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러시아 인 발레핀 씨의 영입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붕괴한 후, 우리 나라에서는 소련 연구자를 끌어오자는 생각이 주도적이 되었다.
소련 항공우주연구소의 블라디미르 발레핀(Vladimir Balepin) 박사로부터 NAL에서 연구하고 싶다는 편지가 도착하였다. 액체산소와 액체수소에 관련된 지식이 있고, 로켓엔진 연구 경력이 있었던 관계로 우리 나라에서 연구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 생각하여 NAL 본부와 연락을 취하여 이야기를 전했다.
객원연구원 제도(방문연구원)를 이용하여 발레핀 씨를 초빙하는 형식으로 1993년, NAL의 가쿠다 지소 로켓 유체기계 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채용하였다.
2. 발레핀 씨의 연구 주제
발레핀 씨는 공기액화식 엔진과 관련된 연구를 제안하였다. 비교적 공기 밀도가 높은 고도에서는 기체 내에 탑재된 액체수소로 공기를 냉각시켜 액화 공기로 만든 다음, 이것을 로켓엔진의 산화제로 사용하는 형식의 로켓엔진이었다. 당시, 영국에서 HOTOL 이라 불리는 신형 재사용 로켓이 발표되었다. 이 로켓에 쓰이는 엔진이 일종의 공기액화식 엔진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여, 시스템 성능 계산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사정으로, 기분 좋게 발레핀 씨의 제안을 승낙하였다.
HOTOL 우주비행기. 예냉형 가스터빈과 액체로켓엔진 복합 사이클이라 한다. |
연구의 진행 상황으로부터 발레핀 씨가 로켓 시스템 계산에 정통하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 그 무렵, 미국에서는 델타 클리퍼(Delta Clipper)라 불리는 수직 이착륙 우주왕복선의 연구개발이 시작되었다. 나는 발레핀 씨에게 "델타 클리퍼를 공기 액화식 엔진으로 보조한다면 어느 정도 성능이 올라갈지 계산해 주십시오." 라 제안하였다. 발레핀 씨는 흔쾌히 그 제안을 승낙하여 계산을 시작하였다.
공기를 이용하는 모드와 로켓 엔진의 양 모드로 높은 엔진 성능을 달성하기 위하여 작동하는 터보펌프의 수를 바꾸는 궁리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산 결과로는, 확실히 상당히 높은 성능향상이 기대되었다.
논문을 작성하여 미국에서 발표하게 되었다. 미국 자동차학회(SAE) 항공우주부문 주최의 회의에서 발표를 끝내고 귀국한 발레핀 씨는, "카미죠 씨로부터 훌륭한 연구 주제를 얻었습니다. 미국에서의 발표에서 마주한 반응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라고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하였다.
나는, 소련의 붕괴가 없었더라면 발레핀 씨가 엘리트 연구자로서 원하는 로켓엔진 연구를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여, 나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던 발레핀 씨를 딱하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나의 잘못된 생각으로 발레핀 씨는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이 얼마 후에 밝혀졌다.
3. SAE 최우수논문상 수상, 그 후
발레핀 씨가 러시아로 귀국한 후인 1995년 12월, 돌연 미국 자동차학회 항공우주부문으로부터 발레핀 씨가 발표한 논문인 "Rocket Based Combined Cycles for Single Stage Rocket : 단단식 로켓용 로켓 기반 복합 엔진"이 미국 자동차학회 항공우주부문 최우수 논문상(Arch T. Colwell Merit Award)에 뽑혔으니 수상식에 출석해 달라는 편지가 도착하였다.
러시아에 있는 발레핀 씨에게 연락을 취하였으나, 그는 출석할 수가 없었다. 공동 연구자인 요시다 마코토(吉田誠) 씨가 대표하여 수상식에 참석하였다. 요시다 씨는 이름이 들어간 훌륭한 표창의 방패를 가지고 돌아왔다. 러시아에 있는 발레핀 씨에게 보냈는데, 발레핀 씨의 기뻐하는 얼굴이 눈에 선했다.
이후 발레핀 씨는 도쿄대학 우주과학연구소(ISAS)에 초빙되어 공기흡입식 엔진에 관련된 선행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현재는, 미국의 민간회사에 취직하여 활약하고 있다.
첨언
발레핀과 저자가 공동연구한 로켓 기반 복합 사이클 엔진의 스키매틱은 아래와 같다. 먼저, 액화한 공기를 전부 액체산소 터보펌프로 보내는 방식.
우선, 공기가 열 교환기로 유입되어, 작동 유체인 액체수소와 열 교환을 실시, 액화된다. 여기서 액체수소의 출처는 액체수소 터보펌프 출구이다. 그리고 액화된 공기는 그대로 싣고온 액체산소와 함께 액체산소 터보펌프로 들어간다.
엔진의 전체적인 사이클은 익스팬더 블리드 사이클이다. 아무래도 가스발생기 사이클인 J-2S를 기반으로 하여 같은 개방형 사이클인 익스팬더 블리드 사이클로 개조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수소는 우선 액체수소 터보펌프로 들어간 후 가압되며, 1차적으로 열 교환기로 들어가 공기를 냉각시킨다. 이후 주 연소기의 재생냉각 채널로 들어간 수소는 일부는 그대로 연소실의 인젝터 플레이트로 들어가고, 나머지 수소는 연료/산화제 양 터보펌프의 터빈을 구동시키는 작동유체가 된다. 양 터보펌프를 구동시킨 수소는 그대로 노즐로 들어가 노즐 벽을 냉각시키면서 외부로 배출된다.
아래는 액화된 공기 중 액체산소만 쓰는 방식이다. 다른 기체들은 외부로 배출된다.
열 교환기로 공기가 유입되어 액화된다는 것은 위와 동일하다. 다만, 이번에는 'Air Rectifier' 라는 일종의 분리장치가 추가되어 액화된 공기에서 액체산소와 나머지 원소들을 분리한다. 그 외에는 열 교환기 작동유체로 액체수소 터보펌프에서 가압된 액체수소 외에 액체산소 터보펌프를 나온 액체산소도 추가되었다.
언급된 Air Rectifier 라는 장치는 아래와 같이 생겼다.
저렇게 분리된 산소 외의 다른 기체들은 'Depleted Air Augmenter'로 유입되어 외부로 배출되는데, 이 안에는 연소실 재생냉각채널에서 나온 고온의 수소로 작동되는 터빈과 거기에 물린 압축기가 존재하여 효과적으로 분리된 기체를 흡입함과 동시에 노즐로 배출시키면서 추가적인 추력을 얻는 방식이다.
공통적으로 이러한 방식은 로켓 내에 탑재하는 액체산소를 그만큼 줄일 수 있으므로 비추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한 마디
90년대 초 소련 붕괴 직후, 한국에서도 구 소련의 항공우주 과학자들을 꽤 영입하였다. 그로 인한 결과물로 추정되는 것들이 특히 국방 분야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이러한 협력은 꽤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의 사례는 알고 있었지만, 일본에서도 저러한 일이 있었다는 데에서 적잖게 놀랐다. 하긴, 미국에서도 그렇고 하다못해 북한에서도 소련 과학자들을 데려가는 시도가 있었으니 일본이라고 못할게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에피소드는 로켓 연구와 관련된 이야기 외에도 소련 붕괴 후의 두뇌 유출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여기서 언급된 발레핀은 저자와 함께한 후에 일단은 러시아로 귀국하였으나 또다시 일본 연구기관(ISAS)에 들어갔고, 그 후에는 아예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마 이러한 케이스가 꽤 많을 것이고 최근에도 현재진행형일 것이다.