어서는 이점으로 작용한다. 균열로 인해 미세한 틈이 형성됨과 동시에 메이팅 링과 카본 링 노즈 사이의 유체력이 정압 성분으로 효과적으로 변화하여 개방력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카본 링 노즈가 메이팅 링으로부터 부상하여 정상상태 작동 시 마찰을 방지하게 된다. 어찌 보면 유체 동압력 부상식 메카니컬 씰과 동일한 효과를 얻는 것이다.
한편 액체산소와 같이 열전달 계수가 비교적 높아 메이팅 링 표면이 덜 손상되는 경우에는 정상상태 작동 시 개방력이 비교적 작게 형성되므로 메이팅 링과 카본 링 노즈 간의 마찰 방지를 위해 신경을 더 써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밸런스비를 좀 낮추는 등의 방법으로 밀봉력을 낮춰서 작은 개방력에 대응하도록 한다던가.



참고문헌

[1 ] 液酸ターボポンプ・軸シールのシール性能と耐久性, NAL TR−717
[2] 液体水素用高速・接触式メカニカルシールの密封性能に関する研究, NAL TR-750



극저온 액체로켓엔진 추진제의 과냉 - 터보펌프 캐비테이션 측면에서

최근 스페이스X 를 위시한 뉴 스페이스(New-Space) 기업들의 우주발사체 개발이 활발한 가운데, 액체로켓엔진 시스템의 성능 향상을 위한 방법들 중 추진제의 과냉각(스페이스X 관련 글들에서는 'Subcool' 이라 언급됨)이 떠오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