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5일 월요일

SSME(우주왕복선 주 엔진) 터보펌프 개발에 있어서의 난맥상 - 회전체 시스템 측면에서

흔히 지구상에서 최고의 엔진이라고 불리는 엔진들 중에서는 반드시 SSME(Space Shuttle Main Engine)이 언급될 것이다. SSME는 액체수소와 액체산소를 추진제 조합으로 사용하는 연료 과잉 다단연소사이클로, 터보펌프의 출구 압력은 다른 유사 엔진들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심지어는 SSME를 일컬어 '몸에 좋다는건 다 때려박은 엔진' 이라는 평가도 무려 현업자들 사이에서 존재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SSME의 터보펌프는 어떠할까? 이전 카미죠 켄지로(上條謙二郎)의 회고록에서 언급되기로는 SSME의 터보펌프 개발 과정은 높은 출구압만큼이나 어려웠다고 언급되어있었다. 심지어 카미죠는 SSME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LE-7이 택했던 추진제 혼합방지 씰 구조의 우수성과, SSME와는 달리 시스템 단위에서의 시험 전 구성품 단위에서 시험 리그로 시험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SSME의 고압 터보펌프와 주연소기 계통의 단면도. 딱 봐도 복잡해 보인다.

도대체 어떠한 문제가 있었길래 엄연히 후발 주자인 일본의 연구자에게까지 반면교사로 언급되었을까? 물론 카미죠의 회고록에서도 확인 가능하지만 살짝 자세하게 서술한 좋은 논문이 있어 이에 대한 리뷰를 하고자 한다. 해당 논문은 SSME 고압 터보펌프의 설계 변경 이력에 대해 회전체 시스템 차원에서 개괄적으로 알아본 논문으로, 제목은 아래와 같다.


저자는 우치우미 마사하루(内海政春)이다. 논문 저자는 현재 홋카이도에 소재한 무로란 공업대학 항공우주기시스템연구센터(航空宇宙機システム研究センター)의 수장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 과거 NASDA에서 근무하던 시절 LE-7 계열 엔진의 액체수소 터보펌프 개발에 종사한 바 있는 인사이다. 위의 카미죠 켄지로와도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1. SSME 터보펌프 계통의 설계 변천 이력 및 결함 양상

SSME는 당대 최고의 엔진 성능을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최신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적용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개발 방향이 처음부터 신뢰성 있는 엔진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선 개발이 완료되고 오비터에 장착되어 초도비행을 실시한 후에도 신뢰성 향상을 위한 끊임없는 설계 개량이 몇 번이고 이루어졌다. 심지어 그 변천은 터보펌프 계통들에만 따져도 작은 것과 큰 것을 합쳐 5차례 씩이나 된다.

1) Phase I - STS-6 부터 적용 : 고압 연료/산화제 터보펌프, 저압 연료/산화제 터보펌프 부분개량
2) Phase II - STS-26 부터 적용 : 고압 연료/산화제 터보펌프 부분개량
3) Block I - STS-70 부터 적용 : 고압 산화제 터보펌프 전면재설계, ATD(Alternative)-HPOTP 적용
4) Block IIA - STS-98 부터 적용 : 저압 연료/산화제 터보펌프 부분개량
5) Block II - STS-104 부터 적용 : 고압 연료 터보펌프 전면재설계, ATD-HPFTP 적용

심지어 여기서 Block I(1995년 초도비행), Block II(2001년 초도비행)에서는 사업 담당 업체가 로켓다인(Rocketdyne)에서 프랫 앤 휘트니(Prett & Whitney)로 바뀌기까지 했다. 이렇게 개량을 실시하면서 터보펌프로 인한 기체 전손 확률(Probability of loss of vehicle)이 점차 낮아졌다.

SSME의 개량 및 재설계 이력

SSME의 개량 및 재설계에 따른 신뢰성 향상 양상

이러한 개발 과정 중 개발진들은 엄청난 결함들과 마주하게 된다. 아래 그래프가 그 양상인데, 가로축이 시기, 좌측 수직축이 누적시험횟수, 그리고 우측 수직 축이 누적시험시간이다.
2가 고압 연료 터보펌프 축진동, 3은 고압 산화제 터보펌프 폭발, 5가 고압 연료 터보펌프 터빈 손상인데, 총 14번의 중대 결함 중 7회가 터보펌프가 원인인 중대결함이었다. 특히 개발 초기에 누적 시험 시간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는데도 결함이 속출하는 것이 눈에 띈다.

SSME 개발 시험 도중 나타난 중대 결함 양상

그래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정격추력의 50 % 이하 영역에서 시험하는 초기 37회 동안에도 13회의 터보펌프 교환 및 설계 변경이 있었다. 이후 정격추력에서 시험하기까지의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라 약 300회의 시험과 3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고압 산화제 터보펌프의 폭발과 고압 연료 터보펌프의 터빈 손상이 2회 발생하였다.
이후 개발 과정인 Phase II 에서는 고압 터보펌프 베어링, 블레이드 재설계, 냉각 시스템 개량, 축진동(자려진동)대책이 세워졌고, Block IIA 에서는 터빈 입구 부품 방전가공 개선, 터빈 블레이드 수명향상, 회전체 계통 밸런스 향상 등이 이루어졌다.

2. SSME 고압 터보펌프의 재설계 양상

먼저 Block I 에서 이루어졌던 고압 산화제 터보펌프(HPOTP)의 개량 양상이다. 개량 이후 ATD-HPOTP가 된다.
개량 이전에 나타났던 문제로는 회전체동역학적 준동기 휘돌림(Rotordynamic Subsynchronous Whirl), 초 동기 진동(High Synchronous Vibration), 그리고 과도한 동기 진동 진폭(Excessive Synchronous Vibration Amplitudes) 등이 있었다. 이 중 초 동기 진동에 대해서는 카미죠 켄지로가 담당했던 LE-7 엔진의 액체산소 터보펌프에서의 선회 캐비테이션 관련 문제 해결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자들에게 조언을 한 바 있다.
개량 과정에서 터빈 디스크 강성 증가, 샤프트 강성 증가, 예연소기 펌프측 베어링 크기 증가, 터빈 측 베어링에 롤러베어링 적용 및 위치 변화, 펌프 - 터빈 간의 추진제 혼합방지 씰 계통 전면재설계 등이 있었다.

개량 전 고압 산화제 터보펌프, HPOTP의 단면도.
예연소기펌프 측 베어링과 터빈 측 베어링의 위치 및 형식, 샤프트의 형태, 추진제 혼합방지 씰, 그리고 터빈 디스크의 형태에 주목

개량 후 고압 산화제 터보펌프, ATD-HPOTP의 단면도.

여기서 터빈 디스크 및 샤프트의 강성 증가와 터빈 측 베어링의 보다 더 높은 강성을 가진 형식(롤러 베어링)으로의 수정은 터빈 측의 고유진동수를 높이기 위한 설계라 추측되며, 펌프 - 터빈 간 샤프트 씰 재설계는 카미죠 켄지로가 언급했듯이 터빈으로부터의 열 전달로 인한 추진제 혼합방지 씰의 기능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고 추측된다.

다음은 Block II에서 이루어진 고압 연료 펌프(HPFTP)의 개량 양상이다. 개량 이후는 ATD-HPFTP가 된다.
개량 이전 나타났던 문제로는 회전체동역학적 준동기 휘돌림, 준동기 진동 등이었다. 
논문에는 HPFTP의 진동 양상에 대한 그래프도 실려있다. SSME에서는 센서와 축 간의 접촉에 의한 위험 회피를 위하여(저자의 추측) 터보펌프에 장착된 가속도계로 축의 변위를 간접적으로 측정하였다. 해당 데이터를 보면 반경 방향과 축 방향 모두에서 동기 진동 성분이 관찰되어 큰 문제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HPFTP의 휘돌림 가속도 양상. 가로축이 시간, 세로축이 가속도 진폭이다.
축 방향, 반경 방향 동기 진동성분이 모두 관찰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들 문제 해결을 위해 취해진 개량 사항으로는 터빈 디스크의 강성 증가, 샤프트의 강성 증가, 펌프 측 베어링의 형식 변화, 터빈 측 베어링의 롤러 베어링으로의 교체 및 위치 수정, 임펠러 구조강도 증가 및 펌프 후면 슈라우드 형상 변화 등이었다.

개량 전 고압 연료 터보펌프, HPFTP의 단면도.
양측 베어링의 위치 및 형식, 터빈 디스크 및 샤프트의 형태, 펌프 후면 슈라우드의 형태에 주목

개량 후 고압 연료 터보펌프, ATD-HPFTP의 단면도.

우선, 베어링을 보면 과도한 휘돌림을 막기 위해 터빈 후면에 위치한 베어링을 터빈 전면으로 옮겨 터빈이 오버행이 되는 대신, 롤러 베어링을 적용해 지지 강성을 높임과 동시에 샤프트와 터빈 디스크의 강성을 높여 터빈의 고유진동수가 과도하게 낮아지지 않도록 한 것으로 추측된다. 
펌프 전면의 베어링은 축 추력을 감당할 수 있는 앵귤러 컨택트 볼 베어링으로 교체하면서 1, 2단 펌프 후면의 슈라우드 형상을 바꾸어 축 추력 조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라 생각된다. 

연료/산화제 터보펌프 모두 공통적으로 초기 문제 발생 이후 그때그때 각 부분 별 보완이라는 미봉책(저자는 이것을 대증 요법 - 対症療法 이라고 평했다.)을 선택했으나, 이 작업은 때로는 아예 새로운 터보펌프를 설계하는것과 다를 바 없는 작업을 요구하게 되었다.

원래의 SSME의 HPFTP는 아래와 같은 순서로 설계되었다. 
1) 원심 펌프의 슈라우드 유무에 따른 선택 - 축방향 변위와 효율에의 변화가 작아 슈라우드 타입 임펠러 채택
2) 펌프 단 수의 선택 - 수력 성능(효율) 측면에서 유리한 3단 구성 선택
3) 구성품의 배치 - 4가지의 안 도출 후 선택

여기서 4가지의 구성품 배치 후보와 각각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구성품 배치 단계에서 도출된 후보들

(A)의 경우 고압의 터빈 구동 가스가 펌프 입구로 유입되지 않도록 하는 고온/고압 대응 가스 씰이 필요하며 펌프 입구 형상이 복잡한 관계로 유입 성능에 있어 불리함이 있다.
(B)의 경우 터빈 - 펌프 사이의 축 직경이 동력 전달을 위해 커져야 하며, 그에 따라 베어링의 직경도 커져야 한다. 이로 인해 베어링의 DN 수(DN number. 회전수 * 베어링 직경)가 커져서 알맞는 베어링 선택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C)의 경우 1단 펌프가 오버행인 설계로, 1단 펌프와 나머지 펌프 간의 유로 설계에 신경써야 한다.
(D)의 경우는 베어링의 DN 수도 제한치 이내로 억제 가능하고, 오버행이 없으므로 위험속도 대응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 또한, 펌프 - 터빈 사이의 씰 배치 측면에도 유리했다. 

최종적으로 (D)가 선택되어 초기 HPFTP 설계로 적용되었고, 유감스럽게도 상술한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HPOTP는 326,000초, HPFTP는 130,000 초의 시험을 검증 과정에서 실시하였는데, SSME를 벤치마킹한 H-II의 LE-7의 경우에는 20,000초 정도가 소요되었다. 기술적인 어려움은 논외로 하더라도 어느 쪽이 설계 과정 측면에서 더 올바른 방향이었는지 판단하기는 어렵지 않다.

3. 문제의 원인 - 일반적인 회전기계 설계 방법론과 동떨어진 설계 방향

저자가 언급한 일반적인 회전체 계통 문제 해결 과정은 위의 과정과 사뭇 다르다. 회전체 계통은 말 그대로 '회전체 계통' 문제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특정 부분의 변화는 축 계통 전체에 있어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회전기계에서는 유체여진력(터빈 익단에서 누설되는 유동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회전체동역학적 유체력이 발생하는데, 이 문제에 영향을 덜 받도록 회전체 계통을 설계할 경우 이들로 인한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 
회전체 계통의 응답 문제에 있어서는 입력과 응답의 위상이나 주파수 영역을 철저하게 검토한다. 논문의 저자는 이러한 방식을 'Dynamic Design' 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SSME의 터보펌프 설계 과정은 회전체 계통 설계가 아니라 오히려 임펠러 형상 등 그 아래 계통에 대한 설계부터 먼저 시작하였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펌프 효율 등 수력 성능에 대한 변화가 적다는 이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반대 급부로 회전체 계통 전체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버리고 만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펌프 자체의 차압과 압력 등 수력 성능을 너무 중시하는 바람에 회전체 계통의 진동 문제 해결을 위한 설계상의 여유가 줄어들어버려 상술한 진동 문제가 다발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회전체 배치 고려 측면에서도 4가지의 설계안이 도출되긴 하였으나 후보군 도출 및 선정 측면에서도 기술자들의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하였다. HPFTP 설계 과정 중에 경험적으로 오버행이 없는 설계가 고유진동수 영역을 올리기 때문에 해당 형상을 선택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휘돌림을 유발하여 결국엔 오버행이 존재하는 설계로 돌아갔다. 만약 4개의 후보군에 대해서 실제 터보펌프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 리그를 제작해서 검증해 보았다면 일찍 피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이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고속 회전기계는 설계 여유를 충분히 가진 상태에서 시스템 전반적인 영역에서의 검토와, 경험이 아닌 기술적인 판단에 근거한 평가가 시스템 설계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 마디

후발 주자인 일본의 연구자의 눈에 보이는 SSME의 터보펌프, 그 중에서도 저자의 주 영역이었던 액체수소 터보펌프의 회전체 계통 차원에서의 문제에 대해서 잘 설명한 논문인듯 하다. 
나의 현 전공 분야인 가스터빈의 경우, 특히 발전용 가스터빈의 경우 듣기로는 터빈이라는 구성품 차원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설계자가 터빈 냉각설계 엔지니어라고 하였다. 그 다음이 구조설계 엔지니어이며 공력설계 엔지니어는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낮다. 터보펌프의 경우 터빈이 과도하게 높은 열에 노출되는 일은 없으므로 막연히 터빈 및 펌프 공력/수력설계 엔지니어가 가장 영향력이 클 줄 알았는데, 오래 전 관련 엔지니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이구동성으로 '회전체 계통 설계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 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터보펌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베어링 및 씰인데, 이는 저자의 전공분야인 회전체동역학 영역이다. 더 생각을 해 보면 터보펌프의 경우 가스터빈 대비 설계 여유가 적은 편이다. 따라서 회전체 계통 차원에서는 진동 억제를 위해 개발 이후 소폭 수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여유가 아예 없다고 볼 수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결함이 없는 축계를 설계해 놓고 이를 바탕으로 터빈 및 펌프의 성능을 올리는 것이 그렇지 못할 경우 들어갈 시간과 비용, 최악의 경우에는 인명 손실 등을 방지하는 길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SSME를 설계한 미국의 엔지니어들은 왜 그런진 몰라도 그러지 못했다. 그 당시까지 개발된 터보펌프의 수가 꽤 많아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는 틀린 선택을 하지 않았을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여기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혹시 아폴로 계획에서의 방식을 그대로 갖고와서 적용하다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일본의 재사용을 위한 터보펌프 회전축 씰 개발 방향성 - 이글 인더스트리 연구자의 논문 리뷰

최근에 일본의 터보펌프와 관련하여 좋은 논문들을 담은 학회지를 입수했다. 일본  터보기계협회(ターボ機械協会, Turbomachinery Society of Japan) 의 협회지로, 터보기계와 관련된 일본의 논문들이 올라왔다. 물론 수록된 논문은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