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6일 토요일

일본의 재사용을 위한 터보펌프 회전축 씰 개발 방향성 - 이글 인더스트리 연구자의 논문 리뷰

최근에 일본의 터보펌프와 관련하여 좋은 논문들을 담은 학회지를 입수했다.
일본 터보기계협회(ターボ機械協会, Turbomachinery Society of Japan)의 협회지로, 터보기계와 관련된 일본의 논문들이 올라왔다. 물론 수록된 논문은 절대 다수가 일본어로 쓰여있다.

이들 중 2022년 7월호의 특집이  '로켓 분야 터보기계 개발의 현 상황과 전망(ロケットとこれに関わるターボ機械の開発の現状と展望)' 으로, 해당 호에 액체로켓엔진의 터보펌프 및 전기펌프와 관련된 논문들이 대거 실려있었다. 
나는 여기서 '로켓 재사용을 위한 회전축 씰 기술(ロケット再使用に向けた軸シール技術)' 이라는 논문을 읽고 번역 및 리뷰하였다. 저자는 이글 공업 주식회사(イーグル工業株式会社)의 키쿠치 류(菊池 竜) 이다.
이글 공업에서는 과거 LE-5 엔진 개발 시부터 터보펌프의 회전축 씰을 개발 및 납품한 바 있다.
논문에서 언급된 터보펌프의 회전축 씰은 크게 접촉식 씰과 비접촉식 씰로 나뉘어져 있다. 이들 방식에 따라서 씰의 차압, 밀봉성, 수명 등이 갈린다. 터보펌프에서는 이들 씰들을 여러 종을 조합하여 원하는 성능을 발휘하도록 한다.

1. 비접촉식 씰 - 플로팅 링 씰이 낫다

비접촉실 씰로는 라비린스 씰, 웨어링 링 씰, 플로팅 링 씰 등이 언급되어있었는데 웨어링 링 씰이 특성상 씰의 치면이 웨어링 링 내부로 파고들어가 작동하는 형식이라 접촉식 씰로 분류될 줄 알았던 나로서는 의외였다.
공통적으로 차압 측면에서 접촉식 씰들 대비 우수하다.

웨어링 링 씰 과 라비린스 씰이 조합된 형식

플로팅 링 씰의 예시 

이들 씰들 중에서 플로팅 링 씰이 가장 좁은 간극을 가지도록 설계할 수 있어, 라비린스 씰 대비 차압 측면에서 우수하다고 언급되었다. 
이 이유는 회전축과 씰 내면 사이를 흐르는 유체의 로마킨 효과(Lomakin Effect)때문으로, 편심 발생 시 더 좁은 간극 측에서 더 높은 정압이 형성되어 이로 인해 더 넓은 간극 쪽으로 회전축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효과를 한국에서는 '자동 조심 효과' 라고 한다. 이로 인해 플로팅 링 씰에 작용하는 회전체동역학적 유체력은 회전축계의 안정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플로팅 링 씰에 작용하는 회전체동역학적 힘 성분들 -
합력이 휘돌림(Whirling)을 막는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건, 언급된 플로팅 링 씰은 카본제 씰 링 외부에 회전축과 동일한 재질의 금속제 링을 열박음하여 제작한 씰로 극저온에서의 열팽창 계수 차이로 인한 간극 변화를 막은 형식이다. 따라서 동구권 및 한국에서 보이는 임펠러 전/후면(LE-5의 액체산소 펌프의 웨어링 링 씰 위치와 같다.)에 적용된 전 금속제 플로팅 링 씰과는 좀 다르다. 
물론 동구권 설계, 적어도 한국의 설계에서도 회전축(정확히는 추진제 혼합방지 씰)에 카본제 플로팅 링 씰을 사용중이다.

카본제 내부 씰 링 - 금속제 외부 씰 링으로 구성된 회전축 씰용 플로팅 링 씰 - 
회색으로 묘사된 카본 링과 흰색으로 묘사된 외부 금속제 링이 잘 보인다.

2. 접촉식 씰 - 동압 교환으로 부상시키는 형식 필요

접촉식 씰로는 세그먼트 씰과 메카니컬 씰 계열이 언급되었다. 공통적으로 비접촉식 씰 대비 밀봉성이 높으나, 마찰이 일어나는 구조로 수명이 짧으며 차압이 낮다.
세그먼트 씰은 LE-5 부터 일본 터보펌프의 추진제 혼합방지 씰로 사용되어왔다. 해당 씰은 카본제 원호(세그먼트)들 몇 개가 씰 링을 형성하고, 외부를 가터 스프링이 둘러싸 원형을 유지한다. 가터 스프링의 존재로 특정 세그먼트가 마모되더라도 회전축 라이너와의 밀착이 유지된다.

세그먼트 씰 계열 씰의 개략도 - 외부에 가터 스프링이 존재하며 카본 링이 여러개로 나뉘어져 있음에 주목

LE-7의 추진제 혼합방지 씰로 적용된 세그먼트 씰

LE-5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개량 전 모델)의 터빈 가스 씰(추진제 혼합방지 씰 - 터빈 사이) 라이너 - 
세그먼트 씰이 적용되었으며, 세그먼트와 회전축 라이너가 접촉한 흔적이 검은 줄로 나타난다.

세그먼트 씰은 구조상 비접촉식 씰과 같은 높은 차압을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카본 링 내부에 고압 측으로부터 저압 측 직전까지 유로를 파 놓아 카본 링 - 라이너 간 접촉부가 감당해야 하는 부하를 경감시킨다. 
유로만으로 부하를 감당하기 힘든 조건(ex. 터보펌프처럼 초고속 회전, 산업용 대비 비교적 고차압 조건)에서는 아예 씰 링 내면에 복잡한 홈을 파 특정 회전수 이상에서는 라이너로부터 부상하도록 한다. 여기서 이 홈 구조를 '레일리 스텝(Rayleigh Step)'이라 한다. 레일리 스텝으로 씰 내부를 흐르는 유체가 감속되어 동압 교환으로 부상되도록 하는 구조이다. 따라서, 특정 회전수 이하까지는 누설이 거의 없이 일정하게 유지되다 특정 회전수 이상부터는 회전수에 따라 누설량이 선형적으로 증가한다.
개량 전 LE-5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세그먼트 씰 형상
왼쪽부터 추진제 혼합방지 씰, 터빈 가스 씰

레일리 스텝의 형상 - 복잡한 유로 형상으로, 원주 방향으로 흐르는 유체의 속도성분을 저감시킨다
2차 씰 면(2次シール面)이라 표기된 부분이 저압측으로, 레일리 스텝 외에도 고압측에서 저압측 직전까지의 유로도 존재한다.

세그먼트 씰의 회전수 - 누설량 그래프(실선이 예측, 점이 실험)
특정 회전수에서 씰의 부상으로 인해 갑자기 누설이 증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메카니컬 씰은 회전축의 메이팅 링(주로 금속)과 벨로우즈로 메이팅 링에 밀착되는 정지된 씰 링(주로 카본 계열이 쓰인다)으로 이루어진 구조의 씰이다. 
산업용 씰들의 경우 벨로우즈가 고무제 O 링이나 금속 스프링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존재하나 고회전, 극저온 조건의 터보펌프에서는 금속 용접 벨로우즈가 사용된다. 이러한 메카니컬 씰은 고회전 환경하에서의 추종성(아마 메이팅 링과의 마찰로도 씰 링이 회전하지 않는다는 의미인듯) 및 내열/내한성이 우수하다.

메카니컬 씰은 작동 중 고압측의 압력으로 인해 씰 링이 고압측에 대해 열리는 방향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고압측으로 벌어져서 메이팅 링 - 씰 링 접촉부의 압력 구배가 완만히 떨어지는 형상으로 변형된다. 일본의 경우 LE-5용 메카니컬 씰 개발 시 씰 링의 도심을 형상을 변경시키는 방법으로 이동시켜 작동 시 고압 측에 대해 닫히는 변형이 일어나도록 하여 씰의 성능을 향상시켰다.

개량 전 LE-5 터보펌프의 메카니컬 씰 - 고압 측에 대해 씰 링이 벌어지는 방향으로 변형이 일어남

개량 후 LE-5 터보펌프의 메카니컬 씰 - 도심 위치가 이동하여 고압 측에 대해 닫히는 방향으로 변형이 일어남 

세그먼트 씰과 유사하게, 메카니컬 씰도 마찰로 인하여 마모가 일어난다. 따라서 수명이 짧으며 고 부하 조건에서는 씰 링이 과도하게 마모되어 과도한 누설이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씰 내부로 유입되는 작동유체의 동압 교환으로 인해 정지 시 혹은 저회전 조건에서는 밀착해 있다 작동 중 살짝 부상하도록 하는 시도가 존재한다. 회전하는 메이팅 링 표면에 특정한 패턴을 가공하여 작동유체의 동압이 정압으로 교환되어 씰을 밀어내도록 한다. 여기서 표면의 패턴을 '텍스쳐 패턴(Texture Pattern)' 이라 부르며, 적용된 메카니컬 씰을 '유체 동압 메카니컬 씰(Hydrodynamic Mechanical Seal)'이라 부른다.
해당 방식은 일본에서는 산업용으로 실용화되었으며 터보펌프의 경우에는 현재 개발중인 것으로 보인다.

메이팅 링 표면의 텍스쳐 패턴 - 미국의 사례

메이팅 링 표면의 텍스쳐 패턴 - 중국의 사례

표면 텍스쳐 패턴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내가 틀릴 수도 있다). 한 가지는 작동유체를 받아들여 원주 방향 속도를 늦추어 정압을 올리는 방식, 다른 하나는 반대로 작동 유체를 빨아들여 에너지를 부여, 직접 정압을 올리는 방식(펌프와 같다)이다. 특히 고압측에 전자가, 저압 측에 후자가 적용되어 메이팅 링 - 씰 링 면에서의 차압을 줄여 적극적으로 누설을 막는 사례가 최근에 보인다.
아래는 극저온 유체에서 행해진 실제 시험 결과로, 특정 회전수 이상부터는 메이팅 링으로부터 씰 링이 부상하였다고 간주되는 피막비(최소피막두께/표면거칠기의 제곱근)로 이행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극저온 유체에서의 시험 결과

3. 종합

위의 내용을 종합하여 저자는 아래 표와 같이 씰의 특성을 정리하였다. 


비접촉식 씰에 대해서는 플로팅 링 씰이 라비린스 씰 대비 내구도와 최대회전수 측면에서 소폭 열세이나, 다른 특성에 대해서는 우수하다 표현하였다. 따라서 개인적인 생각으로, 저자는 플로팅 링 씰을 회전축 씰로 쓰는 것이 낫다고 평한듯 하다.
접촉식 씰은 씰의 성능은 우수하나 차압, 특히 수명 측면에서 크게 불리하다고 평한 것을 알 수 있다. 메카니컬 씰 계열에 대해서는 유체 동압 메카니컬 씰이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추측하는 일본의 액체로켓엔진 터보펌프 회전축 씰 개발 방향은 아래와 같다.
추진제 혼합방지 씰로 사용되는 세그먼트 씰은 플로팅 링 씰로 대체될 수 있으며(이미 일본 국내에서 사례가 있다), 나머지 추진제와 직접 맞닿는 씰들에 적용될 메카니컬 씰들은 유체 동압 메카니컬 씰이 적용될 듯 하다. 특히나 논문에서 '높은 밀봉성과 장수명을 양립' 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언급된 바 있으므로 씰들에 대해서도 수명이 나름 우선순위인 것을 알 수 있다. 발사체 착륙 후 정비 때마다 씰을 교환해야 한다면 재사용의 의미가 바랠것이다. 



2024년 1월 27일 토요일

도쿄 우에노 국립과학박물관의 LE-5엔진

얼마 전 일본 여행 중 도쿄 우에노의 국립과학박물관(国立科学博物館)을 방문하였다.
방문 전에 H-I 의 상단 엔진인 LE-5 의 실물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척 기대되었다.

전시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LE-5 엔진

우선, 전시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SFU 바로 옆에 나름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유리 벽으로 분리된 공간이 아닌, 꽤 가까운 거리에 전시되어 있어서 나름 자세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 75톤급 엔진 전시했던 것처럼 만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지만.

전면에서 본 LE-5. 왼쪽에 SFU, 오른쪽에 하야부사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관람 동선에서 바로 보면 위의 사진과 같은 구도가 되었다.
재생냉각 채널이 선명히 보이는 고확장비 노즐 위로 터보펌프 및 각종 배관들이 보인다. 사진 기준 왼쪽에 액체수소 터보펌프, 오른쪽에 액체산소 터보펌프가 보인다.

액체수소 터보펌프 근처의 각 배관들 설명

액체산소 터보펌프 대비 두꺼운 몸체의 액체수소 터보펌프가 일단 눈에 띄고, 바로 그 옆에 원통형의 가스발생기가 보인다.
가스발생기에서 나온 수소 과잉 고온 가스의 일부는 제어를 위한 바이패스 밸브 쪽으로 향하고, 나머지는 바로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터빈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터빈을 통과한 수소 과잉 고온 가스는 그대로 액체산소 터보펌프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가 바로 노즐 쪽에 위치한 배기 덕트로 배기된다.

그 위쪽으로는 은색 단열재로 덮인 액체수소 계통이 보인다. 펌프를 통과한 액체수소는 곧바로 주 연료 밸브(Main Fuel Valve라 표기)로 향한다. 이 밸브에서 유로는 두 개로 분기되는데, 일부는 연소실 상단의 매니폴드로 들어가 재생냉각 채널을 지나 연소실 내부로 들어가고, 나머지 일부는 가스발생기 연료 밸브(G.G FV라 표기), 연료 예냉 밸브(사진 상에서 보이지 않음)로 향한다. 예냉 밸브를 지난 수소는 다시 발사체 단의 액체수소 탱크로 돌아간다.

액체수소 가스발생기 밸브 및 예냉 밸브 쪽에서 바라본 사진. 

위의 사실들을 LE-5의 스키매틱 상에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사진 상의 설명을 그대로 스키매틱에 옮긴 것.
파란색이 액체수소, 빨간색이 가스발생기 수소 과잉 고온 가스 계통.


다음은 액체산소 터보펌프 쪽이다. 액체산소 터보펌프는 전시물 구조 상 가까이서 찍기가 어려웠다. 부득이하게 광학 줌이 없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화질이 좋지 않음을 양해바란다.
잠시만 가스발생기와 예냉 밸브 쪽에서의 사진으로 돌아가보자. 스키매틱 상에서 액체산소 터보펌프 터빈은 액체수소 터보펌프 터빈 하류에 위치한다. 즉, 사진에서 빨갛게 표시한 경로로 가스발생기 고온 수소과농 가스가 이동하여 액체산소 터보펌프 터빈으로 유입된다.

가스발생기 - 액체수소 터보펌프 터빈 - 액체산소 터보펌프 터빈 유로 설명

액체산소 터보펌프 유로 설명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펌프를 통과하여 가압된 액체산소는 주 산화제 밸브(Main Oxidizer Valve)를 거쳐 연소실의 인젝터 헤드로 유입된다. 가스발생기 또한 주 산화제 밸브를 거쳐 액체산소를 공급받게 된다. 

주 산화제 밸브 쪽에서 찍은 사진

액체산소 계통을 스키매틱 상에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상단 엔진이기 때문에 규모가 비교적 작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구성품들이 연소실 바로 근처에 밀집되어 있었다. 따라서, 스키매틱 상에서 확인되는 모든 구성품들을 찾기는 어려웠다. 비교적 크고 각 구성품 간의 이격 거리가 확보된 75톤급 엔진 전시품과는 다른 점이었다. 어쩌면 한국의 7톤급 엔진도 전시되면 비슷한 모습을 보일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난생 처음으로 외국의 로켓엔진 실물을 보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박물관 관람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추후에는 가쿠다 우주센터, 카가미가하라 항공우주박물관 등에 있는 LE-7 엔진 실물도 보고싶다.

2024년 1월 15일 월요일

SSME용 터보펌프의 초기 설계

이전 글에서는 SSME용 터보펌프의 개량 양상과, 거기서 찾아볼 수 있는 설계 과정 상에서의 문제점에 대해 짚어 보았다. 문제점은 '각 구성품의 유체역학적 특성에만 집중하여 도출된 설계 여유가 불충분한 축계 설계' 였다.

이번 글에서는 SSME용 터보펌프들의 초기 설계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해당 설계들을 살펴보면 어떠한 점에서 우리가 아는 터보펌프의 설계와 다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료의 출처는 일본 NAL의 기술 보고서로, 제목은 아래와 같다.


1. 액체산소 계통

1) 저압 액체산소 터보펌프(LPOTP) 설계

해당 논문에서 언급된 저압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개발 초기 형상 단면도

저압 액체산소 터보펌프는 고압 액체산소 터보펌프(HPOTP) 입구에서의 캐비테이션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 일반적인 터보펌프의 펌프 임펠러에 장착된 인듀서의 역할을 별도의 저압 펌프가 수행하는, 일종의 외장 인듀서인 셈이다. 많은 다단연소사이클 엔진들이 이러한 별도의 부스터 펌프를 적용한다.

저압 액체산소 터보펌프는 인듀서와 6단 수력터빈으로 구성된다. 인듀서와 터빈 모두 액체산소가 작동 유체이며, 터빈은 후단의 고압 액체산소 터보펌프를 지난 고압 액체산소의 약 17 %로부터 동력을 얻는다. 
고압 액체산소 터보펌프로부터의 고압 액체산소는 펌프 측면으로부터 들어가는 유로를 통해 터빈 입구 매니폴드로 유입되는데, 여기서 고압 액체산소가 유입되는 유로는 인듀서 후방의 정익을 겸한다.
터빈을 통과한 고압 액체산소는 이후 인듀서를 통과한 저압 액체산소와 합쳐져 고압 액체산소 터보펌프로 다시 유입된다.

축계는 2개의 볼 베어링으로 지지되며, 전방 베어링, 즉 인듀서 측에 장착된 볼 베어링이 축 추력을 지지한다.
인듀서와 터빈 모두 작동유체가 액체산소이기 때문에 별도의 추진제 혼합 방지 씰이 필요없이 축 추력 균형용 라비린스 씰이 적용되어 있다. 해당 라비린스 씰은 인듀서 측 베어링 후단에 장착되어 있다.
인듀서 측 베어링의 라비린스 씰 구조. 라비린스 씰을 통과한 작동유체는 감압되어 축 추력을 저감한다.


2) 고압 액체산소 터보펌프(HPOTP)설계

해당 논문에서 언급된 고압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개발 초기 형상 단면도

고압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펌프 부분

고압 액체산소 터보펌프는 2단 터빈, 쌍흡입 임펠러, 그리고 예연소기용 펌프로 구성되어 있다. 

쌍흡입 임펠러는 펌프의 축 추력이 상쇄되는 효과를 가지며, 같은 유량의 단방향 펌프 대비 약 40 % 정도 더 높은 캐비테이션 한계회전수를 갖는 특성이 있다. 해당 임펠러는 완전히 슈라우드로 덮힌 형태로, 이러한 설계는 고압 환경 하에서 하우징이 변형되더라도 성능변화가 최소화된다는 장점을 가진다. 주 펌프와 볼류트 사이에는 베인 디퓨저가 존재하여 작동유체의 동압 성분을 정압 성분으로 변환한다.(상대적으로 저압인 펌프의 경우 베인이 없는 경우도 있음 - 역자 주)

주 펌프 및 디퓨저를 통과한 액체산소 중 약 8 % 는 예연소기 펌프로 이동하며, 나머지 액체산소는 부스터 펌프와 주연소기 인젝터 헤드로 향한다.

축 추력 균형을 위한 밸런스 피스톤 매커니즘은 주연소기 펌프에 존재하는데, 임펠러의 슈라우드와 케이싱 사이의 공간을 밸런스 피스톤 챔버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밸런스 피스톤 매커니즘의 단면도.

예연소기 펌프 임펠러의 전/후면에는 라비린스 씰이 위치하여 예연소기 펌프와 터빈이 발생시키는 축 추력이 서로 상쇄되도록 조절한다.

고압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터빈 부분

터빈은 슈라우드 형식의 2단 터빈으로, 전체적인 동력 배분은 1단이 60 %, 2단이 40 %로 되어있어 축 추력 감쇄와 고유량에서도 낮은 선속으로 최대 효율을 달성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전체적인 터빈의 직경을 키움과 동시에 1단에서의 팽창비를 끌어올려 1단에서 축 추력이 작용하는 부분(=터빈 블레이드가 위치한 부분)의 면적을 전체 디스크 면적 대비 줄인 설계라고 추측된다.

터빈 디스크는 경량 구조의 Wasp 합금으로 제작하였으며, 경량 구조로 인한 고온에서의 터빈 디스크 강도 저하를 막기 위하여 터빈 디스크 양 면을 저온 가스 수소 제트로 냉각시키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렇게 분사된 저온 수소 가스 제트는 터빈 블레이드 뿌리 부분도 냉각시키는데, 이러한 구조는 가스터빈에서 많이 관찰되는 구조이다. 터빈 블레이드와 디스크 사이에는 쿨롱 댐퍼(마찰을 이용하는 댐퍼)가 삽입되어 진동 하중을 저감시킨다.

터빈 정익은 중공형 구조로, 열팽창을 구속시키지 않는 구조의 정익 링으로 케이싱과 결합된다.

SSME의 터빈 디스크-블레이드 구조와 유사한 LE-7 터보펌프의 터빈 디스크-블레이드 구조

고압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축계는 작동유체인 액체산소로 냉각되는 앵귤러 컨택트 베어링 두 개로 지지된다. 해당 베어링들에는 예하중이 가해져 횡 미끄러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였으며, 축 추력 방향으로는 자유롭게 움직여 밸런스 피스톤이 작동하도록 하였다.
축계는 1차와 2차 위험속도 구간 사이에서 작동되도록 설계되었는데, 이러한 설계는 고속 터보펌프들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방식이다.

베어링의 위치가 잘 보이는 그림


고압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작동구간과 위험속도 구간 그래프. 

터빈의 작동유체인 고온 수소과농 가스와 펌프의 작동유체인 극저온 액체산소의 혼합을 방지하기 위한 추진제 혼합방지 씰에는 고속회전 하에서도 일정한 간극을 유지할 수 있는 설계가 적용되었다. 

터빈으로부터 고온 수소과농 가스가 유입되는 것을 1차적으로 막는 터빈 고온 가스 씰과 이후의 헬륨 퍼지 씰에는 플로팅 링 씰 계열의 씰들이 적용되었으며, 펌프 측의 액체산소를 막는 씰로는 유체 동압 부상식 씰(혹은 리프트 오프 씰)이 적용되었다. 이러한 씰들에는 간헐적인 마찰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은과 이황화 몰리브덴 고체 윤활제가 도포되었다.

또한, 작동 중 케이싱을 포함한 씰 구성품들의 상대운동으로 인한 접촉을 방지하기 위해 볼트 결합부에 예하중을 가하여 볼트가 헐거워지는 것을 막았다.

고압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추진제 혼합방지 씰의 단면도 및 구성품 설명


유사한 구조의 LE-7 엔진 액체산소 터보펌프의 추진제 혼합방지 씰.



2. 액체수소 계통

1) 저압 액체수소 펌프(LPFTP) 설계

저압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개발 초기 형상 단면도

저압 액체수소 터보펌프도 저압 액체산소 터보펌프와 유사하게 일종의 외장형 인듀서로 기능한다.
인듀서와 2단 터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듀서의 작동 유체는 극저온의 액체수소이며, 터빈의 작동유체는 주연소기를 냉각시킨 후 팽창한 고온 수소이다. 쉽게 말하자면, 저압 액체수소 터보펌프는 익스팬더 사이클 엔진들의 터보펌프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터빈을 작동시킨 고온 수소의 대부분은 인듀서를 통과한 액체수소와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주 연소기 인젝터 매니폴드로 통하는 고온 가스 매니폴드로 배기된다. 나머지 2 % 정도의 고온 수소는 추진제탱크를 가압하는 데 사용된다.

축계는 2개의 깊은 홈 볼 베어링으로 지지되며, 1차 위험속도 영역 이하에서 작동한다. 
씰에는 엔진 예냉 중의 누설을 최소화하기위한 설계상의 배려가 이루어져 있다. 정지 시에는 외부의 가압 기체로 개방되는 리프트 오프 씰이 작용하여 작동 유체가 외부로 누설되는 것을 막으며, 작동 시에는 리프트 오프 씰이 가압 기체 압력으로 개방되고, 리프트 오프 씰 전 후면에 장치된 플로팅 링씰이 작동하여 누설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리프트 오프 씰과 플로팅 링 씰 모두 작동 시에 축과 접촉하지 않으며, 이 덕분에 낮은 작동 토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좌 : 플로팅 링 씰, 우 : 리프트 오프 씰

2) 고압 액체수소 터보펌프(HPFTP) 설계

해당 논문에서 언급된 고압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개발 초기 형상 단면도



고압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펌프 부분

고압 액체수소 터보펌프는 3단 원심 임펠러와 2단 터빈으로 구성되어 있다.

펌프는 저압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존재로 인해 인듀서가 없는 형식으로, 펌프를 구성하는 티타늄 합금제인 3개의 임펠러 모두 액체산소 터보펌프와 유사하게 완전히 슈라우드로 덮힌 형식이다. 특기할 만한 점으로는 단을 구성하는 임펠러들의 유로 형상은 모두 동일하다는 것이다.
펌프가 3단으로 구성된 이유는 비속도를 최대한 높여(단별 양정상승을 낮춘 듯 하다. 양정은 비속도 공식에서 분모에 위치한다 - 역자 주) 효율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1, 2단 펌프 후단에는 씰이 위치하여 펌프와 터빈 사이의 축 추력을 상쇄시키며, 3단 펌프 후단에는 밸런스 피스톤이 위치하여 작동 중 축 추력 평형을 수행한다.

모든 임펠러의 입구 및 출구에는 입구에서의 예선회 및 유동 안정화를 위한 설계가 적용되어 있다. 
1단 펌프 입구에서는 펌프 볼류트 형상과 베인으로 예선회 유동을 부여하며, 2단 및 3단 펌프 입구에서는 디퓨저 및 베인으로 해당 기능을 수행한다. 3단 출구의 디퓨저는 펌프 토출 압력을 안정화시킨다.
전단인 1, 2단 펌프의 디퓨저 및 베인은 알루미늄 합금제, 후단인 3단에는 인코넬 718 합금제의 디퓨저 및 베인이 적용되어 있다.

고압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터빈 부분

고압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2단 터빈은 반동 터빈으로, 고압 액체산소 터보펌프와 달리 동력이 50 %로 동일하게 배분되어 있다.
그러나, 터빈 디스크의 구성은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다. 터빈 디스크는 경량화를 위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으며 고온에서의 강도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인접한 터빈 측 베어링을 냉각시킨 후의 저온 수소로 냉각을 수행한다. 이러한 냉각 설계는 엔진 정지 시 베어링 근방의 온도를 허용 온도범위 이내로 억제시키는 목적도 겸한다.

터빈은 터빈 디스크 - 블레이드로 분리된 형식으로, 공력적/기계적 진동에 대비한 유연형을 확보하기 위하여 터빈 디스크와 블레이드 사이의 결합 방식은 크리스마스 트리 형식을 적용하였다. 각 블레이드들의 사이에는 쿨롱 댐퍼가 삽입되어 진동을 감쇄함과 동시에 블레이드가 단단히 고정되도록 하였다.

각 터빈 블레이드들은 MAR M246 이라는 니켈계 합금을 적용하여 단방향 주조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설계로 1085 K 가량의 최고 터빈입구온도 조건 하에서 냉각 없이도 작동하도록 의도하였다.

고압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터빈 형상. 사진은 시험 후 손상된 사례이나, 크리스마스 트리 구조가 잘 보인다.

축계는 펌프측, 터빈측 모두 액체수소로 냉각되는 복열식 앵귤러 컨택트 베어링 2개로 지지된다. 
특히 터빈 측 베어링은 터빈보다 후방에 위치하여 터빈으로 인한 오버행이 없도록 하였으며, 각 베어링은 카트리지 형식으로 예하중이 가해져 축 추력에 따라 자유롭게 축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였다. 

베어링의 위치가 잘 보이는 그림

고압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작동구간과 임계속도 영역 그래프

각 베어링 카트리지는 유연 구조의 캐리어 구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캐리어에는 반경 방향 변위를 억제하기 위한 쿨롱 댐퍼가 적용되어 1, 2차 임계속도 영역 통과 시의 변위를 억제하도록 하였다.

고압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베어링 카트리지 구조


3. 한 마디

일반적인 터보펌프 설계와 다른 모습들이 보인다. 특히 터빈 부분이 그러한데, 고압 액체산소/액체수소 터보펌프 모두 터빈이 2개의 분리된 디스크로 나뉘어진 것을 결합시키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구조는 항공기용 가스터빈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구조로, 내부의 공간에는 2차 유로를 통하여 유입된 (상대적)저온 공기가 들어가 각 터빈 디스크의 틈 사이로 누설되며 고온 가스가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설계이다.
SSME 에서는 아무래도 터빈 등 회전체의 질량을 가볍게 한다면 임계속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경량화를 위하여 이러한 설계를 택하였다는 것이 논문에서 언급되었다. 덤으로 가스터빈과 유사한 2차 유로로 터빈 디스크를 냉각시키기 위한 구조도 적용되어 있다. 경량 설계는 규모가 작은 엔진들에서는 본 적 이 있으나, 냉각 설계는 로켓엔진에서는 SSME가 처음이라고 알고있다.
수정 후의 터보펌프에서는 터빈 디스크가 단일 회전체로 합쳐진 형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러한 설계가 문제를 일으켜서 개량형에서는 바뀌지 않았을까 라고 추측해 본다. 

2023년 12월 25일 월요일

SSME(우주왕복선 주 엔진) 터보펌프 개발에 있어서의 난맥상 - 회전체 시스템 측면에서

흔히 지구상에서 최고의 엔진이라고 불리는 엔진들 중에서는 반드시 SSME(Space Shuttle Main Engine)이 언급될 것이다. SSME는 액체수소와 액체산소를 추진제 조합으로 사용하는 연료 과잉 다단연소사이클로, 터보펌프의 출구 압력은 다른 유사 엔진들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심지어는 SSME를 일컬어 '몸에 좋다는건 다 때려박은 엔진' 이라는 평가도 무려 현업자들 사이에서 존재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SSME의 터보펌프는 어떠할까? 이전 카미죠 켄지로(上條謙二郎)의 회고록에서 언급되기로는 SSME의 터보펌프 개발 과정은 높은 출구압만큼이나 어려웠다고 언급되어있었다. 심지어 카미죠는 SSME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LE-7이 택했던 추진제 혼합방지 씰 구조의 우수성과, SSME와는 달리 시스템 단위에서의 시험 전 구성품 단위에서 시험 리그로 시험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SSME의 고압 터보펌프와 주연소기 계통의 단면도. 딱 봐도 복잡해 보인다.

도대체 어떠한 문제가 있었길래 엄연히 후발 주자인 일본의 연구자에게까지 반면교사로 언급되었을까? 물론 카미죠의 회고록에서도 확인 가능하지만 살짝 자세하게 서술한 좋은 논문이 있어 이에 대한 리뷰를 하고자 한다. 해당 논문은 SSME 고압 터보펌프의 설계 변경 이력에 대해 회전체 시스템 차원에서 개괄적으로 알아본 논문으로, 제목은 아래와 같다.


저자는 우치우미 마사하루(内海政春)이다. 논문 저자는 현재 홋카이도에 소재한 무로란 공업대학 항공우주기시스템연구센터(航空宇宙機システム研究センター)의 수장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 과거 NASDA에서 근무하던 시절 LE-7 계열 엔진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개발에 종사한 바 있는 인사이다. 위의 카미죠 켄지로와도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1. SSME 터보펌프 계통의 설계 변천 이력 및 결함 양상

SSME는 당대 최고의 엔진 성능을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최신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적용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개발 방향이 처음부터 신뢰성 있는 엔진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선 개발이 완료되고 오비터에 장착되어 초도비행을 실시한 후에도 신뢰성 향상을 위한 끊임없는 설계 개량이 몇 번이고 이루어졌다. 심지어 그 변천은 터보펌프 계통들에만 따져도 작은 것과 큰 것을 합쳐 5차례 씩이나 된다.

1) Phase I - STS-6 부터 적용 : 고압 연료/산화제 터보펌프, 저압 연료/산화제 터보펌프 부분개량
2) Phase II - STS-26 부터 적용 : 고압 연료/산화제 터보펌프 부분개량
3) Block I - STS-70 부터 적용 : 고압 산화제 터보펌프 전면재설계, ATD(Alternative)-HPOTP 적용
4) Block IIA - STS-98 부터 적용 : 저압 연료/산화제 터보펌프 부분개량
5) Block II - STS-104 부터 적용 : 고압 연료 터보펌프 전면재설계, ATD-HPFTP 적용

심지어 여기서 Block I(1995년 초도비행), Block II(2001년 초도비행)에서는 사업 담당 업체가 로켓다인(Rocketdyne)에서 프랫 앤 휘트니(Prett & Whitney)로 바뀌기까지 했다. 이렇게 개량을 실시하면서 터보펌프로 인한 기체 전손 확률(Probability of loss of vehicle)이 점차 낮아졌다.

SSME의 개량 및 재설계 이력

SSME의 개량 및 재설계에 따른 신뢰성 향상 양상

이러한 개발 과정 중 개발진들은 엄청난 결함들과 마주하게 된다. 아래 그래프가 그 양상인데, 가로축이 시기, 좌측 수직축이 누적시험횟수, 그리고 우측 수직 축이 누적시험시간이다.
2가 고압 연료 터보펌프 축진동, 3은 고압 산화제 터보펌프 폭발, 5가 고압 연료 터보펌프 터빈 손상인데, 총 14번의 중대 결함 중 7회가 터보펌프가 원인인 중대결함이었다. 특히 개발 초기에 누적 시험 시간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는데도 결함이 속출하는 것이 눈에 띈다.

SSME 개발 시험 도중 나타난 중대 결함 양상

그래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정격추력의 50 % 이하 영역에서 시험하는 초기 37회 동안에도 13회의 터보펌프 교환 및 설계 변경이 있었다. 이후 정격추력에서 시험하기까지의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라 약 300회의 시험과 3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고압 산화제 터보펌프의 폭발과 고압 연료 터보펌프의 터빈 손상이 2회 발생하였다.
이후 개발 과정인 Phase II 에서는 고압 터보펌프 베어링, 블레이드 재설계, 냉각 시스템 개량, 축진동(자려진동)대책이 세워졌고, Block IIA 에서는 터빈 입구 부품 방전가공 개선, 터빈 블레이드 수명향상, 회전체 계통 밸런스 향상 등이 이루어졌다.

2. SSME 고압 터보펌프의 재설계 양상

먼저 Block I 에서 이루어졌던 고압 산화제 터보펌프(HPOTP)의 개량 양상이다. 개량 이후 ATD-HPOTP가 된다.
개량 이전에 나타났던 문제로는 회전체동역학적 준동기 휘돌림(Rotordynamic Subsynchronous Whirl), 초 동기 진동(High Synchronous Vibration), 그리고 과도한 동기 진동 진폭(Excessive Synchronous Vibration Amplitudes) 등이 있었다. 이 중 초 동기 진동에 대해서는 카미죠 켄지로가 담당했던 LE-7 엔진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에서의 선회 캐비테이션 관련 문제 해결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자들에게 조언을 한 바 있다.
개량 과정에서 터빈 디스크 강성 증가, 샤프트 강성 증가, 예연소기 펌프측 베어링 크기 증가, 터빈 측 베어링에 롤러베어링 적용 및 위치 변화, 펌프 - 터빈 간의 추진제 혼합방지 씰 계통 전면재설계 등이 있었다.

개량 전 고압 산화제 터보펌프, HPOTP의 단면도.
예연소기펌프 측 베어링과 터빈 측 베어링의 위치 및 형식, 샤프트의 형태, 추진제 혼합방지 씰, 그리고 터빈 디스크의 형태에 주목

개량 후 고압 산화제 터보펌프, ATD-HPOTP의 단면도.

여기서 터빈 디스크 및 샤프트의 강성 증가와 터빈 측 베어링의 보다 더 높은 강성을 가진 형식(롤러 베어링)으로의 수정은 터빈 측의 고유진동수를 높이기 위한 설계라 추측되며, 펌프 - 터빈 간 샤프트 씰 재설계는 카미죠 켄지로가 언급했듯이 터빈으로부터의 열 전달로 인한 추진제 혼합방지 씰의 기능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고 추측된다.

다음은 Block II에서 이루어진 고압 연료 펌프(HPFTP)의 개량 양상이다. 개량 이후는 ATD-HPFTP가 된다.
개량 이전 나타났던 문제로는 회전체동역학적 준동기 휘돌림, 준동기 진동 등이었다. 
논문에는 HPFTP의 진동 양상에 대한 그래프도 실려있다. SSME에서는 센서와 축 간의 접촉에 의한 위험 회피를 위하여(저자의 추측) 터보펌프에 장착된 가속도계로 축의 변위를 간접적으로 측정하였다. 해당 데이터를 보면 반경 방향과 축 방향 모두에서 동기 진동 성분이 관찰되어 큰 문제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HPFTP의 휘돌림 가속도 양상. 가로축이 시간, 세로축이 가속도 진폭이다.
축 방향, 반경 방향 동기 진동성분이 모두 관찰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들 문제 해결을 위해 취해진 개량 사항으로는 터빈 디스크의 강성 증가, 샤프트의 강성 증가, 펌프 측 베어링의 형식 변화, 터빈 측 베어링의 롤러 베어링으로의 교체 및 위치 수정, 임펠러 구조강도 증가 및 펌프 후면 슈라우드 형상 변화 등이었다.

개량 전 고압 연료 터보펌프, HPFTP의 단면도.
양측 베어링의 위치 및 형식, 터빈 디스크 및 샤프트의 형태, 펌프 후면 슈라우드의 형태에 주목

개량 후 고압 연료 터보펌프, ATD-HPFTP의 단면도.

우선, 베어링을 보면 과도한 휘돌림을 막기 위해 터빈 후면에 위치한 베어링을 터빈 전면으로 옮겨 터빈이 오버행이 되는 대신, 롤러 베어링을 적용해 지지 강성을 높임과 동시에 샤프트와 터빈 디스크의 강성을 높여 터빈의 고유진동수가 과도하게 낮아지지 않도록 한 것으로 추측된다. 
펌프 전면의 베어링은 축 추력을 감당할 수 있는 앵귤러 컨택트 볼 베어링으로 교체하면서 1, 2단 펌프 후면의 슈라우드 형상을 바꾸어 축 추력 조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라 생각된다. 

연료/산화제 터보펌프 모두 공통적으로 초기 문제 발생 이후 그때그때 각 부분 별 보완이라는 미봉책(저자는 이것을 대증 요법 - 対症療法 이라고 평했다.)을 선택했으나, 이 작업은 때로는 아예 새로운 터보펌프를 설계하는것과 다를 바 없는 작업을 요구하게 되었다.

원래의 SSME의 HPFTP는 아래와 같은 순서로 설계되었다. 
1) 원심 펌프의 슈라우드 유무에 따른 선택 - 축방향 변위와 효율에의 변화가 작아 슈라우드 타입 임펠러 채택
2) 펌프 단 수의 선택 - 수력 성능(효율) 측면에서 유리한 3단 구성 선택
3) 구성품의 배치 - 4가지의 안 도출 후 선택

여기서 4가지의 구성품 배치 후보와 각각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구성품 배치 단계에서 도출된 후보들

(A)의 경우 고압의 터빈 구동 가스가 펌프 입구로 유입되지 않도록 하는 고온/고압 대응 가스 씰이 필요하며 펌프 입구 형상이 복잡한 관계로 유입 성능에 있어 불리함이 있다.
(B)의 경우 터빈 - 펌프 사이의 축 직경이 동력 전달을 위해 커져야 하며, 그에 따라 베어링의 직경도 커져야 한다. 이로 인해 베어링의 DN 수(DN number. 회전수 * 베어링 직경)가 커져서 알맞는 베어링 선택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C)의 경우 1단 펌프가 오버행인 설계로, 1단 펌프와 나머지 펌프 간의 유로 설계에 신경써야 한다.
(D)의 경우는 베어링의 DN 수도 제한치 이내로 억제 가능하고, 오버행이 없으므로 위험속도 대응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 또한, 펌프 - 터빈 사이의 씰 배치 측면에도 유리했다. 

최종적으로 (D)가 선택되어 초기 HPFTP 설계로 적용되었고, 유감스럽게도 상술한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HPOTP는 326,000초, HPFTP는 130,000 초의 시험을 검증 과정에서 실시하였는데, SSME를 벤치마킹한 H-II의 LE-7의 경우에는 20,000초 정도가 소요되었다. 기술적인 어려움은 논외로 하더라도 어느 쪽이 설계 과정 측면에서 더 올바른 방향이었는지 판단하기는 어렵지 않다.

3. 문제의 원인 - 일반적인 회전기계 설계 방법론과 동떨어진 설계 방향

저자가 언급한 일반적인 회전체 계통 문제 해결 과정은 위의 과정과 사뭇 다르다. 회전체 계통은 말 그대로 '회전체 계통' 문제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특정 부분의 변화는 축 계통 전체에 있어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회전기계에서는 유체여진력(터빈 익단에서 누설되는 유동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회전체동역학적 유체력이 발생하는데, 이 문제에 영향을 덜 받도록 회전체 계통을 설계할 경우 이들로 인한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 
회전체 계통의 응답 문제에 있어서는 입력과 응답의 위상이나 주파수 영역을 철저하게 검토한다. 논문의 저자는 이러한 방식을 'Dynamic Design' 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SSME의 터보펌프 설계 과정은 회전체 계통 설계가 아니라 오히려 임펠러 형상 등 그 아래 계통에 대한 설계부터 먼저 시작하였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펌프 효율 등 수력 성능에 대한 변화가 적다는 이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반대 급부로 회전체 계통 전체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버리고 만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펌프 자체의 차압과 압력 등 수력 성능을 너무 중시하는 바람에 회전체 계통의 진동 문제 해결을 위한 설계상의 여유가 줄어들어버려 상술한 진동 문제가 다발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회전체 배치 고려 측면에서도 4가지의 설계안이 도출되긴 하였으나 후보군 도출 및 선정 측면에서도 기술자들의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하였다. HPFTP 설계 과정 중에 경험적으로 오버행이 없는 설계가 고유진동수 영역을 올리기 때문에 해당 형상을 선택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휘돌림을 유발하여 결국엔 오버행이 존재하는 설계로 돌아갔다. 만약 4개의 후보군에 대해서 실제 터보펌프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 리그를 제작해서 검증해 보았다면 일찍 피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이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고속 회전기계는 설계 여유를 충분히 가진 상태에서 시스템 전반적인 영역에서의 검토와, 경험이 아닌 기술적인 판단에 근거한 평가가 시스템 설계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 마디

후발 주자인 일본의 연구자의 눈에 보이는 SSME의 터보펌프, 그 중에서도 저자의 주 영역이었던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회전체 계통 차원에서의 문제에 대해서 잘 설명한 논문인듯 하다. 
나의 현 전공 분야인 가스터빈의 경우, 특히 발전용 가스터빈의 경우 듣기로는 터빈이라는 구성품 차원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설계자가 터빈 냉각설계 엔지니어라고 하였다. 그 다음이 구조설계 엔지니어이며 공력설계 엔지니어는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낮다. 터보펌프의 경우 터빈이 과도하게 높은 열에 노출되는 일은 없으므로 막연히 터빈 및 펌프 공력/수력설계 엔지니어가 가장 영향력이 클 줄 알았는데, 오래 전 관련 엔지니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이구동성으로 '회전체 계통 설계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 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터보펌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베어링 및 씰인데, 이는 저자의 전공분야인 회전체동역학 영역이다. 더 생각을 해 보면 터보펌프의 경우 가스터빈 대비 설계 여유가 적은 편이다. 따라서 회전체 계통 차원에서는 진동 억제를 위해 개발 이후 소폭 수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여유가 아예 없다고 볼 수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결함이 없는 축계를 설계해 놓고 이를 바탕으로 터빈 및 펌프의 성능을 올리는 것이 그렇지 못할 경우 들어갈 시간과 비용, 최악의 경우에는 인명 손실 등을 방지하는 길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SSME를 설계한 미국의 엔지니어들은 왜 그런진 몰라도 그러지 못했다. 그 당시까지 개발된 터보펌프의 수가 꽤 많아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는 틀린 선택을 하지 않았을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여기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혹시 아폴로 계획에서의 방식을 그대로 갖고와서 적용하다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일본의 재사용을 위한 터보펌프 회전축 씰 개발 방향성 - 이글 인더스트리 연구자의 논문 리뷰

최근에 일본의 터보펌프와 관련하여 좋은 논문들을 담은 학회지를 입수했다. 일본  터보기계협회(ターボ機械協会, Turbomachinery Society of Japan) 의 협회지로, 터보기계와 관련된 일본의 논문들이 올라왔다. 물론 수록된 논문은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